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집GO 파헤치GO - 한국 경제를 덮친 PF공포]
금융위기 이후 분양보증 사고 금액 최대
아파트 짓다가 건설사 부도나면
HUG가 나서지만…절차 까다로워
[땅집고] 올해 분양보증 사고 금액이 7500억원을 돌파해 금융위기 이후 11년 만에 최고 기록을 썼다. 부동산 경기 침체와 고금리가 겹치자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부실 위험이 커지면서 아파트 사업을 벌이던 중소·중견 건설사가 줄줄이 도산한 영향이다.
이들 회사가 공급한 새아파트를 분양받아 이삿날만 손꼽아 기다리던 수분양자들은 입주 계획이 틀어져 혼란을 겪고 있는 것은 물론이고, 예상치 못했던 추가 자금까지 부담하게 돼 가계에 타격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올해 분양보증 사고 7500억 돌파…중소·중견 건설사 줄줄이 부도·폐업해
이달 주택도시보증공사(HUG)에 따르면 올해들어 지금까지 발생한 분양보증 사고는 11건, 사고액은 약 7553억원으로 집계됐다. 지난 8월까지만 해도 사고액이 4881억원이었는데, 4개월 만에 3000억가량 늘어난 금액이다. 이는 금융위기가 닥치면서 부동산 경기가 폭락했던 지난 2012년(14건·9564억원) 이후 최대 규모다.
분양보증이란 시행사·시공사 등 주택 사업자가 부도·파산을 겪어 공사를 마치지 못할 경우, HUG가 계약자에게 계약금과 중도금 등을 대신 지급해 주는 일종의 보험을 말한다. 현행법상 분양사업자는 아파트를 선분양할 경우 의무적으로 분양보증에 가입해야 한다. 분양보증 사고는 부동산 경기가 호황이던 2021~2022년에는 한 건도 발생하지 않았다.
하지만 올해 1월 대구 달서구 장기동에 짓던 주상복합아파트 '인터불고 라비다'에서 3년 만에 처음으로 분양보증 사고가 터졌다. 시행사가 자금난으로 시공사에 공사비를 제 때 지급하지 못하면서 사업이 아예 중단된 것이다. 이후 전국 곳곳 현장에서 분양보증 사고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기 시작했다. ▲남양주 '덕소6A구역 재개발 사업' ▲파주 금촌역 '신일해피트리 지역주택조합' ▲울산 '온양발리 신일해피트리 더 루츠' ▲부천 '삼협연립3차 가로주택사업' ▲여수 '율촌 디아이뎀' ▲논산 '일구 스위트 클래스' ▲평택 '평택현덕 지역주택조합' 등이다.
이렇게 보증사고가 증가하고 있는 건 올해 부도·도산한 건설사가 늘어난 영향이 크다. 건설산업지식정보시스템 자료에 따르면 올해 들어 12월까지 부도 처리된 건설업체가 총 19곳인 것으로 확인됐다. 대부분이 중견·소 건설사다. 국토교통부 시공능력평가 기준 285위인 남명건설을 비롯해 대창기업(109위), 신일건설(113위), 에이치엔아이엔씨(133위), 대우산업개발(75위), 금강건설(578위), 국원건설(467위) 등이다. 더불어 폐업 신고한 종합건설사 수도 지난해 362곳에서 올해 12월 530곳으로 1년 만에 46% 급증했다.
■시행사·건설사 부도나면 HUG가 나서지만…
만약 주택 사업을 벌이던 시행사가 부도나거나 파산할 경우 HUG가 이를 보증사고로 간주하고, 사업 권한 및 책임을 넘겨받는다. 아파트가 이미 분양을 마친 경우라면 입주예정자들에게 선택권을 준다. 아파트를 끝까지 지어서 집을 받는 ‘분양 이행’과, 그동안 낸 분양대금을 돌려받는 ‘환급 이행’ 중 고를 수 있다.
HUG의 원칙은 분양 이행하는 것이지만 아파트 수분양자의 3분의 2 이상 동의가 있는 경우 환급 이행을 진행한다. 이후 사업장은 매각한다. 만약 보증사고가 발생한 시점에 아파트가 공정률이 80% 이상이라면 수분양자 동의 없이 분양 이행으로 간다.
시행사가 아닌 건설사가 부도·파산하는 경우라면 현장이 새 시공사를 골라 아파트 사업을 재개하도록 HUG가 관련 절차를 돕는다. 하지만 한 번 공사가 중단된 사업장을 넘겨 받을 건설사를 찾는 과정이 꽤 까다롭다고 전해진다. 통상 부도를 면치 못한 중소·중견 건설사가 담당했던 현장은 사업성이 떨어져 선뜻 나서는 회사가 없을 뿐더러, 다른 건설사 브랜드를 적용하던 아파트를 짓는 행위 자체에 대해서도 거부감을 느끼는 곳이 많아서다.
■아파트 짓다 멈추면…수분양자 입주 지연, 자금난 불가피
업계에선 내년 부도·폐업을 면치 못하는 시행사 및 건설사가 더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고금리와 원자재값 상승 등 여러 요인이 해소되지 않고 있는 상황이라 내년에도 건설 산업 경기가 회복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결국 피해는 이런 건설업체가 짓던 아파트를 수억원 주고 분양받은 수요자들에게 고스란히 돌아가게 된다. 아파트 공사가 중단되면 입주가 밀려 이사·자금계획이 틀어질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특히 보증사고로 사업주체나 시공사가 변경되는 경우 분양 당시 사업체가 약속했던 중도금 대출 무이자 등 금융 혜택이 사라지는 것도 수분양자 입장에선 타격이 크다. 예상치 못했던 연 수천만원대 이자가 가계 발목을 잡으면서 자금난을 겪는 수분양자가 적지 않을 것이란 예상이 나온다.
주택산업연구원 관계자는 “올해 가파른 금리 상승으로 주택시장이 빠르게 냉각되면서 부정적인 주택사업경기전망이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며 “다만 앞으로 금리 상승세가 완화되고 PF 문제가 어느 정도 정리될 경우 이런 부정적 인식이 개선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이지은 땅집고 기자 leejin0506@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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