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집고

공급폭탄에 세상에서 가장 비싼 '집값'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뉴스 전현희 기자
입력 2023.11.20 15:07 수정 2023.11.21 10:45
[땅집고]고층건물이 화려한 조명을 밝힌 홍콩의 야경. /조선DB


[땅집고] 홍콩 부동산 시장의 아성이 무너지고 있다. 지난 16일 파이낸셜 타임즈 보도에 따르면 내년 홍콩 집값이 10% 가량 하락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2024년까지 고금리 기조가 유지되며 수요가 감소하는데다 정부가 물량 공세를 펼치면서 주택 재고 소진이 어려워 집값이 하락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 전 세계 집값 선두 달리던 홍콩, 하락 시작

홍콩은 10여 년간 ‘세계에서 가장 집값이 비싼 도시’였다. 주택용지에 비해 인구 밀도가 높은 것이 높은 집값 주된 이유로 꼽혔는데 2021년 기준 ㎢ 당 거주인구가 6849명으로 뉴욕의 약 120배 수준이다. 중국 경제가 폭발적으로 성장하면서 여유자금이 홍콩으로 흘러들어온 것도 홍콩 부동산 가격이 크게 상승한 이유였다.

하지만 홍콩이 2020년 국가보안법을 시행하고 '제로 코로나' 정책으로 지난 2년간 20만 명 정도의 인구가 유출되면서 집값 상승세가 주춤했다. 연이은 금리 인상도 홍콩 집값 하락을 부추겼다. 미 연준의 공격적인 긴축 정책에 발맞춰 홍콩금융관리국(HKMA·홍콩의 중앙은행)은 누적 금리 5.25%포인트를 인상했다. 2022년 3월 이후 기준금리는 16년 만에 최고치인 5.75%를 기록했다. 지난해에는 홍콩 집값이 15.6% 하락해 24년 만에 최대치였다.

실제 하락 거래도 나타나고 있다. 홍콩의 부동산 중개업체인 센터라인 프로퍼티(Centaline Property Agency)에 따르면 Yuen Long의 Park YOHO Milano에 있는 495평방 피트 규모의 집이 최근 530만 홍콩달러( 67만9000 미국달러)에 팔렸다. 2018년 8월 이 집은 766만 홍콩달러에 팔렸다.

■ 홍콩 정부 무차별 공급 정책·가격 제한 정책으로 집값 잡았다

홍콩 집값이 하락하게 된 데에는 대내외적 여건 외에도 홍콩 정부의 공급정책이 주된 요인으로 꼽힌다. 홍콩 집값이 크게 뛰면서 일반 시민이 집을 살 수 없는 상황이 되자 홍콩 정부는 정부보유 토지를 무차별적으로 공급해 개발 업체로 하여금 지속적으로 주택을 공급하도록 유도했다.

특히 지난 해 취임한 존 리 홍콩 행정장관은 만성적인 주택부족 현상을 해소하기 위해 대규모 주택 공급 정책을 폈다. 10년 동안 43만 가구의 주택을 공급하겠다고 발표하면서 8개의 부지를 선정했다. 특히 새로 공급하기로 한 8개 부지에는 경량 공공 주택(light public housing)이라 공급 속도가 빠르다. 경량주택은 13~31㎡의 소규모 주택이다. 설계안이 표준화돼 있고 현장에서 바로 조립할 수 있는 ‘모듈식 구조’라 시공 속도가 빠른 만큼 공급 속도를 앞당길 수 있었다.


홍콩 상업지구의 전경/ 조선DB


■ 정부가 토지 공급 확대해 입찰가 떨어뜨려

홍콩은 인구에 비해 토지 개발이 부족하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2020년 홍콩 정부의 토지 이용 자료에 따르면 홍콩의 토지 중 75%는 아직 개발되지 않았으며 주택용지는 약 4%에 그쳤다.

이 때문에 정부는 토지 공급을 늘리는 방식의 주택 공급 정책을 펴면서 집값 안정화 정책을 폈다. 홍콩은 토지공개념을 채택해 국가가 토지를 전부 소유하고 있는데 땅을 주택 개발업자에게 일정 기간 임대하는 방식으로 주택을 공급한다. 개발업자가 토지를 임대하려면 홍콩 정부가 진행하는 토지 경매에서 최고가로 입찰해 계약을 따내야 한다. 수요가 많은 지역의 주택 용지는 비싼 가격에 낙찰되기 때문에 주택 가격이 높게 형성됐다.

그래서 정부는 특히 수요가 높은 지역에 공급을 집중했다. 홍콩 대규모 개발업체 차이나켐(Chinachem)의 도널드 최(Donald Choi) 대표는 “이전 정부는 일반적으로 도시 경제가 둔화되면 가격을 낮추기 위해 토지 경매를 중단했다"며 "반면 이번 홍콩 정부는 경기 부진에 따라 수년간 주택 수요가 줄어들었지만 건물을 짓기위한 부지 입찰을 지속했다"고 했다.

■ 미분양 가구 1만8300가구…할인 분양 실시

정부의 토지 공급 정책 결과 토지 입찰 가격이 떨어진데다 고금리 기조가 맞물리며 주택 수요가 줄자 홍콩 미분양 가구 수는 1만8300가구로 급증했다. 부동산 컨설팅 업체 JLL에 따르면 2007년 이후 최고치다. 현지 금융권에서는 현재 주택 재고를 소진하기 까지 4년 이상 걸릴 것이라고 예상한다.

[땅집고] 리카싱의 청쿵그룹이 아파트 분양가를 파격적으로 인하했다는 소식을 전한 한 홍콩 일간지 기사. /am730


이에 따라 일부 개발업체들은 실제 아파트 할인 분양에 나서고 있다. 홍콩 재벌 리카싱(李嘉誠)이 창업한 청쿵(長江)그룹이 지난 7월 야우퉁(油塘) 의 오션뷰 아파트를 주변시세보다 20~30%나 싸게 분양했다. 청쿵 그룹의 폭탄 세일은 소비자들에게 주택 분양가 인하 경쟁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기대감을 낳았다.

[땅집고] 청쿵실업이 분양가를 파격 할인해 내놓은 '코스트 라인' 2기 건설 부지. /Centaline Property


■ 고금리 기조 및 주택 공급 지속에 하락 전망 나와

홍콩 정부가 주택 공급 정책을 지속할 계획을 밝히고 있는만큼 당분간 홍콩 집값은 하락세를 이어갈 전망이다. 홍콩 정부는 “가장 중요한 관심사는 개발자의 이윤이 아니라 우리 국민이 민간 주택을 구입할 수 있는지 여부”라며 “안정적인 공급을 보장하기 위해 질서 있는 방식으로 계속해서 시장에 출시할 것”이며 “단기적인 대내외적 변동에 영향을 받아서는 안 된다”고 덧붙였다.

고금리 기조가 지속된다는 점도 홍콩 집값의 하락할 것이라 보는 이유 중 하나다. 스위스연방은행(UBS)의 중국 및 홍콩 부동산 리서치 책임자인 존 램은 “적어도 6개월 이상은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금리를 인하하지 않을 것”이라며 “내년 3월부터 금리 인하가 시작될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신용평가기관 ‘S&P Global Ratings’ 또한 내년 홍콩 집값이 5∼10% 하락할 것이라고 전망한다. ‘S&P Global Ratings’는 “아파트 재고가 쌓이기 시작하면 매매 가격에 더 큰 압박을 가할 수 있다”고 했다./전현희 땅집고 기자 imhee@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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