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집고

이대·연대 코앞에 두고도 폭망…1200억 들인 '유령건물' 신촌 민자역사

뉴스 박기홍 기자
입력 2023.07.11 08:05 수정 2023.07.11 11:02

[땅집고 '상권 긴급점검']
"대학생 천지인 곳에서 왜 망했을까"…17년째 방치된 신촌 민자역사

[땅집고] 2006년 문을 연 신촌 민자역사가 도심 속 흉물로 전락했다. 오픈한 지도 벌써 17년이 지났지만 활용 방안를 찾지 못하고 있고, 이대 상권 침체와 맞물려 이 일대 상권 위기가 가속화하고 있다.

[땅집고]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와 이화여대 사이에 위치한 신촌 민자역사./강태민 기자


신촌 민자역사 개발사업 시행사는 전국적인 밀리오레 체인망을 완성한 성창F&D다. 성창F&D는 2004년 신촌 민자역사에 1200억원을 들여 밀리오레 건물 공사에 착공했고 2006년 신축을 완료했다. 동시에 건물에 입점할 점포 분양사업에도 나섰다. 건물은 지하 2층~지상 6층에 연면적 3만㎡ 규모다. 신촌 민자역사는 1~4층엔 동대문 패션의 대중화를 이끈 쇼핑몰 밀리오레, 5~6층엔 멀티플렉스 영화관 메가박스가 입점해 신촌, 이대 상권의 중심이 될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그러나 지금은 4층까지 아예 문을 싹 닫았고 외부인 출입금지를 알리는 안내문이 붙어있다. 5~6층 메가박스 영화관만이 운영되고 있다. 주중 점심대 1시간가량 이 건물을 입장한 사람은 영화관을 찾는 학생 10여명에 불과했다.

[땅집고] 서울 서대문구 신촌 민자역사 1층에 붙은 현수막에는 "새단장을 해 다시 뵙겠다"는 내용의 안내문이 붙어있다./강태민 기자


신촌 민자역사는 사실 오픈 당시부터 불안한 조짐을 보였다. 2006년 오픈 당시 점포 입점률이 30%에 불과했다. 개관 3년 만인 2009년엔 공실률이 80%를 돌파했다. 개관 후 6년이 지난 2012년부터는 입점 점포가 아예 ‘단 한 곳도 없는’ 사실상의 폐점 상태를 맞았다. 지역 주민뿐만 아니라 연대·이대생들도 찾지 않는 흉물로 전락한 것이다. 두 개의 종합대학을 끼고 있는 곳이지만 활기라곤 전혀 느낄 수 없다. 연세대 재학생인 염준기 씨는 "대학교 입학 후 민자역사 물론 영화관도 가본 적이 없다"며 "학생들은 그냥 커다란 장애물이라고 생각할 뿐이다"고 했다.

사업 과정에선 소송전도 불거졌다. 성창F&D는 신촌 밀리오레 점포 분양 당시 경의선 신촌역이 복선 전철화되고 인천고속철도가 경유해 하루에 5~10분꼴로 열차가 288회 운행한다고 홍보했지만 철도 노선 계획이 없다는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1400여개 매장을 한 구역당 6500만~1억원가량에 분양했다. 신촌 밀리오레에 입점한 개인 사업자 300여명은 사기 분양이라면서 분양금 반환 소송을 제기했고 대법원도 임차인의 손을 들어줬다.

주변 상인들은 다른 곳보다 민자역사 바로 앞에 있는 상권들도 타격을 입고 있다고 말한다. 맞은편 박스퀘어 상가 건물도 곳곳이 비어있고, 인근 대로변 상가도 공실이다. 인근 상인 김모씨는 "10여년 전에 지하철 들어온다고 떠들썩했는데 말만 무성했고 실현되는 건 하나도 없다"며 "대형 상업시설이 유령빌딩이나 다름없어 아쉬울 따름이다"고 했다.

[땅집고] 서울 서대문구 신촌 민자역사 내부가 멀티플렉스 극장을 제외하면 텅 비어있다./강태민 기자


민자역사 사업자는 역사와 결합된 상업시설을 세운 뒤 정부에 기부채납하기 때문에 건물에 대한 소유권이 없다. 일정 금액의 점용료를 내고 해당 시설을 30년간 운영할 수 있는 권리는 가진다. 2006년 건물이 지어져 2036년 점용허가는 만료된다. 2020년 SM, 삼라마이다스 그룹이 1~4층 상가 운영권을 200억원에 인수해 식음료 매장과 쇼핑몰을 입점시킬 계획이었으나 코로나 사태가 터지면서 흐지부지됐다.

서대문구는 2021년 7월 방치된 신촌 민자역사를 리모델링해 임대주택과 주민편의시설을 갖춘 복합형 청년주택을 짓는 방안을 발표했으나 이 계획도 무산됐다. 지상 12층에 200~300세대 규모의 복합형 청년주택으로 리모델링될 경우, 신촌역 일대가 활기를 되찾을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추진했으나 지지부진하다. 서대문구청은 민자 역사는 구청 소관이 아니기 때문에 원칙적으로 개입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운영권을 갖고 있는 SM그룹 관계자는 “코로나 사태와 지역상권 악화로 사업 추진에 어려움이 있었다”며 “현재 역사 활성화를 위한 여러 가지 사업 제안을 받고 있으며 서대문구청, 국토부 등과 다양한 방면으로 검토하고 있는 상황이다”고 밝혔다.

연세대와 이화여대를 낀 대학가 상권인 신촌 민자역사가 폭망한 원인을 두고 다양한 해석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근본적으로 신촌 민자역사가 위치한 이대·신촌 상권은 동대문 밀리오레의 야간 도매 의류 시장과 전혀 맞지 않는 상권이라고 지적한다. 밀리오레 붐이 일던 시절에 우후죽순 생겨나면서 투자자들은 모았지만 상권 활성화엔 한계가 있었다는 것. 또한, 경의중앙선 신촌역 배차간격은 30분에서 1시간에 달한다. 이런 열차 운영 체계로는 사람들이 모일 수가 없다. 과거 패션 미용의 중심지였던 이대 상권의 몰락과 맞물리면서 이곳 상권이 회복의 동력을 찾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박기홍 땅집고 기자 hongg@chosun.com

※땅집고 유튜브 채널에 올라온 '상권 긴급점검' 영상을 바탕으로 재작성 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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