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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희룡 '에스크로' 검토 시사하자…"전세 아예 없애자는 것"

뉴스 김리영 기자
입력 2023.05.19 07:54 수정 2023.05.19 17:29

[땅집고] 최근 전국에서 대규모 전세사기가 벌어지고 피해가 확산하자 정부가 대대적인 전세제도 손질을 예고했다.

[땅집고] 최근 전국에서 전세사기 사태가 벌어지자 정부가 전세제도의 대대적인 손질을 예고했다. /조선DB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지난 16일 기자간담회에서 “수명이 다한 전세제도에 대한 근본적인 개편에 착수하겠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학계와 전문가, 관련 업계의 의견을 수렴한 뒤 하반기부터 본격적인 개편 작업에 들어갈 것으로 알려졌다.

우선 정부는 지난 문재인 정부에서 도입한 임대차 3법을 대폭 수정할 것으로 보인다. 또 무분별한 갭(gap·전세를 낀 주택구입) 투자, 보증금 미반환 사태를 방지할 대안 중 하나로 전세 보증금을 집주인이 직접 운용하는 것이 아닌, 금융기관에 맡겨놓는 ‘제3자 예치’ 제도가 포함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업계에선 임대차 시장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정부의 인식에 공감하면서도 정부가 시사한 개선책에 대해 의견이 엇갈리는 모습이다. 전세제도의 장점이 분명한 만큼 설익은 정책으로 시장이 더 큰 혼란에 휩싸이지 않도록 세심한 처방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 “전세시장 불안, 임대차 3법 영향보단 고위험 전세 방치한 탓”

정부의 전세 제도 개편안에 담길 것으로 예상되는 핵심 조치 중 하나는 지난 정부가 시행한 임대차 3법 개편이다. 임대차3법은 2020년 7월 국회를 통과한 주택임대차보호법 및 부동산거래신고법 개정안에 따른 제도로 계약갱신청구권(2년+2년), 전월세 상한제(5%), 전월세 신고제를 골자로 한다. 시행 직후 신규 전세 계약을 맺는 집주인이 4년치 전세금을 한 번에 올려 받으려고 하면서 전세금이 오르는 부작용이 나타났다.

원희룡 국토부 장관은 임대차 3법 손질을 시사하며 “억지로 4년을 보장하고, 가격을 이것 이상 못 올리고, 신고 안 하면 과태료인 건 대책이 될 수 없다”고 말했다. 업계에선 4년에 걸친 전월세 계약 갱신 기간과 5%로 제한된 상한 요율을 완화하는 방안이 담길 것으로 예상한다.

[땅집고]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16일 세종시에서 열린 출입기자단 월례 오찬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하지만 전문가들은 임대차 3법이 현재 전세시장 불안에 직접적인 원인이 된 것이 아니라고 지적하며, 근본 원인에 집중해야 한다고 했다.

김진유 한국주택학회장(경기대 도시교통학과 교수)는 “임대차 3법은 시행 초기 일시적으로 전세금 상승을 야기한 측면이 있지만, 전세사기의 직접적 원인이라고 보긴 어렵다”며 “최근 나타나는 전세시장 불안 문제는 집값의 90%, 100%가 넘는 고위험 전세 거래도 무리 없이 체결되도록 정부가 내버려 둔 데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전세는 세입자가 집주인에게 돈을 빌려주는 채권의 일종인데 현재 전세권·임차권 설정 등은 특수한 경우만 가능해 등기부등본에 세입자 권리가 분명하게 드러나지 못했다”며 “은행에서 집주인에게 돈을 빌려줄 때는 무조건 등본에 근저당 설정이 이뤄지는 것과 비교하면 세입자 보호가 상당히 부실한 제도인데도 그대로 운영된 것”이라고 했다. 이어 “등기부등본의 세입자의 권리를 명확하게 표기하는 시스템, 집주인이 전세 보증금을 시세의 70%까지만 받도록 상한선을 두는 등의 조치가 포함돼야 한다”고 했다.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수석전문위원은 “미국발 금리인상 여파로 부동산 가격이 급락한 것이 전세시장 불안의 근본 원인”이라며 “경기 불안에 가격이 크게 변동한 가운데, 전세가율이 높은 계약도 무방비로 체결된 것이 전세사기의 불씨가 됐다”고 강조했다. 이어 “집주인이 전세 보증금을 매매가격의 50% 이하로만 받도록 상한을 두고, 이를 무조건 강제하기보다 집주인에게 세제 인센티브 등을 주는 방식으로 유도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개편안에 전세 대출 개선책을 포함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송승현 도시와경제 대표는 “취약한 차주에게 무분별한 전세 자금 대출을 확대하며 전세사기 판이 더 커진 측면이 있다”며 “차주에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을 적용하거나 한도를 낮추는 등의 조치가 필요하다”고 했다.

■ ‘에스크로 제도’ 도입 여부 주목

정부가 무자본 갭투자를 원천 차단하기 위한 수단으로 ‘에스크로(Escrow) 제도’를 도입할지도 주목된다. 에스크로 제도는 부동산 거래 과정에서 전세 보증금을 임대인에게 직접 건네지 않고 국가의 공인을 받은 기관 계좌에 맡기는 방안이다. 만약 이 제도를 도입하면 무자본 갭(전세를 낀 주택 매입) 투자가 원천 차단되고, 집주인이 함부로 보증금을 유용하지 못하게 돼 세입자가 돈을 떼일 위험이 크게 감소하는 효과가 있다.

[땅집고]서울 강서구 화곡동 빌라 밀집 지역의 모습./연합뉴스


아직 정부의 공식 발표는 없었지만, 업계 전반에선 벌써부터 전세 에스크로 계좌 도입에 대해 논란이 불거지고 있다. 전세제도의 부작용을 바로잡는 효과가 있다는 주장과 사실상 전세 제도가 사라지고 월세만 남아 임대차 시장 혼란이 가중될 것이란 우려가 교차했다.

서진형 공정주택포럼 공동대표(경인여대 교수)는 “에스크로 제도를 도입하면 사실상 전세가 사라지는 결과를 가져온다고 봐야 한다”며 “전세제도의 장점도 많은데 서민들 주거비 부담만 더 늘어나게 될 것”이라고 했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임대인은 사실상 전세금이란 무이자 대출을 활용하기 위해 전세를 주고 있고, 임차인의 입장에서 전세금 보호는 기존 전세보증보험 같은 제도를 활용해도 된다”며 “굳이 추가적인 규제를 더 만들 필요까진 없어 보인다”고 했다.

송승현 대표는 “전세제도의 장점도 있지만, 최근엔 부작용이 더 컸던 만큼 에스크로 같은 강력한 조치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본다”며 “단, 전면 도입하기보다 집주인이 선택할 수 있도록 하고 전세계약에 대한 검증이 완료되는 기간까지만이라도 보증금 일부를 예치할 수 있도록 하면 실효성이 있을 것”이라고 했다. 송 대표는 “에스크로 제도를 이용하는 집주인과 이용하지 않는 집주인 간 세입자 선호도가 달라지면서 전세 안정화에 기여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했다. /김리영 땅집고 기자 rykimhp206@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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