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집고

상가 1개에 주인만 123명…'지분 쪼개기' 꼼수, 법으로 막는다

뉴스 박기홍 기자
입력 2023.04.25 16:59 수정 2023.04.25 17:07

[땅집고] 투자 수요가 몰리는 서울 강남 재건축 단지를 중심으로 상가 지분 쪼개기가 성행이다. 조합 설립 전, 상가 지분을 여러 명이 나눠 가지면 상가 소유자는 아파트 입주권을 받을 수 있어서다. 상가 소유자 수가 늘어나면, 일반분양 물량이 줄어 그만큼 조합원 분담금이 증가한다. 이 과정에서 재건축 조합이 상가 소유주와 갈등이 불거지고 소송 등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허다하다.

정부가 안전진단 완화 등 재건축 관련 규제를 풀면서 재건축이 속도를 낼 조짐이지만, 정작 재건축 사업을 더디게 만드는 ‘지분 쪼개기’를 방치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에 정부와 지자체가 뒤늦게 ‘상가 지분 쪼개기’ 대응에 나섰다.

[땅집고] 서울 한남동에서 바라본 압구정동 현대아파트 일대./김지호 기자


■재건축 발목 잡는 ‘지분 쪼개기’ 성행

이달 초 강남구청은 상가 지분 쪼개기와 관련해 도시정비법 3개 조항에 대해 개정의 필요성이 있다는 공문을 국토부에 보냈다. 구청은 대치동 미도·선경, 압구정 미성, 개포현대1차 등 7개 아파트에서 상가 쪼개기가 성행하고 있다고 판단했다. 지난 20일에는 이 단지들을 대상으로 개발행위 허가제한 지역으로 지정했다. 제한 지역으로 지정하면 3년간 토지 분할 등의 행위가 제한된다.

대상 단지는 모두 재건축 추진위원회 단계다. 조합설립을 마친 단지는 대상에서 빠졌다. 조합 설립 후에는 분양 자격을 얻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강남구청 관계자는 “정비구역에서 지분 쪼개기를 했을 때 분양권을 받을 수 있는 권리산정일을 앞당길 수 있게 하는 등 꼼수 분양권 획득을 막기 위한 취지다”고 했다.

지난해 부산 해운대구 대우마리나에서는 한 법인이 대형마트로 사용하던 대우마리나 1차 지하상가 1109㎡(약 335평) 1개 호실을 통으로 사들였다. 법인은 매수 직후 1개실을 전용 9.02㎡(약 2.7평)씩 123개로 쪼갠 후 ‘아파트를 받을 수 있다’고 홍보하며 개별 분양자를 모집했다. 법인 측은 합법적 지분 쪼개기라고 주장하지만, 이를 두고 지역사회와 부동산 커뮤니티에서는 ‘꼼수 분양’이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상가 지분 쪼개기는 재건축 단지 상가의 지분을 여러 명이 나눠 분양자격을 늘리는 방식이다. 지분 소유자에게 아파트 입주권이 나온다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투자 수요가 많은 서울 강남 등을 중심으로 성행했다. 상가 소유주는 원칙적으로 새로 짓는 상가만 분양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조합이 정관에 명시하면 상가 소유주도 입주권을 받을 수 있다. 그래서 조합이 설립되기 전 상가 하나를 여러 개로 쪼개 아파트 분양 자격을 늘린다. 현실적으로 이를 막을 방법이 없어서 암암리에 이뤄졌다.

[땅집고] 서울 강남구 대치동 미도 아파트./네이버 지도


■국토부, 상가 지분 쪼개기 방지법 개정 추진

재건축 사업에서 조합과 상가 소유주 간 갈등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조합원과 이익 분배 기준이 달라 잡음이 끊이지 않는다. 특히 수익성이 큰 강남에서는 이에 따른 재건축 사업 지연이 빈번했다. 국내 최대 재건축 단지인 강동구 둔촌주공에서도 상가 1개당 주인이 3명이 있는 등 지분 쪼개기 관행 탓에 공사 중단 사태가 지속했다. 압구정 3구역은 추진위원회 설립 후 토지 등 소유자가 20여명 늘어난 것이 확인됐다. 이는 일부 상가 소유주들이 분할등기를 통해 이른바 상가 ‘지분 쪼개기’를 했던 탓이다. 일부 대치동 아파트 상가도 과도한 지분 쪼개기로 사업성이 나오지 않아 재건축 추진이 막혔었다.

현행 도시정비법은 주택·토지 지분 쪼개기를 규제하고 있을 뿐 상가 분할을 통한 지분 쪼개기에 대한 규정은 없다. 재건축 활성화를 공언한 정부 입장에서도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윤석열 정부가 재건축 안전진단 등 규제를 완화하면서 초기 단계 재건축이 활기를 띠자 재건축 조합이 설립되기 전 상가 지분을 여러 명이 쪼개서 보유해 분양 자격을 늘리는 꼼수가 성행할 우려가 나온다. 국토부는 상가 지분 쪼개기를 하면 권리산정 때 인정받을 수 없다는 것을 명확히 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 부동산 전문가는 “정부가 재건축 규제를 풀어준다고 했지만, 강남권 시장에서 가장 큰 걸림돌 중 하나인 지분 쪼개기 분양권 문제는 그동안 뒷전이었다”며 “투기 세력으로 인해 정비사업이 늦어지는 사례가 잦기 때문에 정부가 법 개정 등을 통해 재건축이 원활하게 추진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박기홍 땅집고 기자 hongg@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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