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집고] 서울 강남권과 여의도 마포 등 공공택지에 주택 2만 채를 짓겠다던 정부의 공급 계획이 3년 넘게 표류하면서 향후 2, 3년 내 도심 주택 수급 불안이 더 커질 거라는 우려가 나온다.
정부는 8·4 공급대책을 발표하며 서울을 중심으로 수도권 신규 공공택지에 3만3000가구를 짓기로 했다. 하지만 24일 동아일보 보도에 따르면 이 중 서울 도심 곳곳의 공공택지에 공급하겠다고 밝힌 ‘미니 신도시급’ 물량 2만1700채가 사실상 무산됐다. ▲ 노원구 공릉동 태릉골프장(1만 가구) ▲경기 과천시 중앙동 정부과천청사 일대(4000가구) ▲서울 마포구 상암동 서부면허시험장(3500채) ▲서울 용산구 한강로1가 캠프킴 부지(3100가구) ▲서울 마포구 상암동 디지털미디어시티(DMC) 미매각부지(2000가구) 등이다.
이들 용지 가운데 강남권과 여의도 등 ‘금싸라기 땅’은 공공기관이 보유한 땅인데도 주민 반대나 지자체 협의 난항 등으로 아예 공공주택 개발이 막힌 곳이 적지 않다.
공공주택을 공급하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조차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LH가 보유한 토지에 300채 규모 임대주택을 공급하려 했지만, 공급 계획을 포기했다. 주민들 사이에서 금융특구를 조성해야 한다며 주택 개발 반대 현수막이 걸리고 반대 서명 운동이 벌어져 LH는 해당 용지를 민간에 매각하기로 했다.
서울 강남구 LH 서울지역본부 땅에 200채 규모 아파트를 공급하기로 했던 사업도 비슷하다. 강남구청역에서 도보 5분 거리 ‘금싸라기’ 땅이지만 빌라 밀집지라 아파트를 지을 경우 일조권 침해 등이 우려된다는 이유로 아직 아무런 개발계획이 나오지 않고 있다.
서울 서초구 반포동의 조달청 부지나 서초구 서초동 국립외교원 부지 역시 강남권에서 드물게 공급되는 물량이어서 관심을 끌었다. 하지만 구청과 지역주민 반대 여론이 거센 상황. 현재까지도 관련 기관 간 공식 협의조차 이뤄지지 못하면서 공급이 기약없이 미뤄지고 있다.
단체장이 나서서 반대하는 경우도 있다. 서부면허시험장, DMC 매각부지 등 대규모 택지가 포함된 마포구에서는 아예 구청장이 택지 발표 직후 단식투쟁에 나섰다. 결국 면허시험장은 다른 용도로 개발을 검토 중이고, DMC 매각부지의 경우 상업·업무시설 개발을 목적으로 용지 매각이 진행 중이다.
도심지 주택 공급 대책이 차질을 빚는 이유는 공급대책이 공공 간 면밀한 정책 공조 없이 땜질식으로 발표됐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지자체가 이미 자체적인 도시개발계획을 세워둔 상태에서 정부가 공급 확대를 위해 무리하게 공급 계획을 발표해 사업 표류를 자초했다는 것이다. 함인선 한양대 건축학부 특임교수는 “주민 민원 탓에 개발을 꺼리는 것”이라며 “지역 특성에 대한 고려 없이 물량 확보를 위해 무리하게 발표했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정책 발표가 일종의 ‘쇼’로 끝나지 않도록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송인호 한국개발연구원(KDI) 경제정보센터 소장은 “주택 공급을 예측 가능하도록 계획을 짜야 하는데 정부가 허수를 포함한 계획을 유지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며 “지금이라도 기존 계획을 살펴 도심 공급 현황부터 파악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국토부 관계자는 “사업이 지연·중단된 경우 최대한 대체할 땅을 발굴하고 있다”며 “공급 물량을 임대 대신 분양으로 전환하거나 지자체가 원하는 생활기반시설을 공급하는 방향으로 협의도 이어가고 있다”고 밝혔다. /배민주 땅집고 기자 mjbae@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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