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면희의 참 쉬운 NPL 경제학] “부동산 담보부 NPL은 흥미로운 ABS가 된다”
[땅집고] 세상 누구라도 돈을 발행할 수 있다. 중세 프랑스에서는 봉건영주가 화폐를 찍었다. 지역화폐가 일찌감치 존재했다는 말이다. 미국에서는 1837년 시작된 자유은행시대(Free Banking Era)에 주립은행뿐 아니라 다른 민간은행(free bank)도 주정부가 발행한 채권을 담보로 민간 화폐를 자유롭게 찍어낼 수 있었다. 자유은행시대가 오래가지는 않았지만, 이런 방법이 아니라도 은행은 신용창출을 통해 오늘날에도 돈을 만들어 낸다.
실제로 이 세상에 유통되는 모든 돈 중에 국가가 발행한 돈은 단 1%에 불과하다. 기업과 투자은행, 증권회사도 수많은 종류의 돈을 쏟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돈이 필요한 기업가는 은행에 가서 돈을 빌려 전체 사회에 돈이 더 많이 돌게 하기도 하지만, 스스로 화폐를 발행하기도 한다. 그들이 발행하는 돈을 우리는 주식과 채권이라고 부른다. 기업 입장에서는 부채이며, 돈을 빌려주는 사람 입장에서 보면 주식이며 채권이다. 이런 증권도 일종의 돈이다.
물론 돈이라고 해서 모두 같지는 않다. 기본적으로 유동성과 불확실성에서 차이가 난다.
유동성이 가장 높은 것은 중앙은행이 발행한 현금이다. 그리고 유동성이 줄어들기는 했지만 정기예금이나 적금, 펀드처럼 재산 증식을 위해 금융기관에 저축한 돈도 원한다면 현금화할 수 있다. 만기에 받을 수 있는 이자를 포기하면 언제든지 현금으로 찾을 수 있다는 점에서 넓은 의미의 돈이다. 여기에 다양한 형태로 증권화한 부채(Security Debt)가 존재한다.
용어의 혼란스러움이 남아있지만, Asset-Backed Securities(ABS)라는 이름으로 만든 증권도 있다. 실무에서는 다른 의미로 사용되는 경우도 있지만 ABS는 일반적으로 실제 자산을 기초로 한다. 이 자산은 부동산과 같은 실제 자산, 또는 그로부터 얻어지는 수익이라고 할 수 있는 주택 모기지처럼 채무를 담보로 하기도 한다. 즉 ABS는 실물 자산의 소유권 또는 채무를 판매하는 것이며, 자산에 대한 소유권을 얻는 투자 상품이다.
그렇다면 부동산 담보부 NPL은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을까. 부실화하기 이전 NPL은 그냥 채권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는 부동산 담보부 GPL이었다고 할 수 있다. GPL은 Good Performing Loan의 줄임말로 연체하지 않은 정상 채권을 의미한다. 정상채권은 채무자가 꼬박꼬박 이자를 내고 있는 채권이다.
개인이 GPL에 투자하는 방법은 대출 규제로 돈을 빌리기 어려운 개인 대상으로 부동산을 담보로 받고 높은 이자에 돈을 빌려주는 형식을 취하게 된다. 하지만 이 또한 개인이 할 수 없기 때문에 대부업체를 통하게 된다.
이자를 잘 내고 있는 이런 GPL 채무자에게 문제가 발생해 이자를 3개월 이상 지급하지 못하면 NPL이 된다. 무담보 NPL이라면 채무자가 사라지는 것과 같으니 돈 가치가 상당 부분 소멸되기 마련이다. 물론 건물 등을 짓고 못 받은 공사채권처럼 공사 대상이 남아있어 채권으로서 가치가 있는 특별한 경우도 존재한다.
여하튼 부동산 담보부 NPL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두 갈래의 시나리오로 전개될 수 있다.
첫 번째 시나리오는 원래 채권자가 채권을 끝까지 보유하고 경매나 공매를 통해 담보로 제공받았던 부동산을 정리해 채권을 확보하는 경우다. 이 시나리오로 이야기가 전개되면 채권 소유자의 이익은 원래 이자 이익, 잘해도 늘어난 연체 이자 정도이다. 이것도 비극이라고 할 수 있는 결말은 물론 아니다. 하지만 은행의 경우 BIS(국제결제은행) 비율과 같은 규제 때문에, 일반 기업은 자금 흐름 때문에 각각 채권을 계속 보유할 수 없어 두 번째 시나리오가 탄생하게 된다.
두 번째 시나리오는 원 채권자가 NPL을 처분하는 것이다. 현행 국내법 테두리에서는 개인이 자유롭게 NPL에 투자할 수 없다. 즉 개인의 경우 채무인수 방식이나 사후정산 방식으로만 투자할 수 있다. 하지만, 미래지향적으로 개인도 담보부 NPL을 매입할 수 있다고 해보자.
이 경우 NPL은 더 이상 채권이 아니라 부동산이라는 자산을 기초로 한 ABS로 탈바꿈한다. 부실 채권이 아니라 매력적인 투자자산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흥미로운 ABS라고 할 수 있다.
GPL로 존재할 때는 단순하게 이자수익을 기대수익으로 한 채권이었다. 채권자는 담보물건인 부동산에 대한 권리를 ‘0’도 가지고 있지 않은 관계자였다. 하지만 NPL로 존재를 바꾼 후에는 채권자 또는 채권을 인수한 자가 부동산에 대한 권리를 주장할 수 있게 된다. 부동산 가격 상승에 대한 권리를 갖지는 못하지만 부동산이 매각돼 정산하면 채권 금액과 연체 이자를 돌려받을 수 있는 자격을 가진다. 따라서 NPL 소유자는 부동산을 기초자산으로 한 일종의 ABS를 보유하게 되는 셈이다. /글=이면희 엔케이어드바이저스 CSO(옥션 공동창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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