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집고

전세사기꾼 만드는 전세 사기 대책? 멀쩡한 집주인 되레 덫 됐다

뉴스 배민주 기자
입력 2024.01.09 07:30
[땅집고] 부산 금정구 원룸촌 건물 곳곳에 임대를 알리는 스티커가 붙어있다. /김동환 기자


[땅집고] 정부가 전세사기 특별법 시행 이후 정부 대응을 강화하고 보완책을 내놨지만, 보증금 미반환 전세 사고 위험은 새해에도 여전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정부가 전세 사기 예방 목적으로 전세보증 보험 가입 기준을 강화한 점이 오히려 역전세난을 초래해 미반환 사고를 부추기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난해 5월 정부는 전세사기 예방을 위해 전세보증 가입 기준을 대폭 올렸다. 공시가격 인정 비율이 150%였지만 이를 140%로 낮추고, 담보인정비율(전세가율)은 100%에서 90%로 조정했다. 이를 적용하면 빌라의 경우 전세보증 최대한도가 공시가의 150%에서126%로 떨어진다. 지난해에는 신규계약에만 적용했지만, 올해부터는 갱신계약에도 해당 요건이 적용된다.

앞서 공시가격 인정 비율이 150%일 당시는 공시가격 1억원인 빌라 기준으로 계약 시 임대인은 1억5000만원에 전세보증을 가입하고 세입자를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올해 계약 만료를 앞두고 임차인이 갱신을 요구하면 기존 보증금으로는 보증가입을 유지할 수 없다. 126%를 적용해 보증금을 1억2600만원으로 낮춰야만 가입이 가능한 것이다.

오는 3월 발표 예정인 공동주택 가격이 1년 전보다 10% 하락할 경우, 전세보증에 가입할 수 없는 갱신 계약은 많이 늘어난다는 전망도 나왔다. 지난 3일 집토스에 따르면 올해 수도권(서울, 경기, 인천)에서 가입 불가한 갱신 계약은 77%에 이를 것으로 봤다. 지역별로는 계약 갱신 시 기존 보증금으로 전세보증 가입 유지가 불가한 경우가 서울은 63%, 경기 66%, 인천은 86%에 이를 것으로 나타났다.

[땅집고] 서울의 한 빌라촌. /연합뉴스


■ 보증보험 기준 강화에 ‘전세사기꾼’ 내몰린 임대인

보증보험 가입한도가 126%로 줄어들면서 임대인들은 ‘정부가 전세사기를 부추기는 꼴’이 됐다고 주장한다. 보증금을 돌려줄 상황이 되지 않아 갱신계약시 차액을 돌려주지 못하면 임대인은 의도하지 않아도 전세사기범으로 내몰리게 되기 때문이다.

새로운 임차인을 찾는 게 더 어려워졌다는 점도 문제로 꼽힌다. 전세사기 공포로 인해 현재 빌라 전세 시장에서는 보증보험 가입이 가능한 물건이 ‘안전한 물건’으로 평가받는데, 보증보험에 가입하지 못하면 사실상 임차인을 구하기 쉽지 않다.

아파트와는 다르게 빌라 공시가와 시세의 차이가 많이 난다는 점도 보증금 미반환 사고 위험을 높이는 데 영향을 미친다. 보증보험 기준이 126%로 내려간데다 공시가까지 내려가면 보증한도는 대폭 내려갈 수밖에 없다. 빌라 전세 계약 대부분에서 강제 역전세난을 맞이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

■ 보증보험 가입 한도 현실화하고, 비아파트 시세 기준 마련 필요

이에 모든 빌라를 대상으로 보증보험 기준을 강화하는 게 현실과 동떨어진 대책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빌라의 경우 매매수요가 거의 없어 시세를 산정하기 어려운 만큼 시세를 정확하게 평가해 합리적인 보증금을 산정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해야 하는데. 단순히 보증보험 기준을 높여 천편일률적으로 적용하니 보증금 반환 사고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대안으로는 빌라를 대상으로 한시적으로라도 보증보험 가입 한도를 완화하는 방안과 적정 시세 기준을 반영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방안이 꼽힌다.

성창엽 대한주택임대인협회장은 “빌라 전세 시장이 얼어붙으면서 임차인 구하는 게 하늘의 별 따기가 된 상황에 정부가 보증보험 가입 조건 강화를 밀어붙이고 있다”면서 “정상적으로 임대하던 집주인마저도 사회가 말하는 전세사기꾼으로 전락하게 됐다”고 했다. 이어 “빌라나 다세대 같은 비아파트는 시세 흐름을 즉시 반영하기가 어려워 시장가격과 공시가격 차이가 크다”면서 “비아파트에도 준용할 수 있는 시세 기준을 정부 차원에서 마련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땅집고] '2024 경제정책방향'. /기획재정부


■ 보증금 반환 위한 매매, 올해만이라도 과태료 면제해야

역전세난으로 인한 보증금 미반환 사고가 잇따르자 정부는 지난 4일 ‘2024년 경제정책방향’을 통해 역전세난 등 상황을 감안한 다세대·다가구 지원 3종 대책을 내놨다. 대책에는 임차인이 거주 중인 소형 및 저가주택을 매입 시 1년간 한시적으로 취득세를 감면하고 청약 시 무주택자 지위를 유지한다는 내용과 등록임대사업자가 한국토지주택공사(LH)나 지역주택공사에 올해에 한해 소형 및 저가 주택을 양도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내용 등이 담겼다.

다만 등록임대사업자의 주택 양도를 허용하긴 했지만 LH를 비롯한 지역주택공사가 비등록임대사업자인만큼 양도할 때 3000만원의 과태료가 부과될 수 있다는 문제가 먼저 해결되어야 한다. 의무임대기간 중 비등록임대사업자에게 양도시 과태료를 미적용하겠다는 문구를 기재하긴 했으나, 민법 개정이 필요한 사안인 만큼 즉시 시행되기엔 어려움이 따를 가능성도 있다.

성 회장은 “보증금 반환을 위한 임대인의 자금력이 한계에 다다른 상태로 보증금 미반환 사고는 올해 상반기를 지나면서 정점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면서 “임대인과 임차인 모두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는 적어도 올해만이라도 비등록임대사업자나 개인에게는 과태료 없이 매매가 가능할 수 있도록 기준을 완화하는 방안도 고려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배민주 땅집고 기자 mjbae@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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