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집고] 지난 20일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LH(한국토지주택공사) 용역 전관 카르텔 관련 긴급회의’를 열고 건설 업계 전체의 이권 카르텔 타파를 주문했다. LH 전관예우, 감시 시스템 미작동 등 부실 공사를 유발한 이권 카르텔을 사태의 핵심으로 지목하면서다. 하지만 국토부 관련 협회 곳곳에 전직 관료 출신을 배치하는 등 이권 카르텔을 주도해 온 국토부가 이를 근절하겠다고 나서는 것 자체가 모순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국토부는 인사 활성화를 명분으로 3~4년 조기퇴직 시킨 전직관료들은 건설, 교통 등 이익단체의 회장, 부회장 등 낙하산으로 내려보내 사실상 정년을 보장한다.
■LH 특혜 지적한 국토부가 이권 카르텔 주도?
원 장관은 지난 20일 페이스북을 통해 “전관을 고리로 한 이권 카르텔 문제를 방치할 수 없다”면서 “이권 카르텔 문제는 LH에서 먼저 터졌을 뿐 LH만의 문제가 아니기에 국토부가 앞장서겠다”고 밝혔다. 또 “LH뿐만 아니라 도로, 철도, 항공 등 국토부와 관련된 모든 전관 이권 카르텔을 철저히 끊어 미래로 가는 다리를 다시 잇겠다”고 말했다.
최근 불거진 이권 카르텔 논란은 LH 전관예우에서 비롯했다. LH 퇴직자들이 설계사와 감리회사 등 건설업계로 진출하면서 감시 및 감독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았다는 목소리가 나오면서다. 이한준 LH 사장은 “LH의 전신인 대한주택공사가 60년이 된 조직을 감안하면 수백명이 은퇴해 건설업계로 이동했다”면서 “LH 출신이 얼마나 많이 있는지, 최근에 간 사람이 있는지 등 차이가 있을 뿐 모든 회사에는 전관들이 다 있다”고 지적했다.
원 장관의 발언대로 이권 카르텔 문제는 비단 LH만의 문제가 아니다. 국토부 출신 공직자들이 민간 및 공기업으로 이동하는 전관예우 문화는 이미 건설 업계에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다. 지난 2021년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국토부가 2019년부터 2020년까지 용역 종합심사낙찰제를 통해 계약 체결한 38개 사업과 도로 공사 발주 26건 등 64개 관급 사업 전부를 국토부 전관을 영입한 업체가 독차지한 것으로 조사됐다. LH의 한 전직 직원은 “국토부 퇴직 장차관들이 로펌에 취업, 수억원씩 받으면서 업계의 로비스트로 공공연하게 활동하는데, LH의 퇴직자 취업만 문제 삼는 것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격”이라고 말했다.
한 업계 관계자는 “국토부 1,2급 출신 간부들은 정년을 3~5년 정도 앞두고 후배를 위한 용퇴라는 명분으로 사퇴하고, 대신 국토부가 관련 협회, 공기업 등에 자리를 마련해주는 관례가 있다”면서 “이권 카르텔을 근절하려면 무조건 퇴직시킬 것이 아니라 정부의 이해를 대변하는 공공기관과 협회를 정리하고 공직자 윤리법을 대폭 강화하는 등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했다. 고위직이 아닌 중하위직까지 관련 업계 취업을 막을 수 있는 법적 근거도 없다.
전문가 또한 전관업체 배제가 철근 누락 사태의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분석을 내놨다. 설계·시공·감리에 대한 감시를 강화하지 않고 전관 문제에만 초점을 맞추는 것은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공공주택 설계·감리 용역은 자본력과 인력, 경험, 역량을 보유한 사업체들이 담당하는데 전관들이 근무하는 곳을 제외하면 사업에 참여할 수 있는 용역업체가 크게 준다. 이는 독과점 현상 발생이나 공공주택 공급 위축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전문가인 전관들의 활동 영역을 축소하는 것도 아쉽다는 지적이다.
■이권 카르텔 정점 국토부…1년째 ‘근절 의지’만
업계를 대변하는 각종 기관과 협회 고위직에도 국토부 출신 인사들이 대부분 포진했다. 지난해 부임한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원장은 지금의 국토교통부 전신인 건설부에서 40년간 공직 생활을 한 인물이다. 전문건설공제조합의 전무이사도 국토교통부 출신이다. 건설협회 상근 부회장, 해외건설협회 회장, 한국 리츠협회 회장 등 모두 국토부 출신이다. 국토부 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부처의 상황이 비슷하다. 한 전직 국토부 관리는 “기획재정부처럼 힘 있는 부처 출신들의 낙하산 관치금융이야말로 이권카르텔의 표본”이라며 “LH사고의 본질은 예산절감만 내세우는 국가계약제도, 허술한 감리제도, 고질적 하도급 관행 등이 복합적으로 결합해서 터진 문제인데 이를 LH 퇴직자의 취업 등 이권 카르텔문제로 보면 해결책이 없다”고 말했다.
이권 카르텔과의 전쟁을 선포한 원 장관 본인이 ‘낙하산 인사’의 중심인물이라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올해 새로 교체된 국토교통부 산하 공공기관 경영진에는 여권 출신 인사가 대거 기용됐다.
‘전관예우’를 두고 원 장관이 처음으로 근절 의지를 드러낸 건 지난해 7월이다. 그는 페이스북을 통해 “공직자가 업체와 유착하거나 퇴직자와의 연결을 통한 카르텔을 막기 위한 제도적 방안을 세우겠다”고 강조했다.
그 이후에도 원 장관은 수차례 이권 카르텔을 근절하겠다는 의지를 밝혔으나 괄목할 만한 변화는 눈에 띄지 않았다. 같은 해 9월 국토부는 ‘산하 공공기관 혁신방안 마련’ 추진 상황을 발표했는데, 정작 LH와 관련해서는 제도 개선이 따르지 않으면서다.
국토부 내부에서도 이권 카르텔 근절에 대한 공감대 형성이 어렵다는 문제도 있다. 한 전직 관료는 “현 재직자들의 경우 퇴직 후 자신에게 불이익으로 작용하는 문제일 수 있기 때문에 크게 의지를 가질 수 있을지는 의문”이라고 했다. /배민주 땅집고 기자 mjbae@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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