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집고] “저 타워팰리스 사는 남자입니다. 직장은 인천공항공사고요. 다만 8억원이 급하게 필요해서 그런데…”

집값이 비싼 서울에서도 부(副)를 상징하는 대명사로 통하는 강남 ‘타워팰리스’ 아파트. 1999년 분양 당시 국내에서 가장 높은 지상 66층 최고급 주상복합이었으며, 3.3㎡(1평)당 분양가도 1000만~1500만원으로 역대 최고가였다. 최근 이런 타워팰리스에 살 만큼 부자라고 재력을 과시하며 상대 여성에게 8억원을 갈취한 남성이 구속됐다.

지난 6일 인천지법 형사15부는 사기 혐의로 기소된 남성 A씨에게 징역 4년을 선고했다고 밝혔다. 법원에 따르면 A씨는 여성 B씨와 2021년 3월 12일부터 같은 해 11월 4일까지 교제하며, 총 29회에 걸쳐 8억8300여만원을 편취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A씨와 B씨가 알게 된 건 2019년 휴대전화 속 만남 애플리케이션을 통해서다. A씨는 B씨에게 자신이 영국 유학파 출신으로, 강남 타워팰리스에 거주 중이며 공기업 중에서도 선호도가 높은 인천국제공항공사에서 경영관리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고 소개하며 호감을 얻어냈다. A씨는 본인의 계좌에 현금 300억원이 예치돼 있다며 통장 사진 파일도 보여주는 등 재력을 과시하는 모습을 보였다. 두 사람은 채팅을 나누고 전화 통화하는 횟수가 늘어났고, 결국 사귀는 사이로 발전하게 됐다.

그런데 교제한 지 한 달 정도 되자 A씨가 금전 관련한 부탁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A씨는 “지갑을 잃어버려서 사채를 잠깐 썼는데, 원금과 연체이자가 5100만원이 됐다”며 “우선 1000만원을 보내면 내용증명을 보내지 않겠다고 하는데, 1000만원만 대신 갚아주면 나중에 한꺼번에 갚겠다”고 했다. 남자친구를 믿은 B씨는 별다른 의심 없이 돈을 보내줬다.

하지만 그 뒤로도 돈을 빌려달라는 A씨의 요구가 계속됐다. 명목도 친구가 카페 하는 데 인테리어하는 자금, 예치금 반환, 주택담보대출 상환, 친구 자동차 대출 상환 등으로 다양했다. A씨가 빌린 돈은 점점 불어나 5억원을 넘어가기 시작했다.

어느 날 A씨는 그동안 빌렸던 돈을 한꺼번에 갚을 방법이 있다고 제안했다. A씨는 "인천공항공사 임원에게만 혜택을 주는 연금 상품에 가입했는데, 최초 설정 금액이 8억원이더라”며 “부족한 2억7800만원을 채우면 2~3시간 뒤에 심사를 받은 뒤 바로 연금을 받을 수 있다, 이 돈을 받으면 그동안 빌린 돈을 다 갚겠다”고 제안했다. B씨는 이 말에 또 속아 그의 계좌로 요구한 돈을 송금했다. 하지만 A씨가 “이 연금이 만기 수령이 아니라 해지 수령이라 이자를 납부해야 한다, 2억8100만원이 또 필요하다”고 재차 요구했다. B씨는 이 말에 집까지 팔아 돈을 건넸다.

이렇게 B씨가 A씨에게 속아 건넨 돈만 29차례에 걸쳐 8억8321만원이다. 뒤늦게 B씨는 A씨를 사기 혐의로 경찰에 고소했다. 조사 결과 A씨는 과시했던 것과 달리 인천공항공사 직원도 아니고, 직업조차 없는 백수였다. 재산도 없었다. 그동안 자랑했던 300억원 예치 통장은 A씨가 사진 파일을 조작해 만들어 낸 것이었다. 지금까지 돈을 빌리며 설명했던 사정도 거짓말로 드러났다.

결국 재판부는 A씨에게 징역 4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A씨가 자신의 직업, 재력 등에 관해 터무니없는 거짓말로 피해자를 적극적으로 기망해 상당 기간 반복적으로 금전을 편취했고, 피해액의 규모가 8억8000만원이 넘는 거액인데에도 피해액 중 1000만원만 반환돼 대부분 피해가 회복되지 않았다”며 “사회초년생인 피해자는 거의 전 재산을 상실하고 피고인에게 돈을 빌려주기 위해 금전을 차용했던 지인들로부터 채무 독촉에 시달리는 등 심각한 피해를 입었다”고 양형 이유를 설명했다. /이지은 땅집고 기자 leejin0506@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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