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집고] “2030세대인 MZ세대는 뒤늦게 상승장에 뛰어들었지만, 가격 급락으로 심한 트라우마를 겪고 있다. 개인이 아닌 세대 전체가 겪고 있는 ‘아파트 통(痛)’이다.” “출렁이는 아파트 가격은 불안 유발자다. 아파트가 편안과 불안의 이중주라고 할 수 있다”
박원갑 국민은행 부동산수석전문위원이 최근 출간한 ‘박원갑 박사의 부동산 심리수업’이라는 책을 통해 “집값 폭등론이나 폭락론 등 심리적 편향을 경계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그는 “비이성적이고 비합리적인 선택을 하게 만드는 ‘양떼 현상’ ‘행동 감염’ 등의 심리적 편향에 빠지지 말아야 한다”며 “여기에 빠지면 어리석은 판단과 선택을 하게 된다”고 했다. 시장은 오름과 내림을 반복하는 사이클이기 때문에 한 방향만 이야기하는 극단론을 경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영끌’ 혹은 ‘빚투’에 나섰다가 집값 하락을 맞아 힘겨워하는 MZ세대를 위한 조언도 담았다. 부동산 투자를 경험 삼아 부동산 접근법을 어떻게 바꿔야 할지 방향도 제시한다. 현재 국민은행 WM스타자문단 부동산수석전문위원으로 활동 중인 박원갑 위원은 이번 출판한 책 외에도 ‘박원갑 박사의 부동산 트렌드 수업’, ‘박원갑의 부동산 투자 원칙’, ‘부동산 미래쇼크’ 등 여러 책들을 출간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박원갑 박사의 부동산 심리 수업’을 쓴 배경은?
“2030세대인 MZ세대는 뒤늦게 상승장에 뛰어들었지만, 가격 급락으로 심한 트라우마를 겪고 있다. 개인이 아닌 세대 전체가 겪고 있는 ‘아파트 통(痛)’이다. MZ세대에게는 사회 진출 후 처음으로 겪는 큰 시련이라 어떤 말로도 위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단박에 트라우마에서 벗어날 수 있는 해결책은 없다. 가격이 다시 급등하지 않는 한 ‘영끌 푸어’ 문제는 쉽게 해결되지 않는다. ‘영끌’, ‘빚투’ 방식에 대한 반성적 사유도 필요할 것 같다. 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실패의 트라우마를 딛고 강건하게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집에서 행복을 찾을 수 있도록 조금이나마 도움을 줄 순 없을까 싶어서 책을 냈다. 이른바 ‘영끌푸어’ MZ세대의 아픈 마음을 다독거리기 위한 힐링북이다.”
-책에서 아파트를 ‘가시 속의 알밤’이라고 표현했는데, 이는 어떤 의미인가.
“아파트는 편안과 불안이 공존한다. 아파트살이는 마치 주식을 사놓은 심정과 비슷하다. 거래가 잦은 데다 시세가 롤러코스터를 자주 타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파트는 먹거리로 따지면 ‘가시 속의 알밤’ 같은 것이다. 아파트의 주거 효용성은 매우 뛰어나지만 수시로 노출되는 가격에 불안감을 느껴야 한다. 알밤을 꺼내 먹을 때처럼 아파트에 거주할 때도 가시에 찔리지 않도록 조심해야 하는데 그게 쉽지 않다. 가시가 곧 출렁거리는 아파트 가격이다. 출렁이는 아파트 가격은 불안 유발자다. 아파트가 편안과 불안의 이중주라고 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부동산 시장에서 ‘장기적 우상향’이라는 논리가 마치 진리처럼 퍼져있는데, 이에 대한 생각은?
“주택 가격은 물가를 포함한 ‘명목 주택 가격’과 물가를 뺀 ‘실질 주택 가격’으로 구분해서 판단해야 한다. 멀리 볼 때 우리 경제가 성장하고 통화량이 풀리는 한, 명목 주택 가격이 하락하기는 매우 어렵다. 주택연금은 명목 주택 가격이 적어도 오른다는 가정하에 상품이 만들어졌다. 명목 주택 가격은 외부 쇼크나 공급 과잉으로 일시적으로 폭락할 수 있다. 하지만 경제가 성장하는 가운데 물가가 오르면 주택 가격은 다시 평균회귀 현상으로 회복세를 보인다. 물가가 오르면 라면이나 운동화값이 덩달아 오르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다만, 앞으로 경제의 저성장체제가 굳어지면 명목 주택 가격이 상승하더라도 물가를 따라잡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 실질 주택 가격은 하락한다는 뜻이다. 가령 올해 주택 가격은 1% 올랐는데 물가는 2% 올라 실질 주택 가격은 1% 하락하는 방식이다. 당분간 우리나라 주택시장은 명목가격은 오르지만, 실질가격은 내려가는 국면을 맞을 가능성이 크다. 만약 주택시장이 대세 하락기라면 명목가격 하락이 아니라 실질가격의 하락기로 받아들이는 게 합리적이지 않을까. 이는 주택이 우상향 기우제를 지내는 재테크 상품으로서 메리트가 크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최근 일부 유튜버들까지 가세해 시장 판단을 하기가 쉽지 않아졌다. 폭등·폭락론을 강조하며 공포감을 불어넣는데.
