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집고

[단독] 신용평가사, 워크아웃 직전에도 태영건설 신용등급 A 줬다

뉴스 이지은 기자
입력 2023.12.29 14:32 수정 2023.12.29 15:57

[땅집고] 태영건설이 워크아웃을 신청한 12월 28일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에서 한 직원이 모니터를 확인하고 있다. / 뉴스1


[땅집고] 이달 28일 국내 시공능력평가 16위 건설사인 태영건설이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로 워크아웃을 신청했다. 그런데 국내 3대 신용평가업체는 워크아웃 직전까지도 태영건설의 신용등급을 투자적격등급인 ‘A-’ 수준으로 유지하다가, 워크아웃이 터지고 나서야 투기등급인 ‘CCC’로 부랴부랴 강등한 것으로 나타났다.

기업의 부실이 다 드러난 뒤에야 신용등급을 내리는 이런 ‘뒷북 대응’에 국내 신용평가사들을 어떻게 신뢰할 수 있겠느냐는 지적이 쏟아지는 분위기다.

■“신용 없는 신용평가사들?”…태영건설 워크아웃 터진 후에야 신용등급 내려

금융권에 따르면 국내 3대 신용평가업체로 꼽히는 한국신용평가·한국신용평가·나이스신용평가가 지난 28일 태영건설의 무보증사채 신용등급을 기존 ‘A-’에서 투기등급인 ‘CCC’로 강등했다. 태영건설이 발행한 기업어음의 신용등급도 기존 ‘A2-’(하향검토)에서 ‘C’(하향검토)로 낮췄다. 부동산PF 부실로 유동성 위기에 빠졌다는 사실이 공공연했던 태영건설이 이날 워크아웃을 신청한지 4시간여 만의 조치다.

신용평가업체들은 기업의 재무정보를 바탕으로 신용도를 분석한 뒤 신용등급을 매긴다. 이 신용등급은 자본시장에서 투자자들이 해당 기업에 투자 여부를 결정하는 풍향계 역할을 한다. 신용도가 가장 높으며 미래 환경 변화에 대한 안정성까지 갖췄다는 것을 의미하는 AAA등급부터, 채무불이행 상태로 재무가 악화한 D등급까지 총 10단계로 나뉜다.

[땅집고] 기업신용평가 등급별 정의. /이지은 기자


하지만 시장에선 이달 28일 워크아웃 직전까지도 국내 3대 신용평가업체가 매긴 태영건설의 신용등급이 A급의 하위 분류인 A-등급으로 비교적 높았던 데 대해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지난 27일 나이스신용평가는 태영건설의 신용등급을 A-로 유지하면서, 등급 전망만 ‘안정적’에서 ‘하향검토’로 낮추는 데 그쳤다. 그러다가 워크아웃 당일인 28일에야 갑자기 이 등급을 더 낮췄다. 무보증사채 신용등급을 A-(하향검토) CCC(하향검토)로, 기업어음 신용등급을 A2-(하향검토)에서 C(하향검토)로 강등하는 등이다.

같은날 한국신용평가도 태영건설 신용등급을 A-급으로 유지하다가 부랴부랴 수시평가로 무보증사채 신용등급을 ‘A-(하향검토)’에서 ‘CCC(하향검토)’로, 기업어음 신용등급을 ‘A2-(하향검토)’에서 ‘C(하향검토)’로 각각 낮췄다. 한국기업평가 역시 같은날 태영건설의 무보증사채 신용등급과 기업어음 신용등급을 각각 ‘CCC(부정적 검토)’, ‘C’로 내리는 늦장 대응을 보여줬다.

■금융위기 직후에도 신용평가 ‘늦장 대응’ 지적 쏟아져…개선 필요

업계에선 국내 3대 신용평가업체의 이런 뒷북 등급 매기기가 투자자들의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기업 신용등급을 정확히 매겨 투자에 대한 정보 비대칭을 해소해야 하는 신용평가사들이 본연의 역할을 제대로 못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다. 현재 신용평가사들이 매긴 신용등급을 믿고 태영건설에 투자한 사람들은 금전적 손실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이에 신용평가사들은 “기업의 신용등급이 급격하게 강등되면 간접 손실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최대한 보수적으로 평가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라고 해명한다. 여신을 보유한 은행은 신용등급 하락에 맞춰 충당금을 추가 적립해야 하고, 이는 당기순이익 감소를 불러올 수 있는 등 부작용이 발생한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국내 신용평가사들이 기업 워크아웃 직전에야 신용등급을 강등하는 뒷북 대응에 대한 문제가 꾸준히 제기되어온 점을 감안하면, 앞으로는 지나치게 보수적인 평가 분위기를 개선해야만 각 사 평가 능력에 대한 신뢰도를 높일 수 있을 것이란 제언이 나온다.

[땅집고] 2010년대 부산저축은행 영업정지 당시 노후자금을 투자한 사람들이 집단 시위를 벌이고 있다. /온라인 커뮤니티


실제로 신용평가기업들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인 2010년대 비슷한 지적이 받았던 바 있다. 한국기업평가는 2010년 말까지만 해도 부산저축은행에 대한 무보증 후순위채권에 BB-등급을 매기면서 “원리금 지급 능력에 문제가 없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부산저축은행이 영업정지를 당하기 직전인 2011년 2월 중순에야 이틀 사이에 두 차례에 걸쳐 신용등급을 CCC로 내리면서 “원리금 채무불이행이 발생할 수 있다”고 긴급 진단했다. 한국신용평가 역시 부산저축은행 신용등급을 BB- 수준으로 유지하다가, 영업정지 직후에야 CCC로 강등했다. 당시 신용평가기업들을 믿고 부산저축은행에 투자했던 고객들만 막대한 손해를 입었다.

진흥기업 사례도 있다. 한국기업평가는 2011년 1월 진흥기업의 기업어음에 대해 A3등급 판정을 내렸는데, 약 한 달 만에 진흥기업이 워크아웃을 신청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이 소식이 알려진 후에야 한국기업평가는 신용등급을 C로 낮췄다. LIG 건설 역시 2010년 12월 한국신용평가로부터 A3- 등급을 받았는데, 세 달만에 자금난에 몰려 법정관리를 신청하면서 신용평가사들에 대한 신뢰도 문제가 불거졌다. /이지은 땅집고 기자 leejin0506@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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