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집고] “현대자동차가 5400억원 들여 만든 공장을 단돈 14만원에 판다고요? 대체 왜요?”

이달 현대자동차가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 보유한 공장을 1만루블(14만원)에 매각하기로 했다. 현대자동차가 과거 이 공장을 5400억원을 투입해 지었고, 장부상 가치가 4100억원에 달한다. 어처구니 없는 ‘헐값 매각’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현대자동차는 최근 임시이사회를 열고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공장 ‘현대자동차 러시아 생산법인(HMMR)’의 지분 전체를 매각하는 안건을 승인했다고 밝혔다.

이번 매각 자산에는 1년에 자동차 23만대를 생산할 수 있는 상트페테르부르크 공장을 비롯해, 2020년 인수했던 옛 제너럴모터스(GM) 공장 부지도 포함됐다. 러시아에 대규모 딜러 네트워크를 보유한 자동차 판매업체 아트파이낸스가 단돈 14만원에 공장을 넘겨받을 예정이다. 공장의 장부상 가치가 4100억원에 달해 현대자동차 입장에선 회계상 손실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2010년 9월 완공한 상트페테르부르크 공장은 현대자동차가 2년 동안 약 5400억원을 투자해 건설했다. 당시 현대자동차가 6번째로 지은 해외 생산 시설이었다. 공장 완공식에는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도 직접 참석했다.

이 공장에선 현지 전략형 차종인 쏠라리스와 크레타 등을 생산했는데, 2021년 기준으로 연 23만4000대의 자동차를 뽑아내며 월 단위 시장 점유율 1위를 기록할 정도로 성과가 좋았다.

하지만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터지면서 상황이 돌변했다. 자동차 부품을 공급받기가 어려워졌고, 루블화 화폐 가치까지 하락하면서 손실이 날로 불어난 것. 더불어 러시아에서 사업을 철수하지 않으면 글로벌 시장에서 평판이 악화하는 것까지 감수해야 했다. 전쟁이 장기화하면서 공장은 멈춰설 수 밖에 없었다.

결국 현대자동차는 전쟁이 터진 후 생산 중단 1년 9개월째인 이달 공장을 매각하는 결정을 내렸다. 증권가에선 그동안 현대자동차가 상트페테르부르크 공장을 멈추면서 발생한 고정비 손실이 55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전쟁으로 러시아를 떠난 업체는 현대자동차 뿐만이 아니다. 러시아 시장 점유율 1위 기업이었던 프랑스 르노그룹은 지난해 5월 모스크바 공장을 시에 매각했고, 현재 합작사 지분은 러시아 국영자동차개발연구소에 넘겼다. 일본 닛산 역시 지난해 10월 러시아 공장과 자회사 지분을 NAMI에 매각하고 철수했다. 도요타, 벤츠, 포드, 폴크스바겐도 비슷한 방식으로 러시아에서 사업을 접었다.

현대자동차는 이번 상트페테르부르크 공장 매각이 현지 상황을 고려한 최적의 선택이라는 입장이다. 2년 안에 이 공장을 다시 인수(바이백)할 수 있는 조건을 달았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향후 전쟁이 종료하면 러시아 시장에 재진입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둔 것으로 풀이된다. 다만 러시아 정부 방침에 따라 향후 현대자동차가 공장을 다시 사들이려면 가격 협상 절차를 또 밟아야 하기 때문에, 매입에 수천억원 추가 비용이 발생할 것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현대자동차는 러시아에서 사업을 철수하는 대신 해외 생산 기지를 확보해나가고 있다. 인도, 인도네시아, 베트남 등 주로 아세안 국가다. 지난 8월 현대자동차는 GM 인도 법인이 보유하던 연 13만대 규모 자동차 공장을 인수했다. 또 유럽 내 유일한 전기차 생산 기지인 체코 노쇼비체 공장의 전기차 생산량을 현재의 두 배 이상으로 늘리기 위해 수천억원 규모 투자를 검토 중이기도 하다.
/이지은 땅집고 기자 leejin0506@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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