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집고] 드러난 하이투자증권의 꺾기
대출조건으로 부실채권 투자 종용
동두천의 한 공동주택 개발사업을 맡은 A시행사. 지속된 고금리 기조와 부동산 경기 침체한 탓에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그러던 중 지난해 하이투자증권과 400억원 규모로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브릿지론 대출 계약을 체결했다.
그런데 세부 금융 조건을 논의하던 작년 5월쯤 하이투자증권은 A시행사에게 이상한 제안을 해왔다. 하이투자증권이 보유한 김천의 한 메디컬센터 최후순위 채권을 A시행사가 30억원에 인수하라는 것이다.
이 메디컬센터는 2021년 말 준공했지만 지난해 기준 미분양률이 50%에 달하는 공실 투성이 건물로, 투자금 회수가 어려운 상황이었다. 사실상 하이투자증권의 망가진 채권을 사들이는 조건으로 브릿지론 계약을 실행해주겠다는 의미였다.
A 시행사는 채권 인수를 거부했다. 그러자 하이투자증권은 투자 시 브릿지론 대출 때 금융 수수료 등으로 원금을 보전해 주겠다며 재차 인수를 요구했다.
“지금 우리 김천, 김천이 되게 급해요…이거 30억 되면 형 하는거 무조건 할건데” 증권사 직원이 시행사에 투자를 요구하며 한 말이다.
자금 조달이 어려웠던 A시행사는 사업이 엎어질 위기에 이르자, 결국 6월30일 하이투자증권의 후순위 사모사채를 30억원에 사들였다. 하지만 약속한 기간이 지나도록 브릿지론 실행은 하세월이었다. 하이투자증권은 A시행사에게 약 170억원 이상의 추가 담보 등을 요구하며 대출 심사를 미뤘다. A시행사 대표는 하이투자증권에 “도와줬더니 뺨 때리느냐”고 항의했다.
현재 김천 사업장은 결국 부도가 나 사모사채는 채무불이행을 선언했다.
지난 6일 A시행사는 금융감독원에 하이투자증권의 이 같은 행위가 금융소비자보호법 상 금지된 불공정행위, 속칭 ‘꺾기’에 해당한다며 신고서를 제출했다. 금감원은 이달부터 하이투자증권의 부동산PF를 들여다보겠다며 수시검사에 돌입했다.
‘꺾기’란 금융기관이 차주에게 대출을 내주는 조건으로 금융상품을 강요하는 행위를 말한다. 금융사가 우월적 지위를 활용해 악성 채권을 사라고 강요하기도 해 업계선 깡패짓이나 다름없단 이야기가 나온다. 법에서도 엄격히 금지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 금리가 치솟으면서 협상력이 높아진 금융사가 꺾기를 한다는 제보가 쏟아지고 있다. 하이투자증권이 저지른 꺾기 행태만 무려 21건에 달한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 A시행사, “하이투자증권이 부실 채권 매입 강요했다”
하이투자증권의 부동산 PF 꺾기 의혹 지난달 11일 정무위원회의 금융위원회 국정감사장에서 불거졌다.
이 자리에서 김종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꺾기 관행이 예전에는 은행권에서 벌어졌지만 최근 부동산 PF 시장이 어려움을 겪으면서 증권사도 가담하고 있다는 민원이 나온다”며 “대주단인 하이투자증권이 PF 협상 과정에서 채무자에게 대출을 해주는 조건으로 부실채권을 팔았다는 의혹이 나왔다”고 했다.
국감에 출석했던 홍원식 하이투자증권 사장은 당시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고 일축했다. 김 의원이 “돈을 빌리려는 사람이 (자금 조달이) 급한데 왜 부실채권을 인수하겠나”라고 되묻자 홍 사장은 “PF연장과 채권 매입은 완전 별개 거래”라고 주장했다.
김 의원은 “금융소비자보호법(금소법)상 한 달이 걸리면 ‘꺾기’인데, 2달이 넘어간다”며 “법에 안 걸리는 것뿐 사실상 꺾기가 맞다”고 다시 지적했다. 은행업감독업무시행세칙 상 중소기업에 대한 꺾기 간주 규정에 따르면 고객의 의사와 관계없이 대출실행일 전후 1개월 내 판매한 금융상품이 대출금액의 1%를 초과하면 꺾기로 간주한다. 하지만 사실상 실제 대출 실행이 2개월 가량 늦어진 점 때문에 별건이라고 주장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A시행사 대표는 땅집고와의 통화에서 억울하다고 반박했다. A시행사 대표는 “6월30일에 김천 채권을 인수했는데, 하이투자증권이 브릿지론을 실행해준다고 알려온 기간은 7월말, 심사 날짜는 7월20일로 잡혀 이 조건으로 김천 채권을 인수한 것이다”라며 “또 1개월이란 기간은 금감위내 규정일 뿐이고 법률상으론 기간 제한이 따로 없기 때문에 불공정거래가 맞다”고 주장했다.
■ 부동산PF 확대해온 하이투자증권, 금감원 조사로 신용도 추락할 듯
하이투자증권은 수년 전부터 부동산PF 대출 실행을 확대해왔다. 하지만 작년부터 금리 상승, 부동산 경기 침체가 이어지며 부동산PF 부실 위험 부담이 커진데다 금감원 검사까지 이어지면서 신용도 하락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한국기업평가는 “원자재 가격 및 금리 상승으로 부동산 PF 위험노출액이 큰 하이투자증권에 부담 요인이 되고 있다”며 “무등급PF 비중이 높고, 분양성과를 예측하기 어려운 신규 사업장과 브릿지 대출 비중이 많아 우발채무 규모가 크다”고 했다. /김리영 땅집고 기자 rykimhp206@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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