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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천해수욕장 앞 거대한 흉물…30년째 버려진 유령아파트 정체

뉴스 이지은 기자
입력 2024.01.04 07:30


[땅집고] 올해로 30년째 폐건물 신세인 충남 보령시 소라아파트. /KBS캡쳐


[땅집고] “해수욕장 놀러 가는 길에 엄청난 ‘유령아파트’ 보고 깜짝 놀랐던 기억이 있다니까요.”

서해안의 핵심 해수욕장이자 매년 머드축제로 관광객들을 끌어모으고 있는 충남 보령시 대천해수욕장. 자동차를 타고 보령시내에서 이 곳을 연결하는 4차선 도로를 달리다보면, 갑자기 논밭 한 가운데 우뚝 솟아있는 대단지 아파트를 볼 수 있다. 그런데 이 단지는 일반적인 아파트와 달리 도색이 전혀 되어있지 않아, 잿빛 콘크리트 외벽 사이사이로 녹슨 철근이 삐져나와있다. 잡초까지 무성해 제법 으스스한 분위기를 풍긴다.

[땅집고] 공정률 50% 상태에서 공사가 멈춰버린 소라아파트. /유튜브 오지트레일 캡쳐


문제의 아파트는 충남 보령시 남포면 일대 4만7616㎡ 부지에 들어선 ‘소라아파트’. 1994년 지상 15층, 14개동, 총 1230가구 규모를 목표로 건물 골조가 올라가다가, 1998년 공정률 50% 상태에서 공사가 중단된 뒤 지금까지 방치돼왔다. 올해로 유령아파트가 된 지 무려 30년째다.

1993년 건축 허가를 받은 소라아파트는 첫 삽을 뜰 때만 해도 보령시 일대에서 볼 수 없었던 최신식 고층 아파트가 될 것이란 기대감을 모았다. 하지만 외환위기가 닥치기 직전인 1997년 11월 이 아파트 시공을 맡은 유성건설사업이 자금난으로 파산하면서 사업이 멈춰 섰다. 이후 경향건설이 시공권을 넘겨받긴 했지만, 시행사인 한국부동산신탁주식회사와 함께 나란히 부도를 겪으면서 최고 15층 중 13층까지만 지어진 채로 30년째 사업 진척이 없다. 그 뒤로도 토지와 건물이 매매, 신탁, 소송 등을 거치다가 현재 소유권은 예금보험공사로 넘어간 상태다.

[땅집고] 소라아파트 각 가구마다 마감 공사가 안돼 내부가 훤히 들여다보인다. /유튜브 오지트레일 캡쳐


경기가 정상화된 이후 소라아파트가 공사를 재개한다는 소식이 간간히 들리기도 했지만 사업 진척은 전혀 없다. 올해 10월 건물과 토지가 148억원에 공매로 나왔지만 선뜻 사겠다는 민간기업이 없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유령 건물로 남아있는 상황이다. 기업 입장에선 개발 사업을 처음으로 계획했던 30년 전과 비교하면 지방 소멸 등 이유로 보령시 아파트 수요가 크게 줄어든 데다, 이미 지역에서 실패한 사업이라는 낙인이 찍힌 소라아파트를 수백억원에 매입해 사업을 벌일 필요가 없다고 판단한 영향으로 풀이된다.

보령시는 소라아파트가 장기간 대규모 유령건물로 남아있는 바람에 지역 미관을 해치고 우범지대가 될 수 있어 심각한 문제로 인식하고 있다. 특히 핵심 관광지인 대천해수욕장 관문에 이런 유령아파트가 있는 것이 지역 발전에 도움이 안 된다는 의견이 대다수다. 하지만 소도시인 보령시의 재정여건으로는 소라아파트를 자체 처리하기 어렵다. 철거비만 80억~100억원으로 예상돼서다. 리모델링해서 건물을 재활용하기도 힘들다. 건축물 안전진단 결과 C등급을 받았을 정도로 구조물이 노후화돼 안전 문제가 우려된다.

[땅집고] 30년째 유령 건물로 방치돼있는 소라아파트가 지역 경관을 해친다는 지적이 쏟아진다. /유튜브 오지트레일 캡쳐


결국 보령시는 충남도에 도움을 요청했다. 문제를 자체 해결하기 어렵기 때문에 충남도 차원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올해 구기선 보령부시장은 김태흠 충남도지사에게 “소라아파트가 건립 공사 중단으로 장기간 방치된 채 흉물로 전락해, 안전 사각지대는 물론 도시미관을 저해하고 안전사고 위험이 있다”며 “이 아파트를 재정비를 통한 ‘충남형 정비모델’로 활용해야 한다”고 건의했다.

보령시는 충남도가 충남개발공사를 통해 소라아파트에 대한 타당성 검토를 진행한 뒤, 공공매입 방식으로 건물을 재건축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 건물을 청년 주택, 근로자 기숙사, 충남 청년 스마트팜 교육장 등으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란 설명이다. 보령시 추산에 따르면 소라아파트 대지와 인근 부지(5만3000㎡)를 추가 매입해서 대단지 아파트나 타운하우스 등을 짓는 경우 재건축 비용은 1269억원 정도가 들 예정이다.

하지만 지역 사회에선 충남도가 굳이 막대한 예산을 들여 보령시의 유령아파트 문제를 해결해 줄 필요성을 못느낄 것이라는 부정적 시각이 많다. 충남도 일대에 소라아파트처럼 공사가 멈춰 방치된 현장이 28여곳이라, 소라아파트에만 예산을 지원할 경우 형평성 논란이 불거질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이지은 땅집고 기자 leejin0506@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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