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집고] KB금융의 3분기 누적 순이익이 지난해 대비 8.2%(3321억원) 증가한 4조3704억원으로 4대 금융그룹 가운데 1위를 기록했다. 이 가운데 일부 계열사의 실적은 미진해 눈길이 쏠리고 있다.
대표적인 곳이 KB부동산신탁이다. 최근 실적도 부진한데, 미숙한 사업 운영과 불법 시비 등으로 잡음을 빚고 있다.
지난달 서울 재건축 최대어로 꼽히는 영등포구 여의도 한양 아파트에서는 사업 시행자인 KB부동산신탁이 정비구역 지정 전 시공사 선정에 나섰다는 이유로 서울시로부터 시정조치 요구를 받아 시공사 선정 절차가 중단됐다. 일부 소유주들은 “전문성을 갖춰야 할 신탁사의 잘못으로 피해가 예상된다”며 KB신탁을 상대로 소송을 예고한 상황이다.
신탁사는 자금력·전문성을 갖춰 조합 방식보다 재정비 사업 속도를 높일 수 있다는 평가가 많다. 하지만 미숙한 운영으로 밑천이 드러나면 전문성에 의심을 받기도 한다. 국내 신탁 방식 정비사업이 성공한 사례가 드물어 한 번 신뢰를 잃어버린 신탁사는 타격이 크다는 전망도 나온다.
■ KB부동산신탁, 위험 높은 차입형 신탁 늘어…단기 차입금도 증가세
2016년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도정법)이 개정된 이후 신탁사가 정비사업도 담당할 수 있게 되면서 신탁사를 찾는 재개발·재건축 조합이 많아지는 추세다. KB부동산 신탁도 2016년 도시정비사업부를 신설하고 재건축 시장에 본격 진출했다.
하지만 최근 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하반기부터 부동산 시장이 급격히 침체하면서 신탁사의 주 수익인 토지신탁 수주고가 2022년말 101조원에서 2023년 98조원으로 2000년 이후 사상 처음으로 감소했다. 최근 미분양이 증가하면서 올 3월 기준 신탁사업을 하는 데 필요한 재무 부담금을 나타내는 신탁계정대여금은 2조9718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9000억원 늘었다.
KB부동산신탁은 최근 부동산 시장의 불확실성이 커지며 책임준공형 개발신탁의 수주 실적이 감소하자 차입형 개발신탁 수주를 늘리는 데 집중하고 있다.
다만 부동산 경기 침체로 인해 책임준공형 수주보다는 차입형 개발신탁에 집중해왔는데, 향후 이 부분이 자금부담이 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차입형은 신탁사가 자금을 조달하는 방식이다. 신탁사에 위험이 큰 대신 수수료가 높은 편이다.
올해 상반기 기준 KB부동산신탁의 실적을 살펴보면 매출이 717억원으로 전년 동기 718억원과 거의 변화가 없었다. 영업이익도 올해 상반기 474억원으로 전년 동기 475억원와 비슷했다. 같은 기간 순이익은 354억원으로 전년 동기 351억원 대비 3억원 늘었다. 영업이익률도 66% 수준을 유지 중이다.
다만 이 같은 실적은 부동산 호황기인 지난 5년과 비교해보면 크게 감소한 수치다. KB부동산신탁은 2016년 영업이익 628억원을 달성한 이후 2017년 760억원, 2018년 1138억원으로 꾸준히 상승했다. 2019년과 2020년에는 영업수익 1211억원과 1387억원을 돌파했다.
KB부동산신탁의 수탁고 증감 현황을 살펴보면 올해 상반기 말 위험부담이 높은 차입형과 관리형 토지 신탁 수탁고는 각각 1조3710억원, 8조 1308억원이었다. 지난해 같은 시기 6988억원이었던 차입형 수탁고는 작년 3분기 말 처음으로 1조원을 돌파한 뒤 1년 사이에 두 배 가까이 늘었다. 단기 차입금 한도도 올들어 계속 증가세다. KB부동산 신탁은 올해 5월과 7월 두 차례에 걸쳐 3200억원 규모 단기 차입금 한도를 확대했다. 5월 1200억원, 7월 추가로 2000억원 규모다.
■ 신탁사, 전문성 검증 필수…“시공사 선정 앞당겨지며 역할 애매모호해질 수도”
업계에서는 신탁사가 재정비사업에 뛰어드는 경우가 늘고 있지만, 부동산 경기 침체 및 미분양, 유동성 위기로 신탁사에도 불황이 이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한국기업평가는 지난 7월 신탁업 전반에 대해 “비우호적인 영업 환경이 지속할 것”으로 내다봤다. 한기평 관계자는 “2016년 도시 및 주거환경 정비법(도정법) 개정으로 신탁사의 정비사업 참여가 가능해진 가운데, 현정부의 재건축·재개발 규제 완화에 힘입은 정비사업 시장 확대와 효율적인 사업진행 및 이해관계자 간의 분쟁축소를 위한 신탁방식 선호성향 강화로 수주가 증가하고 있다”며 “다만 도시정비사업의 경우 관리처분계획 인가 이후에 본격적인 수익인식이 시작되나, 인허가에 상당기간이 소요되는 점을 감안할 때 단기간 내 수익기여도가 높아지기는 어려울 전망”이라고 했다.
신탁사의 자금력과 전문성도 꼼꼼하게 검증해봐야 한다는 전문가들의 경고도 잇따른다. 한 업계 관계자는 “지난해 서울시가 조례 개정을 통해 조합설립인가만 나도 시공사 선정을 할 수 있도록 바뀌면서 시공사가 좀더 빨리 신용공여를 하고 사업비 조달을 할 수 있게 됐기 때문에 신탁사가 금리를 파격적으로 낮춰 자금을 조달해주지 않은 이상 역할은 더 애매모호해질 수 있다”며 “정비업체 쪽에서는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딴 놈이 가져간다는 말까지 나오는만큼 신탁사의 능력 검증은 필수”라고 했다. /김리영 땅집고 기자 rykimhp206@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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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리영 땅집고 기자 rykimhp206@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