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집고] “공기업이 공공주택을 지을 때 ‘1년에 몇 가구를 공급하겠다’는 식으로 양적인 부분에만 집착한다면 제대로 된 주거복지를 절대 이룰 수 없습니다. 앞으로 경기주택도시공사는 경기도 일대에 단순히 집과 도시를 짓고 끝내는 ‘빌더’(Builder)가 아닌, 사후 관리까지도 책임지는 ‘타운 매니저’(Town Manager)로 거듭나려고 합니다.”
우리나라 인구의 4분의 1, 무려 1400만명에 달하는 경기도 주민들의 주거 복지를 책임지는 경기주택도시공사(GH)가 올해 창립 25주년을 맞이했다. 현재 경기도는 1기 신도시 재정비와 3기 신도시 개발 등이 동시에 이뤄지는 대격변의 시기에 있다. 그만큼 경기도 내 주택 및 도시 개발사업을 이끄는 GH의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도 중요해진 상황이다.
지난해 12월 말 취임한 김세용 GH 사장은 이달 4일 땅집고와의 단독 인터뷰에서 “민선 8기 경기도의 주거 정책과 발맞춰, 경기도를 ‘기회의 땅’으로 만들기 위한 다양한 주택·도시개발사업을 진행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고려대 건축공학과 교수 출신인 김 사장은 2018~2021년 서울주택도시공사(SH) 사장을 지내는 등, 도시설계 관련 경력만 30년 이상인 베테랑이다. 서울 최대 규모 뉴타운인 장위뉴타운과 화성시 송산그린시티 등 신도시를 설계하는 데 직접 참여했으며, 20~30대 서울시민 맞춤형 공공임대주택인 ‘청신호’를 개발하는 등 실무 경험도 풍부하다.
김 사장은 올해 GH 역점사업으로 이달 중 선보이는 경기권 지역 맞춤형 공공분양아파트 ‘경기도형 주택’ 공급을 비롯해, 경기도 내 빌라촌 주거 환경을 바꾸는 ‘공간복지’, 일자리 창출을 위한 ‘스마트 산업단지’ 등을 제시했다. 김 사장이 그리고 있는 GH의 청사진에 대해 자세히 들어봤다.
-3월 말로 취임 100일을 넘겼다. 임기 초반 어떻게 보냈나.
“GH가 지난 25년 동안 어떤 사업을 진행했는지 파악하고, 이를 토대로 임기 3년 내 어떤 사업을 추진해야 좋을지 각 프로젝트별 우선순위와 방향성을 정하는 데 시간을 썼다. 지난 2월 이 같은 GH의 로드맵을 제시하는 2월 혁신·비전보고회를 열고 조직개편을 단행했으며, 현재는 월 단위 로드맵 일정표에 따라 각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그동안 GH는 택지지구나 산업단지 등 대규모 토지를 개발하는 사업에 주력해, 주택을 공급하는 데는 비교적 취약했다. 앞으로는 경기도민이 GH의 사업을 체감할 수 있도록 주택 부문 사업 비중을 늘리는 것이 가장 큰 목표다.”
-구상 중인 주택 공급 사업이라고 하면
“불과 1990년대까지만 해도 소비자들이 ‘삼성’에서 만든 아파트보다 ‘주공’(주택공사·현재의 LH) 아파트를 더 좋아했다. 나라에서 지은 아파트니 더 좋고 튼튼할 것이란 믿음이 있었던 것이다. 반면 최근 민심을 보면 공공아파트를 꺼리는 경향이 매우 크다. 공공이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동안 주택의 ‘질’보다는 ‘양’으로 승부해 온 탓이라고 본다.
이달 중 GH는 경기도와 함께 ‘경기도형 주택’을 선보일 예정이다. 1~2인 가구 중심인 서울과 달리 경기도는 3인 이상 가구 비율이 높다는 점을 감안해, 31개 시·군에 각각 적합한 방식으로 설계·공급하는 경기도 맞춤형 공공분양 아파트라고 보면 된다.
그동안 공공이 분양하는 아파트는 분양가가 저렴한 대신 청약 문턱이 높아 당첨된 소수에게만 수억원대 차익을 안겨주는 ‘로또’란 인식이 강했다. 이와 달리 경기도형 주택은 성실하게 직장을 다니는 30~40대 경기도민이라면 누구나 분양받을 기회를 가질 수 있도록 할 방침이다. 구체적인 주택 입지와 공급 규모, 청약 방법 등은 이달 중 공식 발표할 예정이다.”
-‘공간 복지’를 강조하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사업인가
“그동안 주거의 질이라고 하면 아파트가 몇 평인지, 내부 설계가 어떤지에 주목하는 경향이 컸다. 하지만 집 밖에 어떤 공간이 조성됐는지에 따라서도 주거의 질이 크게 달라지기 때문에, 공공이 적재적소에 다양한 문화·생활·편의시설을 지어줘야 한다고 본다. 이것이 ‘공간 복지’ 개념이다.
땅이 워낙 넓은 경기도에선 신축 아파트가 밀집한 지역이 생각보다 한정적이다. 그만큼 각 도민들이 누리고 있는 주거 환경의 질도 격차가 크게 나타날 수 밖에 없다. 다양한 커뮤니티 시설을 갖춘 신축 아파트가 아닌 이상, 지역 주민이 함께 쓰는 각종 생활 인프라도 부족하다. 특히 낡은 다가구·다세대·연립주택이 몰려있는 ‘빌라촌’은 공용 시설이 턱없이 부족해 주거복지의 사각지대나 다름 없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경기도 곳곳에 방치한 유휴 공간을 활용해서 놀이터·경로당·유치원 등 다양한 공용 시설을 공급할 예정이다.”
-주택 뿐 아니라 일자리 확충에도 힘쓴다고 했다
“경기도가 인구를 유지하고 지역 경제로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제대로 된 일자리가 꼭 필요하다. 이에 미래 먹거리를 확보할 수 있는 첨단·문화산업단지, 일명 ‘스마트 산업단지’를 여럿 개발할 예정이다. 최근 부동산 시장에서 집에서 근무지까지 출퇴근하기 편리한 경우 ‘직주근접’ 입지라고 칭하는데, 경기도는 일자리와 주거지를 아예 함께 조성하는 ‘직주일치’까지 실현하는 것이 목표다. 현재 개발 대상지로는 성남시 제3판교테크노밸리, 용인시 플랫폼시티, 고양시 일산테크노밸리와 고양방송영상밸리 등이 있다.
최근 삼성전자가 경기 용인시 남사읍에 300조원을 투자해 첨단 반도체 산업단지를 짓는 내용도 국민들 관심을 끌었다. 그런데 현장이 경기도 소재인데도 GH가 아닌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단독 개발사업자로 지정돼 지역 불만이 큰 상황이다. 현재 경기도의회가 GH를 사업시행자로 지정해달라는 목소리를 내고 있어, 만약 관련 업무가 주어진다면 역량을 다할 방침이다.”
-임기 내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다면.
“최근 부동산 침체로 민간 기업이 활력을 잃은만큼, 공공인 GH가 발주를 지속해 경기 부양에 보탬이 되고 싶다. 앞으로 예산 확충을 통해 현재 1조7000억원 규모인 GH 자본금을 4~5배 이상 늘리고 공사 발주를 확대할 계획이다. 앞으로 경기도민 삶의 질과 직결될 다양한 사업을 보여드리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 /이지은 땅집고 기자 leejin0506@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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