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집고] 이달 서울주택도시공사(SH)가 공급한 한 장기 미임대 주택에 입주자로 선정된 A씨(29). 지난 19일 설레는 마음을 안고 당첨된 집을 방문했는데, 그야말로 최악 수준의 집 상태 때문에 “문을 열자마자 기절할 뻔했다”는 후기를 남겼다. 현관부터 주방, 거실 등 온 집안 전체가 시커멓고 불그스름한 곰팡이로 뒤덮여 거의 폐가 수준이나 다름없었던 것.

놀란 A씨가 심각한 집 상태에 대해 SH에 항의하자, “몇 달 전 윗집 누수로 이렇게 된 것 같다. 거주 여부를 정확하게 알려준다면 리모델링 해주겠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하지만 A씨를 비롯해 문제의 집 사진을 접한 네티즌들은 “적당한 하자면 모르겠지만 이런 집에 어떻게 선뜻 살겠느냐”, “이걸 집이라고 임대를 주다니 너무하다. 거지도 입주를 마다하겠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SH 등 공공이 공급하는 임대주택 중 6개월 이상 입주자를 못 찾은 ‘장기 미임대’ 유형은 유독 하자가 심하거나, 집 상태가 크게 훼손돼 있어 충격적이라는 지적이 적지 않다. 다른 임대주택보다 입지가 열악하거나 낡은 시설 등 여러 이유로 수요자 선택을 받지 못하고 빈집으로 방치돼 있다 보니 그만큼 관리도 부실하기 때문이다. 특히 여름철 장마 등으로 습한 날씨가 이어지는 경우 누수가 조금만 발생해도 곰팡이가 기하급수적으로 번식하면서 A씨의 집처럼 심각한 사례가 나오기도 한다. 경쟁을 뚫고 입주 자격을 얻었어도 이런 집 상태에 실망한 당첨자들이 계약을 포기하면서, 주택이 장기 미임대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는 악순환이 반복되곤 한다.

서울시의회 신동원 의원에 따르면 지난해 SH가 공급한 임대주택 총 26만3453가구 중 공가(空家)가 1만3580가구다. 공가 가운데 장기 미임대 유형은 195가구이며, 이 중 44가구는 2년 이상 빈집 신세인 것으로 파악됐다. SH가 이런 공가 관리에 쓰는 돈만 연 88억원에 달한다.

이에 장기 미임대 주택 해소가 시급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신 의원은 지난해 서울시 행정사무감사에서 “SH가 공가 해소 대책을 시행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6개월 이상 방치 중인 공가에 대한 원인 분석과 세부 계획 수립을 제대로 추진하지 않아 매년 100억원의 세금이 낭비되고 있다”며 “새로운 주택을 공급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기존에 방치되고 있는 주택들부터 관리해야 내실 있는 주택 정책이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SH도 장기 미임대 주택에 대한 입주자를 구하기 위해 다각적으로 노력 중이다. 먼저 청약자를 끌어모으기 위해 일반 임대주택 대비 입주자 자격 요건을 대폭 완화하고 있다. 소득·자산 조건을 낮추거나, 아예 고려하지 않고 주택 소유 여부만 확인하는 식이다. 통상 임대주택 유형마다 입주자를 연 1~2회 정기 모집하고 있는데, 장기 미임대에 한해서는 수시 모집을 적용하고 있기도 하다.

SH 관계자는 “최근 3년간 장기 미임대 주택 해소와 관련해 가시적인 성과를 내고 있다. 청약 경쟁률이 17대 1로 기존 대비 크게 뛰었고, 총3000가구를 해소했다”며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수 년 동안 비어있는 집은, 리모델링한 뒤 해당 지역 주민들이 함께 쓰는 커뮤니티 시설 등 다양한 용도로 활용하고자 한다”고 했다. /이지은 땅집고 기자 leejin0506@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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