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집고] 정부가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매입임대주택 제도를 활용해 전세사기 피해 주택을 사들이기로 했다.
LH, 지방공사 등 공공의 매입임대주택 예정 물량은 올해 3만5000가구인데 이 가운데 전세사기 피해 주택을 최우선 매입하기로 한 것이다.
서울 강서구, 인천 미추홀구에 이어 경기 동탄, 대전, 부산 등 전국에서 대규모 전세사기 피해가 속출하자 공공이 피해 주택을 직접 매입하는 특단의 조치에 나선 것이다.
공공이 주택을 매입하면 전세사기 피해자는 살던 집에 그대로 살 수 있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21일 LH 서울지역본부에서 긴급 회의를 개최해 전세사기 피해 주택 매입 방안을 밝혔다.
원 장관은 “전세 피해가 시급하고 워낙 절박한 만큼, 이미 예산과 사업 시스템이 갖춰진 LH 매입임대제도를 확대 적용해 전세사기 피해 물건을 최우선 매입 대상으로 지정하도록 하겠다"며 "이를 범정부 회의에 제의하려 한다”고 했다.
LH 매입임대주택은 기존에 지어진 주택을 사들인 뒤 개·보수해 무주택 청년과 신혼부부, 취약계층 등에 시세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임대하는 사업이다.
LH는 올해 주택 2만6000가구를 매입해 임대주택으로 활용할 계획이었다. 이 사업에 책정된 예산은 5조5000억원이다.
LH는 강북 미분양 주택을 고가 매입했다는 논란으로 매입임대주택 가격 산정 기준을 조정하게 되면서 이달 들어서야 매입 공고를 시작했다. 이에 따라 올해 예정된 물량 2만6000가구 대부분을 피해 주택 매입에 활용할 수 있게 됐다.
지자체와 지방공사의 매입임대주택 물량 9000가구를 포함하면 총 3만5000가구 매입이 가능하다.
매입임대주택의 평균 가격은 가구당 2억원 정도다. 올해 최대 7조원 가량을 피해 주택 매입에 투입할 수 있다. 필요한 경우 주택도시기금 운용 계획을 변경해 매입 물량을 늘릴 예정이다.
원 장관은 "올해 매입임대주택 사업 물량을 피해 주택 매입에 우선적으로 배정하는 것만으로도 피해 주택 대부분을 커버할 수 있는 규모"라며 "그래도 부족하다면 추가 물량을 배정하겠다"고 했다.
정부는 원하는 피해 임차인에게는 경매에 나온 주택의 우선매수권을 줄 예정이다. 피해 주택을 구입할 의사 없이 살던 집에 계속 거주하길 바라는 피해자에 대해서는 LH가 주택을 매입한 뒤 임대하게 된다.
LH 매입임대는 2년 단위로 계약을 갱신해 최대 20년까지 거주할 수 있다. 임대료는 시세의 30∼50% 수준이다.
공공이 피해 주택을 매입하면 전세사기 피해자가 주거 안정성을 확보할 수 있지만, 인천 미추홀구 사례처럼 선순위 채권자가 있는 경우 보증금을 회수하기는 어렵다. 경매 절차를 통해 공공기관이 사들여 지불한 대금이 은행 등 선순위 채권자들에게 먼저 돌아가기 때문이다.
LH가 전세사기 주택을 매입하려면 법 개정이 선제 돼야 한다. 이를 통해 경매 시 우선매수권을 확보해야 한다.
어떤 주택을 전세사기 주택으로 볼지도 고려해야 할 문제다. 전세금을 돌려받지 못해 손실이 발생한다고 전부 전세사기 피해 주택으로 볼 수 없기 때문이다.
단순 전세금 미반환인지, 전세사기 피해 물건인지에 대한 기준을 정하고 매입 대상을 심의할 주체도 정해야 한다. 이와 관련해 정부와 여당은 오는 23일 고위 당정협의회를 열어 전세사기 피해 주택 매입 문제를 논의한다.
전세 사기 피해가 잇따르자 대한변호사협회(변협)도 21일 서초구 대한변호사협회 회관에서 ‘빌라왕 전세사기 피해사건 대책 TF 위원회’ 긴급회의를 열어 피해자 무제한 법률 상담 지원 방안을 논의했다.
김관기 TF 위원장은 “구체적인 지원 범위는 정부와 협의해 정할 것”이라며 “국토교통부에서도 변협에 적극적인 협조를 요청하고 필요한 예산 지원을 약속했다”고 했다. 이에 따라 상담 변호사단이 구성될 전망이다. /서지영 땅집고 기자 sjy3811@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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