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집고] “이 건물이예, 저 초등학교 때부터 있었어예. 근데 지금 회사 취직할 때까지도 이래 그대로 있네예. 대체 뭔 일인가 싶고….”
대구광역시에서 교통량이 가장 많은 지역 중 하나로 꼽히는 북구 복현오거리. 자동차와 버스가 쌩쌩 지나는 대로변에 빛바랜 회색 현수막으로 둘러싸인 건물이 눈에 띄었다. 건물이 곧 문을 열 것처럼 홍보했던 듯 ‘근일 공개’라고 적혀있지만, 아직 마무리 공사를 덜 끝낸 모습으로 방치돼 있다. 건물 맞은편에 몰려있는 깔끔한 새아 파트 단지들과 대조돼 더욱 음산한 분위기가 난다.
이 건물은 복현오거리 유령건물로 불린다. 올해로 무려 35년째다. 외관 현수막에는 ‘블루핀 복현SKY’라는 문구가 눈에 띄지만 대구시민들은 ‘골든프라자’라는 이름이 더 익숙하다. 땅집고 취재진이 만난 대구시민들은 “이 건물이 어렸을 때부터 짓기 시작했는데, 성인이 된 지금까지도 완공을 못 해 늘 궁금했다”, “대구에서 입지가 나쁘지 않은 곳에 저렇게 큰 건물이 30년 넘게 방치돼 있어 안타깝다”고 전했다.
최근 주택도시보증공사(HUG)가 ‘골든프라자’ 건물에 대한 공매를 진행한다고 예고했다. 최초입찰가는 300억원. 부동산 경기가 침체된 상황에서 악명 높은 유령건물이 새 주인을 찾을 수 있을지에 대한 대구시민들 주목이 쏠리는 상황이다.
■17층 높이 ‘골든프라자’, 시행사 자금난·지하 붕괴 참사로 사업 난항
최초 계획상 건물 명칭은 ‘골든프라자’였다. 1989년 건축 허가를 받았다. 지하 7층~지상 17층, 연면적 4만789㎡ 규모 주상복합으로 1994년 준공할 예정이었다. 저층부에는 복합쇼핑시설, 상층부에는 주거용 오피스텔인 ‘팔레스오피스텔’을 조성할 계획이었다.
그런데 건물을 올리는 과정이 만만치 않았다. 자금난에 닥친 시행사가 시공사와 갈등을 빚으면서 공사를 중단했다 재개하기를 수차례 반복해 준공일이 차일피일 미뤄졌던 것.
그러다 1997년에는 부실공사 문제까지 터졌다. 건물 지하 4~7층 옹벽이 붕괴되고, 이 영향으로 인근 ‘궁전빌라’ 지하주차장 지반까지 침하해 자동차가 매몰되는 사고가 발생한 것. 결국 건물은 골조공사와 외부 마감공사만 일부 완료한 공정률 약 80% 상태에서 쭉 방치되다, 법원 강제경매로 넘어갔다.
■청년주택으로 탈바꿈 시도했지만…해묵은 갈등이 사업 망쳐
이후 건물을 살려보려는 시도가 이어졌다. 부동산개발회사인 ‘케이피아이앤에이치’(KPI&H)가 2014년 경매로 이 건물을 59억1888만원에 낙찰받아, 새 오피스텔로 재단장 해보려고 한 것.
케이피아이앤에이치는 HUG로부터 주택도시기금 융자를 받아 자금을 마련하고, 2018년 ‘홍성건설’을 시공사로 선정해 공사 재개에 나섰다. 새 이름은 ‘블루핀 복현SKY’ 오피스텔. 마침 대구 북구청이 복현오거리 일대 도시재생사업과 연계해, 이 건물을 공공청년임대주택, 신혼부부주택, 청년창업시설 등으로 탈바꿈하는 사업을 지원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건물이 오랜 분쟁에 시달렸던 만큼 각종 문제가 끊임없이 이어졌다. 1989년 최초 시공사인 서광건설로부터 공사대금채권을 인수했던 ‘동성엠앤아이’가 유치권을 주장하고 나선 것.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과거 ‘팔레스 오피스텔’을 분양받았던 수분양자들도 2014년 법원 강제 경매 이후 재산권을 침해당했다고 반발하면서 사업이 다시 수렁에 빠졌다.
결국 시행사에 자금을 빌려줬던 HUG가 사업 재개 가능성이 없다고 보고 돈을 회수하기로 했다. 각종 갈등으로 인한 소모전으로 자금난을 앓던 시행사 캐이피아이앤에이치는 HUG에 건물은 물론이고 부지에 대한 소유권 등 모든 권리를 양도하고 떠났다. 시공사 홍성건설 역시 HUG 측에 공사포기각서를 제출하고 사업에서 손을 뗐다.
■현재 건물주는 HUG…올해 300억원에 공매 재개
모든 기업이 ‘골든프라자’ 사업을 포기한 현재는 등기부등본상 HUG가 단독 소유자로 돼 있다. HUG는 이 건물을 공유재산으로 편입하고 건물 처분을 위해 꾸준히 공매 절차를 밟아왔다.
첫 공매는 2020년 이뤄졌다. 최초입찰가가 304억원이었지만, 응찰자가 한 명도 나타나지 않는 바람에 공매가 6차까지 유찰돼 가격이 261억원까지 떨어졌다. 이듬해 진행한 공매에선 최초입찰가를 직전 유찰가인 261억원으로 설정됐다. 하지만 역시 줄줄이 유찰을 겪으면서 입찰가가 224억원(6차)까지 내려앉았다.
당시 공매에 응찰자가 없었던 이유로는 건물에 얽힌 권리관계가 너무 복잡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공매 공고에 적힌 ‘권리사항’ 항목을 보면, 건물 현황 파악 및 명도 책임을 전부 매수인이 떠안도록 되어있다. 당시 건물을 낙찰받더라도 ‘골든프라자’ 2층 사무실을 점유하고 있는 유치권자를 쫓아내는 작업이 별도로 필요했고, 전 사업자가 체납한 상하수도비 등 각종 비용까지도 대신 부담해야 해서 섣불리 건물을 인수하려는 사람이 없었던 것이다.
HUG는 ‘골든프라자’ 2층을 차지하던 유치권자들을 대상으로 명도소송을 진행해, 대법원으로부터 일부 승소 판결을 받았다. 이에 올해 건물 공매 절차를 재개한다. 지난 3월 감정평가 결과에 따라 최저입찰가는 300억원으로 책정했다. 이달 12~15일 입찰을 받는다.
HUG 관계자는 땅집고와의 통화에서 “2020년 건물 최초입찰가를 300억원으로 책정했다가 결국 유찰된 적이 있지만, 절차상 일정 기간이 지나면 감정평가를 다시 받아서 최초입찰가를 재산정하도록 되어있다. 이 때문에 (이번 최초입찰가가) 직전 유찰가인 200억원 수준보다 높아진 것”이라며 “현재 부동산 시장 상황이 좋지 않지만 대구 한복판 흉물로 남아있는 ‘골든프라자’가 새 주인을 찾길 바란다”고 했다. /이지은 땅집고 기자 leejin0506@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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