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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래미안 포기→적극 수주' 삼성물산 돌변…승계 끝낸 이재용 뜻? [건설사 기상도]

뉴스 배민주 기자
입력 2023.07.31 07:38 수정 2023.07.31 07:54

[건설사 기상도] 삼성물산②

[땅집고] 삼성전자 사업장에 방문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모습. /삼성전자


[땅집고] 한 때 주택 사업을 접는다는 소문이 돌 정도로 사업 수주에 소극적이던 삼성물산이 돌변했다. 최근 삼성물산은 강남권을 중심으로 정비사업 수주에 나서는 등 적극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삼성물산의 이같은 변화를 두고 업계에서는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변심이 엿보인다는 분석을 내놨다. 삼성전자가 분기별로 5조~10조의 흑자를 기록하던 호시절에 삼성물산 주택 부문은 사고뭉치, 애물단지 취급을 받았다. “큰돈도 못 벌면서 안전사고나 내서 그룹의 명예에 먹칠을 한다”는 소리까지 나왔다. 한때 래미안 사업 철수까지도 고려했지만, 삼성전자가 적자를 내고 승계 과정을 매듭지으면서 구태여 1위 자리가 굳건한 주택 사업을 소홀히 할 필요가 없어졌다는 분석이다.

게다가 최근 건설 시장에 유동성 위기가 찾아오면서 자금이 두둑한 삼성물산은 우위를 점한 상황이다. 올 하반기부터 내년까지 본격적으로 서울 핵심지역 재건축 대어 시공권 입찰이 진행되는 가운데, 사업 비용을 원활하게 조달할 수 있는 삼성물산이 수주전에서 상대적으로 유리할 수밖에 없다.

■승계 탓에 외면? 반도체에 밀린 ‘래미안’

삼성물산의 래미안 사업 철수설이 불거진 건 2015년 초 이재용 회장의 승계 과정에서다. 제일모직과의 합병이 발표되기 직전 기업가치를 최대한 끌어올려야 할 삼성물산은 신규주택 공급을 급속도로 줄이는 이상한 모습을 보였다. 국외 건설 사업 일부는 삼성엔지니어링에 넘기기도 했다.

사업을 축소하면서 삼성물산 주가는 10% 가까이 하락했다. 당시 다른 대형 건설사 주가가 20~30%씩 오른 것과는 대조적이다. 이로 인해 업계에는 삼성물산이 래미안을 매각한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이런 ‘거꾸로’ 행보에는 삼성물산 사업 실적을 축소해 주가를 낮추고, 제일모직 주가를 올리려는 의도가 있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기업 합병의 기준이 되는 합병비율은 두 회사의 일정 기간 주가를 평균해 계산하는데 삼성물산 주가가 낮아지고 제일모직 주가가 올라갈수록 제일모직 지분을 많이 가진 쪽에 유리하다. 당시 이 회장의 제일모직 지분은 23.2%였지만 삼성물산 지분은 한 주도 없었다. 제일모직은 자산이 3배가량 많은 삼성물산보다도 3배 더 높은 가치를 평가받으면서 합병에 성공할 수 있었다.

이후 검찰이 이 회장의 배임 및 주가조작 혐의에 대해 수사에 나서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삼성 측이 인위적으로 주가를 조작했다는 주장을 내놓자, 삼성 측은 “주가 조작을 위한 시세조종은 결코 없었다”면서 “주가와 합병비율, 날짜 등을 예측해 정하는 것은 불가능”이라고 반박했다.

지난해 4월에는 2015년 당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합병을 거부하는 일성신약 등 삼성물산 주주들에게 제시한 주식매수청구가격이 너무 낮게 책정됐다는 대법원 결정이 나왔다. 다만 재판부는 “삼성물산이 이건희 전 회장 측의 이익을 위해 의도적으로 실적을 부진하게 했다거나 국민연금공단이 삼성물산의 주가를 낮출 의도로 주식을 지속적으로 매도했다는 사실이 증명되지 않았기 때문에 이를 판단의 근거로 삼은 원심의 판단은 부적절하다”고 지적했다.

