[땅집고] 지난해 8월 적자를 견디지 못하고 폐원한 서울 중구 서울백병원 부지 용도를 둘러싸고 소유주인 학교법인 인제학원과 서울시 간 갈등이 깊어지고 있다. 인제학원 측이 서울백병원 땅을 매각해서 얻은 자금을 서울 노원구 상계백병원과 부산 해운대백병원 등 형제병원 4곳을 살릴 계획을 세웠는데, 서울시가 도심 의료 공백이 우려된다며 해당 부지를 도시관리계획상 종합의료시설로 묶겠다고 통보하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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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백병원 부지가 종합의료시설로 지정될 경우, 이 땅에 병의원 등 의료 관련 시설밖에 짓지 못하기 때문에 추후 땅을 매수하려는 기업이나 사업자 범위가 크게 제한돼 매각이 어렵고, 땅값 역시 저평가될 수밖에 없다. 인제학원과 백병원 직원들은 법인 존폐가 달려있는 문제라며 종합의료시설 지정에 반대 목소리를 내고 있지만, 서울시와 중구청은 오세훈 서울시장의 정책 의지가 완강해 어쩔 수 없다며 지정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서울시 “백병원 부지, K-의료서비스 거점으로…오세훈 시장의 뜻”
지난해 12월 서울 중구청은 서울백병원 부지 총 3127㎡를 도시관리계획상 종합의료시설로 지정할 계획이라는 열람 공고를 냈다. 서울백병원이 폐원하면서 도심 의료 기능 부재가 우려되므로 이 땅을 종합병원을 지을 수 있는 종합의료시설로 묶되, 최고 9층 높이 건물인 별관동은 근린생활시설 중 라목(의원·치과의원) 용도로 정해 종합병원보다 등급이 낮은 의료시설을 짓도록 허용하겠다는 내용이다.
서울시는 코로나19가 종식한 뒤 명동을 방문하는 외국인 관광객이 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별관동을 건강검진센터나 성형외과, 피부과 등으로 개발해서 이른바 ‘K-의료서비스’를 구축할 수 있을 것이라는 청사진을 제시했다.
안병석 중구청 도심정비과장은 “서울백병원이 폐원한 뒤 중구 지역이 의료공백에 시달리는 현상은 딱히 없었다”면서도 “다만 오세훈 서울시장이 서울백병원 부지를 K-의료서비스 구심점으로 구축하려는 정책 의지가 강력해 서울시가 중구청에 도시관리계획상 종합의료시설로 지정하는 입안을 제안하라고 직접 요청한 사항”이라고 했다. 이어 그는 “오 시장의 구상인 만큼 (서울백병원 부지가) 곧 도시계획위원회 심의를 거쳐 빠르면 올해 2월 중 지정이 완료될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전문가들 “서울백병원 땅에선 의료 사업 더이상 불가능”
하지만 인제학원 측은 서울시가 주장하는 도심 의료공백이 허구라고 주장한다. 도심에 이미 응급환자와 중증환자를 진료할 수 있는 대형병원이 충분해서다.
실제로 서울백병원 인근을 보면 도보권으로 통하는 반경 2km 안에 서울대병원(1820병상)·강북삼성병원(723병상)·국립중앙의료원(505병상)·적십자병원(292병상)이 있다. 반경 5㎞ 까지 넓히면 신촌세브란스병원(2426병상)·고려대안암병원(1050병상)·한양대병원(825병상)·순천향대서울병원(725병상) 등 대형 상급종합병원이 포진해있다. 이에 지난해 김길성 중구청장이 “인근 병원 병상이나 수용 가능한 환자 수를 보면 충분히 커버하고도 남는다”며 “서울백병원이 폐원하더라도 (의료 공백이) 크게 우려되는 상황은 없을 것”이라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무엇보다 서울시가 서울백병원 부지를 종합의료시설로 묶더라도 이곳이 K-의료서비스 거점이 거듭날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주장이 지배적이다. 서울백병원이 지난 20여년 동안 연속으로 발생한 누적 적자 1745억원을 견디지 못하고 폐원했을 정도로 해당 지역에 대한 의료 수요 자체가 충분하지 않아서다. 입지 측면에서 보면 서울백병원 부지가 대형 오피스 빌딩에 둘러싸여 있기 때문에 더 이상 확장이 어려운 도심 쪼가리 땅이라 병원 규모를 키우는 데 한계가 명확하다는 시각도 나온다.
인제학원 측은 “외부 전문 기관을 통해 서울백병원 부지에서 의료사업을 영위하는 것이 가능한 모든 경우를 상정해 검토했지만, 종합병원과 전문병원은 물론이고 건강검진센터·외래센터·요양병원·노인주거복지시설 등 모든 의료관련 사업 추진이 불가하다는 결론만 나왔다”며 “따라서 서울시가 서울백병원 땅을 종합의료시설로 결정한다고 해도 이곳에서 의료시설을 운영하려는 사업자가 없을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백병원 구성원들 “서울시 결정으로 전국 백병원 다 망할수도”
이달 11일 서울백병원 도시관리계획 결정과 관련해 열린 공청회에 인제학원과 전국 백병원 직원 100여명이 참여했다. 이들은 서울백병원 부지를 종합의료시설로 제한할 경우 학교법인 자체가 사라질 위기에 처할 가능성이 크다며 서울시 계획에 강력하게 반대했다. 인제학원 내부 사정상 서울백병원 부지를 매각해 재투자 기회를 서둘러 확보하지 않으면 다른 형제병원들까지 줄줄이 문을 닫는 등 피해가 예상된다는 주장이다.
업계에 따르면 현재 백중앙의료원 소속 병원 4곳 중 서울 노원구 상계백병원과 경기 고양시 일산백병원 2곳은 2022년 적자 전환한 뒤 연속 2년 동안 적자를 내고 있어 경영 정상화가 시급한 상황이다. 부산백병원 역시 개원 40년이 넘은 만큼 시설 노후화가 심각해 재투자가 필요한 시점이기도 하다.
인제학원 측은 “일각에선 재단이 서울백병원 부지를 팔아 차익을 챙기는 ‘땅장사’를 하는 것 아니냐는 주장도 나오는데, 이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영업활동을 통한 이익을 배당 등 형태로 사외 유출 가능한 일반 사기업과는 달리, 인제학원이 속한 비영리법인이자 공익법인은 공익사업을 통해 취득한 이익이라면 관련 법령에 따라 반드시 법인 내 공익사업에 재투자하도록 되어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이어 “서울백병원 자산을 활용해 발생하는 이익은 반드시 대학이나 부속병원을 위해 재투자될 것이고, 이를 통해 지역사회 발전에 기여할 것”이라며 “서울백병원 부지가 도시계획시설상 종합의료시설로 지정되는 데 반대와 우려의 의견을 표한다”는 입장을 굳혔다. /이지은 땅집고 기자 leejin0506@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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