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집고] “거제시가 16억원이나 들여 만든 짝퉁 거북선을 결국 포크레인으로 다 부쉈네요. 거북선에 쓰인 나무들은 나중에 땔감으로 쓰인다고 합니다. 16억원치 땔감이라니, 이거 완전 세금 낭비 아닙니까.”

“정부청사 앞에 있던 은색 저승사자는 결국 사라졌습니다. 어두운 밤에 그 조형물을 보면 섬뜩한 기분마저 들어요”

일명 ‘세종청사 저승사자’가 사라진 데 이어 경남 거제 조선해양문화관 광장에 있던 120톤(t) 거북선이 결국 해체되면서 ‘세금 낭비’ 논란이 일고 있다. 최근 철거된 거북선은 시가 16억원을 투입해 만든 공공조형물이다. 그러나 세워두는 것만으로도 돈이 줄줄 새는 상황이 되면서 새 주인 찾기에 나섰지만, 실패하고 땔감으로 전락했다.

문제는 이처럼 헐값에 처리되거나 주민들로부터 외면받은 공공조형물은 전국 곳곳에 있다는 것이다.

공공조형물 제작에는 적게는 수천만원부터 많게는 수십억원 세금이 투입된다. 지자체들이 앞다퉈 만든 공공조형물을 보고, 시민들이 냉담한 반응을 보이는 이유다. 도대체 왜 이런 황당한 일이 전국에서 발생하는 걸까?

흉물 같은 공공조형물이 등장하는 가장 큰 이유는 공공조형물 입찰 과정 때문이다. 지자체들은 공공조형물 입찰에서 직접제작증명서와 기업 신용등급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 금속구조물이나 실내건축 시공 면허가 필요할 때도 있다. 정작 개인 예술가는 참여하기 어려운 구조이다.

최근 전남 강진군이 올린 ‘강진군 목재친화도시 디자인 조형물 제작ㆍ설치 용역’에 참가하기 위해선 ▲직접생산증명서 ▲산업디자인전문회사 혹은 공공디자인 전문회사 자격증을 갖춰야 한다. 사업비는 총 4억3000만원이다.

부산시가 올린 ‘부산 도시브랜드 조형물 제작ㆍ설치’ 용역에는 더 많은 자격증이 필요하다. 시는 직접생산증명서와 디자인 전문회사 외에도 전기공사업, 중ㆍ소기업ㆍ소상공인 확인서를 소지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제작비로는 총 2억5000만원이 책정됐다.

공공 조형물이 흉물로 방치되는 이유는 또 있다. 제작비만 책정될 뿐, 유지ㆍ보수는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는다.

정부는 공공조형물 설치로 인한 예산 낭비를 막기 위해 2014년 9월 전국 지자체에 ‘공공조형물 건립 및 관리체계 개선방안’ 마련하라고 권고했다. 권고안에는 건립심의위원회 설치 등 공정성·투명성 확보방안 마련, 사후관리시스템 구축 방안 강구 등이 담겼다.

그러나 이는 권고에 불과하므로, 잘 지켜지지 않는다는 게 현장 이야기다. 한 전시디자인 회사 관계자는 “지자체 실무자들은 조형물 용역을 발주하고, 세우는 과정까지를 업무라고 본다”며 “민원을 받지 않는 한 조형물을 깨끗하게 관리하거나, 시민들에게 어떤 반응을 받는지에 대해선 신경 쓰지 않는 추세”라고 했다.

공공조형물이 관리 사각지대에 놓인 사이, 작가의 의도를 알 수 없는 조형물은 꾸준히 제작되고 있다. 일명 ‘춘천 프러포즈 조폭’은 원래 뚱뚱한 남성이 프로포즈를 하는 형상이다. 그러나 깍두기 머리와 금목걸이, 가방 등으로 인해 조폭 같다는 지적을 꾸준히 받고 있다.

세종시 나성동 정부세종청사 옆에 설치됐던 ‘흥겨운 우리가락’은 한때 '정부청사 저승사자’로 불리다 설치 4년 만에 철거됐다. 한국무용의 한 장면을 형상화한 작품이지만, 작가의 의도와 달리 시민과 공무원들로부터 공포의 대상으로 꼽혔다. /김서경 땅집고 기자 westseoul@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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