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집고] 롯데건설이 임신한 근로자에 한해 추가근무수당을 없애고 기본급만 지급하겠다고 통보해 임직원들의 공분을 사고 있다. 이 같은 조치로 임산부 직원들의 월급 실수령액은 기존 대비 100만원 가량 삭감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롯데건설은 임산부의 건강 증진과 모성 보호를 위한 근로기준법에 의거해 근로시간 단축에 따른 임금 삭감일 뿐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그럼에도 임직원들은 롯데건설의 이 같은 행태가 저출산시대에 역행하는 조치라며 반박하고 있다. 더구나 사측이 임신 사실을 통보하지 않아 회사에 노동법적 문제를 불러올 경우 ‘부서장을 엄중 문책할 예정’이라고 공지한 점, 임산부 단축근로를 시행하더라도 월급을 깎지 않는 다른 대형 건설사와의 형평성 문제 등을 지적하며 강한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임신하면 월급 100만원 삭감 조치에…직원들 “애 낳지 말라는거냐” 공분
땅집고는 최근 롯데건설이 전직원을 대상으로 발송한 ‘임신 근로자 임신 사실 통보 절차 제도 안내’ 공문을 입수했다.
공문에 따르면 롯데건설은 근로기준법에 따라 ‘임신 중’이거나 ‘출산한 지 1년’이 지나지 않은 여성근로자들에 대해서는 시간 외 근로가 금지되며, 주 40시간을 초과해서 일할 수 없다고 고지했다. 또 ‘임신 12주 이내거나 36주 이후’인 여성근로자에 한해 단축 근무(1일 2시간·평일 오후 3시 퇴근)를 허용한다고 알렸다.
그런데 근로 시간을 제한하다 보니 급여 삭감 문제가 불거졌다. 그동안 롯데건설은 직원들이 평일 오후 5시부터 오후6시30분까지 연장근무를 한다는 가정하에 고정수당을 지급해 왔는데, 근로기준법에 따라 연장근무에서 제외된 임산부들은 그만큼 급여가 줄어들 것이라고 통보하면서다.
롯데건설의 급여 체계는 ‘고정OT(Over Time)제’를 기반으로 한다. 고정OT제란, 직원들의 급여를 ‘기본급’과 ‘OT 고정수당’ 항목으로 구분해서 지급하는 형태다. 기본 근무 시간은 오전 8시부터 오후 5시까지이지만, 계약서상에는 오후 6시 30분까지 연장 근무가 가능하도록 되어 있다.
즉 1일 근무시간은 기본 근로 8시간(오전 8시~오후 5시)에 연장 근로 1.5시간(오후 5시~오후 6시 30분)을 합해 총 9.5시간이다. 이에 롯데건설은 연장 근로에 대한 보상으로 OT고정수당을 지급한다. OT고정수당은 연장·야간·휴일근로 수당 등으로 이뤄진다. 예를 들어 고정OT제를 적용받는 A씨의 월 급여 300만원은 ▲기본급 210만원 ▲OT고정수당 90만원(연장수당 30만원·야간수당 30만원·휴일수당 30만원) 등으로 구성돼 있다.
롯데건설의 이번 조치로 임산부 직원들은 기존에 받던 급여에서 OT고정수당을 제외한 기본급만 수령할 수 있게 된다. 이에 따라 직무 및 직급마다 차이가 있지만 월 급여가 1인당 평균 100만원 정도 삭감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22개월여(임신 기간 10개월+출산 후 12개월) 동안 적용받게 된다고 했을 때 가계에 큰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롯데건설 직원들은 온라인 커뮤니티에 “똑같이 오후 5시 퇴근하더라도 임산부는 다른 직원들보다 월급을 100만원 덜 주겠다는 것 아니냐. 안 그래도 저출산이 심각한데 애 낳지 말라는 말이나 다름 없다”, “OT고정수당이 급여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적지 않은데, 그렇지 않아도 돈이 많이 들어가는 임산부 시기에 월급이 큰 폭으로 깎이는 것은 심하다”는 등의 의견을 쏟아내고 있다.
■“위법 아냐” vs “본질은 임산부 색출”
롯데건설 측은 임신한 직원들에게 OT고정수당을 미지급하는 조치 자체는 위법이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롯데건설 관계자는 땅집고와의 통화에서 “현행 근로기준법에 따라 임산부가 오후 5시~오후 6시 30분 연장 근로 및 주말 근무를 하지 못하도록 되어있기 때문에, 근로 시간이 줄어드는 만큼 당연히 월급도 따라서 삭감된다고 안내한 것”이라고 했다.
실제로 고용노동부는 지난해 12월 임신근로자 고정연장수당 미지급과 관련해 ‘노사간 매월 고정적으로 지급하기로 정한 연장근로수당을 임신근로자에게 지급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이를 반드시 근로기준법 위반으로 볼 수 없을 것’이라는 행정 해석을 내기도 했다.
하지만 직원들은 ‘롯데건설의 조치가 지금 같은 저출산시대에 역행하는 것은 사실’이라고 강력하게 비난하고 있다. 다른 대형 건설사들을 비롯해 대부분의 기업들이 임신기 근로단축을 이유로 월급을 삭감하지는 않고 있는 것과 비교하며 비난 수위를 높이고 있다. 또 현재 비임산부 남녀 근로자가 5시에 정시 퇴근하더라도 월급을 삭감하지 않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결국 롯데건설의 이번 조치의 본질은 ‘임신 여부를 적발해 급여를 깎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더군다나 공문에 ‘부서장은 체형 변화 등으로 근로자의 임신 사실을 알게 된 때 보고 할 것’, ‘임신 사실 통보 절차 위반으로 노동법적 문제 발생 시 부서장을 엄중 문책할 예정’이라는 경고 문구까지 넣어 더 큰 반발을 사고 있다.
롯데건설에 재직 중인 한 임산부는 “임신하고 월급 줄어드는 줄 모르고 야근까지 했는데, 급여 받고 현기증 났다. 가끔 6시 퇴근도 눈치 보며 했다”는 글을 남기기도 했다.
노무사들은 이번 쟁점은 롯데건설이 지급하는 OT고정수당의 성격을 따져봐야 한다고 조언한다. 안목노무사사무소의 이선희 노무사는 “롯데건설이 임산부에게 지급하던 OT고정수당이 ‘실제 연장 근로’의 대가에 해당한다면 무노동 무임금 원칙에 따라 삭감이 가능하다”면서도 “하지만 사측이 실제로 연장근로 시간을 따지지 않고, 계약서상 오후 5시~오후 6시 30분 연장근로를 예정해 수당을 지급해 온 것이라면 이 수당이 사실상 기본급에 해당한다. 따라서 임산부 초과근로 금지 규정과 상관 없이 삭감이 불가능할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이지은 땅집고 기자 leejin0506@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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