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집고] 닭고기 전문 식품회사 하림이 서울 강남권 노른자 땅에 초대형 물류복합단지 개발을 본격화한 가운데, 서울시의 기존 지구단위계획이 허용하는 범위보다 더 큰 규모의 시설 계획을 추진해 논란이 불거지고 있다.
21일 서울시에 따르면 하림산업은 2029년까지 서울 서초구 양재동 225번지 일대 8만6000여㎡(2만6000평) 부지에 총 6조3000억원을 투입해 지하 8층~지상 49층짜리 물류·업무시설과 공동주택(998가구)·오피스텔(342실) 및 숙박시설을 포함한 복합단지를 짓겠다는 계획을 시에 제출했다.
용적률 800%, 연면적이 147만5245㎡로 규모만 놓고 보면 강남에 현대차가 추진하는 105층짜리 GBC(연면적 92만8887㎡)보다 1.5배 더 큰 초대형 사업이다.
하지만 양재동 255번지 일대는 물류창고 등만 들어설 수 있도록 시가 도시계획시설로 관리해 온 땅이다. 하림이 토지를 매입한 2016년 시의 지구단위계획 상으로는 건물의 용적률이 400% 이하로 제한돼 초고층·고밀 개발이 어려웠다. 하림은 이 부지가 2015년 국토교통부가 정한 도시첨단물류산업단지 시범사업지로 선정된 곳으로 물류시설법을 적용하면 ‘용적률 800%’ 개발이 가능하다고 주장하며 사업을 추진했다. 서울시는 2021년 6월까지 국토계획법(국토의 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을 근거로 하림의 개발을 반대했고, 관련 법령에 대한 해석차로 이 부지 개발은 수년간 답보 상태에 놓였다.
오세훈 서울시장 부임 이후부터는 시가 물류단지 조성에 초점을 맞추고 관련 부서를 신설해 하림부지 개발을 본격화하고 있다. 하림이 주장하는 물류시설법에 근거한 ‘용적률 800%’ 복합단지 개발이 가능해질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 양재동 하림부지, 지상49층 물류시설·아파트 900채 복합단지로 개발
서울 서초구 양재 하림부지(옛 화물터미널)는 양재IC 사거리 남서쪽에 있다. 양재IC 일대는 교통·물류시설이 잘 갖춰져 있고 경기 판교테크노밸리와도 가까워 기업과 연구소가 선호하는 노른자 땅으로 꼽힌다. 현재 이곳에는 현대자동차그룹글로벌경영연구소와 현대기아자동차본사 빌딩, LG전자 서초R&D 캠퍼스, 양곡유통센터·도매시장, 화훼공판장 등이 있다.
하지만 하림부지만 유독 오랜 기간 개발이 멈춘 채 방치됐다. 이 부지에 첫 개발 사업이 거론된 것은 이명박 전 대통령과 오세훈 서울시장이 이전에 서울시장으로 재임하던 기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5년 개발사 파이시티가 이곳 화물터미널 부지를 사들여 지하 6층~지상 35층 규모 백화점과 물류센터를 조성하는 사업을 기획했다.
시는 당초 화물터미널을 짓는 것이 목표였지만, 돌연 계획을 수정해 대규모 업무·판매시설을 들일 수 있도록 지침을 바꿨다. 이 과정에서 시행사 특혜 논란이 불거졌고 실제로 인허가 관련자들의 비리가 들통나 일부는 처벌을 받기도 했다. 이후 시행사의 자금난으로 사업이 좌초한 뒤, 2016년 하림이 4525억원에 땅을 매입하면서 개발이 재개됐다.
그런데 하림은 이 부지에 파이시티가 제시한 것보다 더 큰 규모의 시설을 짓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용적률 800%를 적용해 연면적 140만㎡, 최고 70층 규모 물류시설과 공동주택 등을 조성한다고 했다.
하림은 정부와 국회가 이 용지를 ‘도시첨단물류단지 시범단지’로 선정해 지구단위계획이 아닌 ‘물류시설의 개발 및 운영에 관한 법률’(물류시설법)을 적용받을 수 있다고 봤다. 관련 법령에 따르면 이 부지는 상업 지역으로 용적률이 최대 800%까지 허용될 수 있다는 것이다.
시는 개발 허가를 내주지 않았다. 당시 시는 해당 부지가 지구단위계획상 물류창고 등만 들어설 수 있는 도시계획시설로 용적률이 400% 이하로 관리된 데다, 용적률 상향 시 특혜 시비 및 교통 체증이 우려된다고 반대했다. 급기야 2021년 하림은 “서울시가 위법·부당하게 업무를 처리했다”며 감사원에 공익감사 청구를 신청했다. 감사원은 서울시 정책에 혼선이 있었다며 하림의 손을 들어줬다.
■ 서울시 “하림 부지 개발 방향, 연말쯤 최종 확정될 것”
오세훈 서울시장 당선 이후 시는 이 부지가 국토교통부가 정한 도심첨단물류단지 시범사업지로 지정된만큼 이 관련법에 근거해 개발을 추진하고 있다. 그간 양재동 하림부지 개발 업무는 서울시 도시계획 관련 부서에서 담당해왔는데, 오 시장 취임 이후 물류 부서를 따로 신설해 전담하도록 했다.
시는 기존 지구단위계획도 수정했다. 지난 3월 서울시는 양재 택지 지구단위계획 변경안을 가결했다. 하림 부지가 속한 양재동 도시지원복합권역에 시행자가 연구개발시설 비중을 40%(기존 50%) 도입하면 도시계획시설을 해제할 수 있다는 내용을 담았다. 변경안을 적용하면 용적률이 기존 400%에서 600%까지 허용된다.
하림은 물류시설법에 근거해 당초 70층 건물을 49층으로만 낮추고, 용적률 800%(연면적 140만㎡)의 시설로 시에 개발 계획을 제출했다. 시는 이를 토대로 통합 심의를 진행할 계획이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하림의 개발 계획이 과도하다는 의견이 많다. 현대가 강남에 추진하는 GBC의 연면적은 92만8887㎡로 양재동 하림 부지(140만㎡)의 절반이 조금 넘고, 대지면적은 7만9341㎡로 하림 부지 8만6000여㎡와 엇비슷하다. 현대는 이 부지를 단군 이래 최대 거래가액인 약 10조5000억원을 주고 매입했다. 하지만 하림은 2016년 단 4525억원에 땅을 샀다.
한 업계 관계자는 “관련 법에 따라 추진한다고 하더라도 물류단지에 1000가구에 육박하는 주택 분양이 가능해지면 사업성은 곱절로 늘어나게 된다”며 “양재IC처럼 외진 곳에 굳이 대규모 주거 시설 개발이 가능하도록 용적률을 높여주는 것이 타당한가에 대한 논란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하림 관계자는 “물류시설 외 시설에서 수익성을 확보해야 원활한 사업 진행이 가능한 상황”이라며 “R&D공간 기여 등으로 수익 시설이 줄고 사업성이 제한됨에도 식품 물류에 대한 하림그룹의 비전이 있어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서울시 관계자는 “현재 하림 부지에 대한 관계부서 협의는 마친 상태”라며 “연말쯤 물류단지계획 심의위원회 심의를 통과해야 최종 결정이 날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김리영 땅집고 기자 rykimhp206@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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