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집고

"돈 주세요" 하청업체 대표는 왜 새 아파트 벽에 매달릴 수밖에 없었나

뉴스 이지은 기자
입력 2023.05.25 15:22

원청 "계약된 금액 모두 지급" vs. 하청 "추가금 줘야 한다"
결국 시위 나선 하청업체 대표, '재물손괴' 현행범 체포
원자재·인건비 상승에…공사 현장 곳곳 갈등

[땅집고] 경기 화성시 반월동 '나노시티역 롯데캐슬' 아파트 외벽에 붉은 페인트로 '돈 줘, 주세요'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온라인 커뮤니티


[땅집고] “돈 줘, 주세요.”

경기 화성시 반월동의 ‘나노시티역 롯데캐슬’은 지난해 11월에 입주한 총 999가구 규모의 새 아파트다. 동쪽으로 삼성전자 기흥캠퍼스를 끼고 있고, 버스를 타면 지하철 1호선 병점역과 수인분당선 망포역까지 15분~20분 정도 걸려 대중교통망도 나쁘지 않다는 평가다.

삼성전자 직주근접 입지란 강점 때문인지 집값이 화성시 시세를 웃돈다. 전용 59㎡(25평)가 올해 2월 4억8000만원, 84㎡가 지난 3월 6억5000만원에 각각 거래됐다.

그런데 최근 이 아파트 외벽에 붉은색 페인트로 ‘돈 줘, 주세요’라고 쓴 문구가 온라인을 통해 확산하면서 네티즌들의 주목을 한 몸에 받고 있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땅집고] '나노시티역 롯데캐슬' 아파트 외벽에 '돈 줘, 주세요'라는 문구를 적은 사람은 도색업체 대표인 한모씨다. 그는 이 단지 시공사인 롯데건설의 하청업체로부터 재하청을 받아 페인트칠 작업을 했으나, 원자재값과 인건비 인상에 따른 추가 임금을 받지 못했다고 주장한다. /온라인 커뮤니티


경기도소방재난본부와 경찰에 따르면 문제의 문구를 적은 사람은 도색 노동자인 50대 한모씨다. 시공사 롯데건설의 하청업체로부터 재하청을 받은 도색업체 대표로 알려졌다. 한씨는 지난해 4월부터 도색 작업에 대한 계약을 맺고, 동료 10여 명과 함께 약 4개월 동안 아파트 외벽에 페인트칠을 해왔다.

그런데 원자재값이 오르고 인건비가 상승하면서 갈등이 터졌다. 당초 계약했던 금액으로는 이익은 커녕 손해를 감수해야 했던 것. 이에 한씨는 하청업체 측에 추가 비용을 지급해달라고 요구했다. 수천만원에 달한다고 알려졌다. 하지만 한씨에게 도색 작업을 맡긴 원청업체는 “이미 계약된 금액을 모두 지급했기 때문에 문제 될 것이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결국 지난 24일 한씨는 추가 임금을 받아내기 위해, 그의 직업을 살린 ‘고공 시위’를 감행했다. 아파트 건물 옥상에 연결한 로프를 타고 내려오면서, 아파트 외벽에 붉은색 페인트로 ‘돈 주세요’라는 글씨를 써 내려간 것. 이 장면을 목격한 시민들은 119에 사람이 아파트 외벽에 매달려있다고 신고했다. 이에 경찰과 소방당국이 출동해, 건물 주변으로 에어 매트리스를 설치하고 만일의 상황에 대비했다.

경찰 위기협상팀이 4시간여 설득한 끝에 결국 한씨는 오후 3시 22분쯤 스스로 지상으로 내려와 농성을 끝냈다. 경찰은 곧바로 한씨를 재물손괴 혐의 등으로 현행범 체포했다. 경찰은 그가 시위에 나선 경위와 함께 하청업체가 이들에게 임금을 제대로 지불했는지에 대해 조사 중이다.

[땅집고] 최근 조합과 시공사 간 공사비 갈등이 터진 수도권 현장 정리. /이지은 기자


최근 건설업계에선 한씨와 비슷한 상황을 겪고 있는 회사가 적지 않다. 건설 원자재 가격과 인건비가 일제히 오르면서 과거 계약했던 금액만으로는 공사를 진행하기가 어려워져, 조합과 건설사 혹은 원청업체와 하청업체 간 갈등이 심심치 않게 불거지고 있다. ‘

대표적인 것이 공사비 문제다. 경기 성남시 산성구역 재개발 시공단(대우건설·GS건설·SK에코플랜트 컨소시엄)은 당초 계약한 3.3㎡(1평)당 공사비 445만원으로는 시공이 힘들다고 판단해, 조합 측에 이보다 49% 오른 661만원으로 재계약을 요구하고 있다. 경기 양주시 삼숭지역주택주합도 최근 정기총회를 열어 기존 시공사인 현대건설과 계약을 해지하고 쌍용건설을 시공예정사로 선정하는 안건을 의결했다. 현대건설이 기존 공사비에서 약 25% 올린 3.3㎡당 643만원을 요구하면서다

한씨의 고공 시위 사건을 접한 네티즌들은 “공사를 맡겼으면 정당한 임금을 지불해야지 너무하다”, “그야말로 ‘벼랑 끝 시위’다. 오죽하면 그럴까. 한씨의 마음이 이해가 간다”는 등의 반응 보이고 있다. /이지은 땅집고 기자 leejin0506@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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