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집고] “780억이나 들여놓고 이딴 야구장을 지어놨다고요? 이 돈이면 아예 구단을 하나 차릴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최근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천안 생활체육 야구장’(이하 천안 야구장)에 대한 글이 화제를 모으고 있다. 천안시가 세금 총 780억원을 투입해서 건립한 야구장인데, 기본적인 잔디조차 깔리지 않아 황토흙이 드러나 있다. 거의 맨땅 수준인 이 야구장 모습을 담은 사진이 퍼지며 논란을 부르고 있는 것.
충남 천안시 동남구 삼용동 일대에 있는 천안 야구장은 2013년 개장한 아마추어 야구장이다. 2002년 천안시장에 출마해 당선을 거머쥐었던 성무용 전 천안시장의 공약에 따라 건립 사업을 추진했다. 총 사업비 780억원 규모로, 13만5432㎡ 면적에 성인 야구장 4면과 리틀 야구장 1면 등으로 구성한다.
업계에선 이 정도 예산이면 프로 야구장을 건설하기에도 충분한 비용이라고 입을 모은다. 실제로 전국 곳곳 야구장 건설 비용을 보면 ▲광주 챔피언스 필드 990억원 ▲울산 야구장 450억원 ▲포항 야구장 320억원 등이라는 것.
하지만 천안 야구장이 첫 개장한 모습을 본 사람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야구장에 기본적인 잔디가 한 포기도 깔려있지 않아 황토흙이 그대로 드러나 있어, 막 첫 삽을 뜬 공사 현장이나 다름없었던 것. 야구장을 둘러봐도 기둥 몇 개, 이 기둥에 걸린 그물망, 간이화장실 등 초라한 시설이 전부였다. 스포츠 경기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벤치나 스탠드 하나 없는 데다, 배수시설이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아 비가 오거나 물이 유입되면 땅이 질퍽한 논처럼 변해 사용조차 어려운 것도 문제로 꼽혔다.
시설이 열악해 찾는 사람이 없다 보니 천안 야구장은 사람보다 야생동물이 즐거운 시설로 전락하기도 했다. 곳곳에 동물 발자국과 배설물이 널려 있을 정도로 관리도 부실했다. 야구장 1루 구간에 노루나 고라니로 추정되는 동물이 지나간 발자국이 언론에 공개되면서 “1루 대신 노루”라는 우스갯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혈세 780억원을 들인 천안 야구장이 이처럼 초라하게 건립된 이유가 뭘까. 당시 조사에 따르면 사업비 780억원 중 야구장 부지를 확보하기 위해 쓴 토지 보상금이 무려 540억원에 달하며, 실제로 야구장을 시공한 업체에 지급한 돈은 18억원에 그치는 것으로 확인됐다.
문제는 토지 보상금 중 220억원을 받아 간 인물이 천안 야구장 건립 사업을 추진했던 성무용 전 천안시장과 친분이 있는 관계로 밝혀진 원모씨 일가라는 점이다. 성 전 시장이 지인의 땅을 세금으로 사줬다는 사실이 공개되면서 단숨에 특혜 논란이 불거졌다.
성 전 천안시장이 지인 원모씨의 땅을 더 비싸게 사주려는 목적으로 시장의 인허가권을 이용해 사전 작업을 거쳤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천안 야구장 토지보상비를 책정하기 직전, 천안시가 자연녹지였던 야구장 부지 주변 땅의 용도를 2종보통주거지로 변경해 줬기 때문이다.
개발사업에 제한이 걸리는 자연녹지와 달리 2종 보통 주거지는 아파트를 세울 수 있어 땅값이 더 비쌀 수 밖에 없다. 자연녹지일 때는 3.3(1평)당 110만원 정도였던 토지 가격이 2종 보통 주거지가 되면서 131만원으로 뛴 만큼, 천안시가 야구장 부지를 사들이면서 원모씨에게 당초 계획보다 더 비싼 돈을 건네야 할 수밖에 없었다.
천안 야구장에 대한 특혜 비리 의혹이 커지면서 지역 사회 문제로 떠오르자, 결국 검찰은 2017년 성 전 천안시장을 업무상 배임과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기소했다. 당시 성 전 시장의 변호인단은 공소 사실을 모두 부인하며 “삼룡동 야구장 부지 매입 시 감정평가사가 평가한 적정가로 구입한 것이며 천안시에 손해를 끼친 것은 아니다. 공소 사안 자체가 잘못됐다”는 입장을 내놨다.
직접 변론에 나선 성 전 시장 역시 “생활야구인들을 위해 시의회의 의견을 듣고 시 예산만으로 먼저 진행하고 차후 민간투자를 받기로 했던 것”이라며 “투입하기로 한 780억원 중 520억 원은 부지 매입 및 정리에 사용하고 나머지 예산으로 편의시설을 설치하려 했는데, 나머지 예산이 집행이 안 되면서 야구장이 방치된 것처럼 보여지는 것”이라고 발언했다.
‘맨땅 야구장’이란 비난을 한 몸에 받았던 천안 야구장은 현재 어떤 모습일까. 천안시는 2018년 추가 예산 20억원을 들여 야구장 개선 사업을 진행했다. 현재는 야구장에 인조 잔디가 깔려 있으며 경기운영실, 전광판, 안전매트, 비구 방지망 등 야구 경기에 필요한 다양한 시설이 제대로 갖춰진 상태다.
천안 야구장을 관리하는 천안시설관리공단은 직접 운영하는 공식 블로그에 “현재 기본적인 시설 개선을 모두 마쳤으며, 이곳을 야구장 운영관리의 모범사례로 만들고자 한다”며 “앞으로도 시민들과 야구인들의 의견을 적극 반영해 천안시민 모두에게 사랑받을 수 있는 야구장으로 최선을 다할 것”이라는 글을 남겼다.
하지만 이 글에 달린 댓글 여론조차 싸늘하다. 댓글에선 “얼마나 해쳐먹은거냐, 나라에 돈이 없는 것이 아니라 도둑놈이 많은 것이라더니”, “780억에 혈세 더 퍼붓고도 생활체육시설밖에 안 되는데도 홍보하고 싶어서 이런 글을 올리나, 정말 황당하다”는 등 비난하는 의견이 수두룩하다. /이지은 땅집고 기자 leejin0506@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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