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집고

"30년 전 기준 좀 바꿔주세요!" 건설업계, 학교용지 두고 목소리 높이는 까닭

뉴스 김서경 기자
입력 2023.05.16 07:46 수정 2023.05.16 08:28

[땅집고] 건설업계가 공동주택 정비사업과 관련해 학교용지 의무 확보 기준을 현실에 맞게 개정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현행 ‘학교용지 확보 등에 관한 특별법’(이하 학교용지법) 등에 따르면 300가구 이상 개발사업을 할 때는 의무적으로 학교용지를 확보해야 한다. 또한 아파트 공급에 맞춰 신설 학교를 설립하려면 입주 물량이 최소 4000가구를 넘어야 한다.

그런데 업계에선 학령인구 감소로 인해 이 기준이 실효성이 없다고 주장한다. 출산율 감소로 인해 학령인구가 급격히 줄어든 데다, 과거와 달리 도심과 비도심의 학령인구 수 차이가 크다는 것. 이에 업계는 학교 용지 확보나 신설 규정을 탄력적으로 운영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학교용지법이 제정될 당시인 1995년에는 학령인구 지역 편차가 적어서 문제가 없었지만, 현재는 천편일률적인 기준으로 부작용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땅집고] 전국 소규모·초소형 초등학교 현황. /김서경 기자


■ 저출산·인구 감소로 ‘학령인구’ 줄어…학교용지법은 30년 전 그대로

경기도 화성 동탄신도시, 하남 미사신도시, 파주 운정신도시 등에선 급격한 도시 팽창과 연동해 ‘과밀 학급’이 문제가 됐다. 경기도교육청에 따르면 지난해 3월 기준 경기지역 전체 학교(2468곳) 중 절반 정도(45.2%·1116곳)는 학급당 학생 수가 28명 이상인 과밀학급이 1개 이상으로 파악됐다. 이에 이들 지역에선 학교 신설이 꾸준히 진행 중에 있다. 경기도교육청은 지난달 교육부에 신설을 의뢰한 총 11개교가 교육부 중앙투자심사를 통과했다고 밝혔다.

반면 지방 분위기는 딴 판이다. 전남도교육청은 지난달 적정규모학교 육성을 위한 학생 수 기준을 현행 30명 이하에서 10명 이하로 하향 조정키로 했다. 저출생과 인구 유출로 인해 소규모 학교가 급속도로 늘어서다.

서울 역시 예외가 아니다. 서울시교육청 등은 현재 성동구 관내 4개 중고등학교의 통폐합을 검토하고 있다. 2개 중고등학교를 각 1개교로 통합하는 안이다. 학령인구가 급속히 줄었지만, 정작 학생이 많은 뉴타운 지역엔 중학교가 없는 곳도 있다. 성동구 덕수고(인문계열)도 신입생 감소로 위례신도시 이전을 결정한 상태다.

[땅집고] 학교용지법 3조 1, 2항 /김서경 기자


■ 학생 수 많든, 적든 ‘학교 설립 기준’ 같다

이처럼 제각각인 상황과 달리, 전국적으로 적용하는 학교설립 기준은 같다. 학교용지법 3조에 따르면 300가구 이상 개발사업을 할 때는 지역 교육청과 학교용지 조성 및 개발에 관한 사항을 협의하도록 돼 있다. 만약 이를 충족시키지 못할 경우에는 교육감이 적절한 사업 규모와 학교용지를 확보하도록 할 수 있다. 사업 면적이 좁아 학교 용지 확보가 어려우면 인접지에 용지를 마련해야 할 가능성도 있다.

문제는 법에서 규정한 학교 규모가 초등학교 36학급, 중학교 24학급, 고등학교 24학급으로, 일부 지역에선 충족하기 어려운 기준이라는 것이다. 초등학교의 경우 한 학년에 6개 반을 갖춰야 하는데, 인프라가 갖춰지지 않은 신도시나 지방 소도시에선 이러한 학급 수를 채울 학생이 없다. 소도시의 경우 학령 인구 증가 가능성도 낮다. 건설업계에서 ‘현실과 동떨어진 법으로 인해 부작용이 발생한다’고 토로하는 이유다.

대표적인 부작용은 개발사업자가 택지지구나 신도시에서 교육용 부지 확보를 위해 땅을 사더라도, 학교 신설 기준을 충족하지 못해 땅이 방치된 경우다. 실제로 울산에선 학교용지 10곳 중 6곳은 사실상 활용 방안을 찾지 못한 채 장기미집행에 따른 시설 결정 해제를 기다리고 있다.

대한주택건설협회 정책관리본부 관계자는 “교육청이 매입하지 않은 부지를 개발하려 해도, 학교 부지라는 제한이 있어 다른 사업이 불가능하다”며 “인접한 블록과 입주자 모집 누적 물량이 학교 신설 기준 가구수인 4000가구가 될 때까지 분양 자체를 연기하는 경우도 많다”고 설명했다. 또한 학교 부지를 교육청이 매입한 사례도 있으나, 입주 시점 취학아동 감소 등을 이유로 교육청이 매입을 거절하는 경우가 상당하다는 게 업계 설명이다. 자칫 분양 연기로 인해 현장 관리비 등이 증가한다면 이는 일반분양가 상승으로 이어진다.

[땅집고] 고등학교 부지이나, 수년간 다수 무허가건축물이 들어서면서 현재는 '나루마을'이라는 별명의 판자촌이 들어서 있다. /네이버 지도 캡쳐


■ 대건협, ‘학교용지 확보 의무대상 가구수 완화’ 촉구

아울러 최근 주거용 오피스텔이 늘면서 과밀 학급이 발생하는 문제점도 있다. 오피스텔은 학교용지 확보대상이 아니라서다. 실제로 주거용오피스텔이 들어선 지역에선 아파트 주민들이 과밀 학급이 우려된다며 관련 민원을 제기하는 경우도 많다. 이에 서울시교육청은 오피스텔 등으로 과밀 학급이 발생한 지역에 초등학교 분교를 두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전문가 역시 현실을 따라오지 못하는 법으로 인해 여러 문제가 불거진다고 지적했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법에 따라 사업시행자가 확보한 학교용지 중 학교 설립이 이뤄지지 않아 방치된 곳이 전국적으로 상당히 많을 것”이라며 “사용하지 않는 학교 용지는 용도를 재검토하고, 인구 증감에 따라 학교 설립 기준을 유연하게 적용하는 방식으로 교육부의 지침이나 법이 개정돼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대건협은 국토부 등에 관련 법을 개정해 학교용지 확보 의무대상 가구수를 300가구에서 500가구로 조정하고, 500가구 미만인 지역에선 지역 여건을 고려해 학교용지를 확보하게 해달라고 촉구했다. /김서경 땅집고 기자 westseoul@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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