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사 기상도] 삼성물산 ③
[땅집고] 삼성물산은 올해로 8년째 ‘한 지붕 네 가족’ 생활을 지속해 오고 있다. 가족 간 살림도 제각각이다. 건설·상사·패션·리조트 부문별로 강동구 상일동, 송파구 신천동, 강남구 도곡동, 경기 용인시 등에 사옥이 흩어져 있다.
삼성물산이 이처럼 한 지붕 네 가족생활을 하게 된 건 2015년 패션과 리조트 부문이 속했던 제일모직과 건설과 상사 부분이 속한 삼성물산이 합병하면서다. 당시 삼성물산 측은 ‘합병은 회사의 성장을 위한 경영상 목적으로 추진된 것’이라면서 각 부문을 유기적으로 결합해 상승효과를 낼 것이란 목표를 내세웠다.
합병 배경에 대해 공식적으로는 시너지 효과를 내세웠지만,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을 두고 삼성그룹 총수 일가의 승계 작업을 위한 것이 아니냐는 분석도 있어 논란이 됐다. 합병으로 수혜를 보는 대상이 회사가 아니라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당시 부회장)이라는 것이다.
결과를 놓고 보면 합병의 최종 수혜자는 삼성물산 최대 주주인 이재용 회장이었다는 점이 드러난다. 합병 당시 삼성 측은 ‘승계’라는 표현을 쓰진 않았지만, 합병을 통해 이 회장은 본인 지분 희석을 최소화할 수 있었다. 또한 연결고리가 약했던 삼성물산과 삼성전자의 지배권 또한 늘릴 수 있었다.
■합병 이후 시너지 효과?…매출 60조원 내세웠지만, 턱없이 부족
이재용 회장은 득을 봤지만, 삼성물산은 합병 당시 목표로 내세웠던 ‘시너지 효과’를 내지 못했다. 상사와 건설, 바이오 부문 실적 개선으로 매출이 오르긴 했지만 ‘시너지’를 언급할 만큼의 효과가 있었는지는 여전히 물음표가 따라붙기 때문이다. 주력 부문이 뚜렷하지 않다 보니 시장에서는 합병 전과 비교해 삼성물산이 가졌던 존재감이 흐려졌다는 평가도 나온다.
시너지 효과가 두드러지지 않은 까닭으로는 부문별로 조직이 뿔뿔이 흩어졌다는 점도 언급된다. 경영상 시너지 효과가 극대화되기 위해서는 활발한 인적 교류와 함께 아이디어를 교환할 수 있는 환경이 중요한데 조직이 부문별로 동떨어져 있어 이러한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실적도 기대 이하다. 합병 추진 당시 삼성물산의 목표는 ‘2020년 기준 매출 60조원’이었지만 2020년 말 연결 기준 삼성물산 매출액은 30조원, 영업이익은 8570억원에 그쳤다. 2014년 매출액 규모는 33조6000억원 수준이었다.
60조원으로 추산된 목표 매출은 합병으로 발생하는 시너지 효과를 의심하던 주주·투자자·애널리스트 등을 설득하는 자료로 활용되기도 했다. 목표액 달성 실패에 대해 삼성물산 측은 유가 하락, 중국 경제 제재, 각국의 보호 무역주의 강화 등 ‘대외 환경 악화’를 원인으로 들었다.
■건설·상사·바이오가 실적 이끌고, 패션·리조트는 제자리걸음
삼성물산 매출은 건설·상사·패션·리조트·급식/식자재유통·바이오 총 6개 부문에서 발생한다. 이중 실적을 견인하는 건 상사와 건설, 그리고 바이오 부문이다. 2022년 기준 매출액은 상사 부문 20조2175억원, 건설 부문 14조5982억원 규모다. 그다음으로는 바이오 부문이 3조원, 급식/식자재 부문이 2조5868억원, 패션 부문이 2조원, 리조트가 7566억원 수준이다.
2020년과 비교해 보면 지난 3년간 상사·건설·바이오 부문의 성장세가 돋보인다. 2020년 매출액 기준 상사 부문이 13조2515억원, 건설 부문이 11조1701억원이었고, 급식/식자재 유통 부문이 2조1274억원, 패션 부문 1조5451억원, 바이오 부문 1조 1636억원, 리조트 부문이 4259억원으로 뒤를 이었다. 상사 부문이 약 7조원, 건설 부문이 3조원으로 매출 상승폭이 가장 컸고, 특히 바이오 부문 매출액이 2배가량 상승하면서 가파른 상승세를 보였다.
바이오 부문의 경우 매출이 늘긴 했지만, 그룹 내 핵심 먹을거리로 자리 잡을 만한 신성장 동력으로 내세우기엔 아직 부족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실적은 좋지만, 자금 여력이 여유롭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신용평가는 “삼성바이오로직스의 경우 신제품 출시와 연구센터 완공으로 재무부담이 경감했지만 연구개발비용 및 재고자산 증가에 따른 운전자본 부담이 내재해 재무부담을 빠르게 낮추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건설 부문도 실적 호조를 이어가고는 있으나 건설 부문 일감이 계열사 사업 수주에 집중되다 보니 증권가에서는 기존 사업 외에 돌파구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새로운 성장동력이 보이지 않고, 태양광, 수소, 신도시 사업 관련해 의미 있는 수주가 드물다는 것이다. 이에 최근 건설 부문은 친환경 에너지, 스마트시티, 홈 플랫폼 등 신사업 포트폴리오를 구축해 사업다각화에 나서고, 국내 주택 사업 수주에도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신사업 부재와 주주 환원 정책 등의 문제로 삼성물산 주가는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김장원 IBK투자증권 연구원은 “삼성물산에서 비중이 크고 실적 개선이 가장 큰 사업이 건설인데 건설 이익이 좋아지는 만큼 주주에게 환원이 일어나고 있지 않다”면서 “실적이 좋더라도 주주환원 수준이 낮으니 투자자가 유입되지 않고 있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배민주 땅집고 기자 mjbae@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