당시 래미안이 천덕꾸러기 신세가 된 것은 주택 사업보다는 신사업인 반도체 사업에 주력하겠다는 이 회장의 경영 방침도 영향을 미쳤다. 이 회장은 사석에서 "반도체 만드는 회사가 아파트까지 지어야 하느냐"는 발언을 하면서 주택사업 포기설이 재계에 파다했다. 한 전직 임원은 “피땀 흘려 래미안이라는 파워 브랜드를 만들었는데, 젊은 회장이 반도체나 스마트폰에 비해 돈이 되지 않는다고 주택사업을 천덕꾸러기 취급한다”고 말했다.

삼성은 공식적으로는 과열된 수주 경쟁을 피해 최대한 보수적으로 임하겠다는 ‘클린 수주’를 내세웠지만, 속내는 국내 주택 정비사업이 워낙 까다롭고 돈이 안 된다는 이유에 있다. 국내 주택 정비사업은 경기 변동성에 민감한 데다 수주전을 통해 입찰하더라도 조합이 제기하는 각종 민원을 처리해야 한다. 내부 계열사 일감을 통해 매출이 안정적으로 확보된 이상 삼성물산이 규모가 작고 머리 아픈 주택 사업에 목을 맬 이유는 없다.

■삼성물산, 국내 주택 사업 다시 기지개 켜나

이후 수년간 삼성물산은 국내 주택 사업 비중을 최소화하면서 주택 사업에 소홀한 모습을 보였다. 올해 1분기 삼성물산 건설부문 신규 수주액은 6조1060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5.3%(1조2330억) 증가했다. 이 중 국내 건설은 3조6690억원, 해외 건설은 2조4370억원을 수주했는데 주요 프로젝트 대부분이 미국 테일러 반도체공장, 평택 4공장(P4) 공사 등 내부 계열사 일감에 쏠렸다.

전체 도급액 중 주택 사업이 차지하는 부분도 10% 수준으로 적다. 올해 3월까지의 삼성물산 건설계약 수주현황을 보면 전체 도급액은 76조 4182억원에 달한다. 이중 해외 건설 사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69조2754억원 규모지만, 국내 주택 사업은 7조1427억원 수준에 불과하다.

다만 최근 들어서는 송파구 가락동 ‘가락쌍용2차’ 리모델링을 수주하는 등 본격적으로 강남권 정비사업에 나선 상태다. 올해 하반기 재개발 사업 최대어로 불리는 ‘노량진 1구역’ 수주전에도 뛰어들었다. 노량진 1구역 수주전에서는 GS건설과 함께 2파전을 벌이고 있는데, GS건설이 시공한 현장에서 부실시공 사고가 잇따른 만큼 관련 논란에서 벗어난 삼성물산이 입성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이 밖에도 삼성물산은 주택 관련 신사업에도 기지개를 켜는 모양새다. 이달 삼성물산은 주거 서비스를 제공하는 플랫폼 ‘홈닉’을 선보였다. 스마트홈 기술을 가지고 개별 가구 제어는 물론 커뮤니티 시설과 관리 사무소까지 단지 전체로 연결을 확대할 수 있게 한다는 목표다. 삼성전자 기술을 주택에 접목하겠다는 방침이다.

업계 관계자는 “지난 몇 년간 삼성물산이 알짜 입지 정비사업 수주에 소홀했던 동시에 주택사업과 관련한 연구 개발을 줄이는 행보를 보였던 게 아쉽다”면서 “래미안은 국내 아파트 브랜드 중 처음으로 주택품질보증, 사물인터넷 등의 서비스 도입을 선도해 나갔던 전력이 있는 만큼 다시 사업을 재개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배민주 땅집고 기자 mjbae@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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