“사람의 시선을 사로잡는 데 공포만 한 게 없다. 독일의 시인 괴테는 ‘인간을 움직이게 하는 두가지 힘이 있다. 그것은 공포와 이익’이라고 설파했다. 문제는 자본주의 사회가 고도로 발달하면서 공포 비즈니스가 유망한 비즈니스가 되었다는 점이다. 언론 매체나 SNS에서 이 세상이 곧 끝장날 것 같은 비관론과 공포론이 자주 나오는 이유가 있다. 공포를 이용한 돈벌이기 때문이다. 불안한 미래를 대비하는 것은 맞다. 하지만 공포 비즈니스의 희생양은 되지 말라. 극단론은 균형감각이 떨어지는 단순화의 함정일 가능성이 있다. 문제는 요즘 이런 비관적인 극단론에 의외로 많은 사람이 빠져든다는 점이다. 내 삶이 힘들더라도 한쪽으로 경도되지 않고 냉철하게 세상을 바라보는 균형추를 가져라. 시장은 오름과 내림을 반복하는 사이클이다. 한 방향만 이야기하는 사람은 멀리하라. 세상에 단순 도식만큼 위험한 일이 없다.”
-10년 만에 ‘하우스푸어’라는 용어가 나오고 있다. 이유는 뭐라고 생각하는가.
“아파트 재테크 잔혹사는 쳇바퀴 돌듯 반복되나 보다. 10년 전 무렵에는 베이비붐세대가 ‘하우스푸어’로 고통을 겪더니 이번에는 그 자식 세대인 MZ세대가 힘겨워한다. 미국발 고금리 충격으로 아파트 가격이 곤두박질쳤기 때문이다. 가격의 우상향 맹신에 심한 균열이 생겼다. 동시다발적으로 나타난 깡통전세, 깡통주택 문제는 이미 예고되었는지 모른다. 급등 뒤에는 반드시 급락이 뒤따르게 되어 있으니까. MZ세대는 부모 세대보다 더 많은 빚으로 집을 매수해 고통을 겪고 있는 ‘영끌푸어’다. ‘영끌푸어’는 ‘하우스푸어’보다 더 고통이 심할 수밖에 없다. 10년 전보다 집값이 많이 오른 만큼 빌린 돈도 더 많을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MZ세대는 20년 전 동일 연령대와 비교하면 소득은 1.4배 늘었지만 빚은 4.3배 급증했다.”
-2021년 103만명이 주택을 매입했는데 MZ세대가 주력이었다. 이들이 주택 매입 주력층으로 떠오른 이유는?
“이제 독립세대를 이룰 나이대가 되었으니 집이 필요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아파트 투자 열풍을 다 설명할 수 있을까. 개인적으로는 또래 압박이나 ‘상황의 힘(power in the environment)’이 적지 않게 작용했다고 본다. 사실 사람은 기본적으로 환경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는 불완전한 유기체다. 대단한 용기가 없이는 소속 집단이나 또래 집단의 압력을 견디기 힘들다. 2021년 집값 고점 당시 무려 103만 명의 무주택자가 상투를 잡았다. 무주택자들은 이번 기회에 집을 안 사면 영원히 내 집을 마련하지 못할 것 같은 초조감과 불안감에 시달렸다. 주변에서 갭투자를 해서 돈을 벌었다는 성공담도 결단을 재촉한다. 이곳저곳에서 집을 사라는 무언의 압박이 밀려오는데 이런 ‘상황’에서 과연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모험적인 투자를 하는 MZ세대들에게 조언을 한다면.
“요즘 MZ세대는 투자 방식이 너무 모험적이다. MZ세대의 주식이나 부동산, 코인 투자는 그 시작 시점이 상승기였다 보니 이런 투자 방식이 자리 잡은 게 아닌가 싶다. 초심자의 행운이라는 마법에 걸리기 딱 좋았다. 물론 차곡차곡 노동소득으로 부를 쌓기는 힘드니 단박에 투자소득을 통해 기성세대를 뛰어넘겠다는 조급증도 한몫했다. 하지만 ‘모 아니면 도’ 식의 투자는 장기적으로 승자가 될 수 없다. 그것은 투자보다는 도박에 더 가깝다. 투자 방식에 대한 각성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투자는 계속 시도하라. 그러나 도박은 하지 마라.”
-부동산을 구매하려는 이들이 어떤 자세로 시장을 바라보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는가.
“집을 잘 사는 방법은 타이밍과 가격 메리트를 함께 보고 판단하는 것이다. 지금은 미국발 고금리 태풍이 막바지 인만큼 타이밍보다는 가격메리트를 보고 사는 것이 좋다. 집이 꼭 필요한 사람은 2021년 10월 고점 대비 가격이 많이 떨어진 곳을 중심으로 선별 접근하라. 분양은 주변 시세보다 10% 정도 싼 곳을 공략하는 것도 좋다. 할인매장인 경공매시장도 관심 가져볼 만하다. 개인이 불확실한 미래를 대비할 수 있는 방법은 매입가를 낮추는 것이다. 싸게 사라, 그리고 또 싸게 사라, 무조건 싸게 사라.
그리고 예측이나 전망대로 세상이 움직이지 않는다. 전문가의 전망에 관심은 갖되 그 전망에 목숨을 걸지 말라. 전망은 그냥 봄날 옷깃에 스치는 바람처럼 지나가는 것이다. 전망보다 우연적 사건이 터졌을 때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를 고민하라. 무엇보다 우연의 가치를 높게 새겨라.”/정진택 땅집고 인턴기자 jjt@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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