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집고]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인가 싶어요. 혼자 맨손으로 이렇게 거대한 성을 쌓아 올리다니요. 스페인 건축가 가우디가 한국에 환생한 걸까요?”
경남 거제시 장목면 복항마을. 바닷가 언덕배기 마을인 이곳 구불구불한 지형을 따라 유럽 중세시대 분위기가 물씬 나는 성채가 들어서있다. 화강암 수만개로 축조한 ‘매미성’이다. 지금도 성을 쌓는 작업이 한창인데, 문화재 복원 목적도 아니고 군사적인 이유는 더더욱 아니다.
매미성 성주는 이 일대 땅을 보유한 백순삼(69)씨다. 한 조각에 30~60kg 정도 되는 화강암 조각을 홀로 맨손으로 나르며 성을 쌓기 시작한지 올해로 20년째다. 3~4년여 전 부터는 인근 자연 환경과 조화를 이루는 아름다운 매미성 전경이 입소문을 타면서 수많은 국내외 관광객들이 이 곳을 찾고 있다. 지형을 고려한 건축 방식이 마치 스페인 유명 건축가 안토니 가우디의 작품들을 연상케한다는 후기가 쏟아지면서, 백씨는 ‘한국판 가우디’라는 별명도 얻었다.
백씨는 경북 영덕 출신으로, 1981년 대우조선해양에 입사해 선박 설계 연구원으로 일했다. 은퇴 후 가족들과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집을 짓고 여생을 보낼 목적으로 2001년쯤 복항마을 땅 1800㎡(540여평) 정도를 매입했다. 당시 이 일대 교통편이 열악하고 인적이 드물어 땅값도 저렴했다. 백씨는 이 곳에 주말농장을 꾸리고 고구마, 콩, 깨 등을 심고 가꿨다.
그런데 2003년 태풍 매미가 전국을 휩쓸고 지나가면서 백씨의 밭이 초토화됐다. 매미는 전국적으로 132명 사상자와 4조7800억원에 달하는 재산 피해를 낸 대형 재해다. 바닷가를 낀 거제시 역시 피해가 막심했다. 물론 백씨의 밭도 무사하지 못했다. 그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태풍 매미가 온 게 추석 다음날이었다. 부산 집에서 추석 연휴를 보내다 회사가 있는 거제로 내려왔는데, 회사에 와보니 크레인이 다 넘어지고 완전히 엉망이었다”며 “여기(매미성 부지)는 도로가 무너져서 아예 올 수가 없었다”고 회상했다.
태풍이 발생한 지 일주일이 지나서야 찾은 밭은 그야말로 ‘아수라장’ 그 자체였다. 논밭에 심어둔 농작물은 파도에 쓸려가고, 땅은 경계조차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로 피해가 심했다. 이에 백씨는 거제시에 복구 도움을 요청했다. 하지만 거제시 일대 피해가 워낙 막대해 개인 토지가 유실된 것까지 돕기는 어렵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사후 대책으로 제방을 쌓기 위해 전문업체들에 문의했지만, 백씨의 땅이 트럭이 들어가기 어려운 곳이라 방법이 없다고 일제히 손을 내저었다.
하는 수 없이 2003년 10월부터 백씨 스스로 제방을 쌓기 시작했다. 이왕 만드는 김에 앞으로는 어떠한 태풍에도 끄떡 없는, 주변 경치와 어우러지는 제방을 짓는 것이 백씨의 목표였다. ‘매미성’이란 이름도 태풍 매미 때문에 성을 짓게 됐다고 해서 붙인 명칭이다.
건축 과정은 꽤나 험난했다. 먼저 1년에 한 번씩 경남 거창에서 대형 트럭으로 견치석(단단한 옹벽용 돌)을 해변가로 실어나른다. 매미성 부지까지는 골목이 너무 좁아 트럭이 들어올 수가 없어, 다시 작은 차와 굴착기로 부지까지 돌을 옮겨 성 한쪽에 모아둔다. 이 돌을 백씨가 한 장 한 장 손으로 나르면서 시멘트를 바르고 쌓아 올리는 작업을 반복한다.
2014년 은퇴한 그는 아내의 지병 때문에 대도시인 부산에 살고 있다. 주중에는 다른 일을 하고 주말엔 늘 매미성으로 와서 성벽 축조 작업에 전념했다. 오전 4시에 부산에서 출발해, 매미성에서 오전 8시부터 오후 2시까지 성을 쌓는 것이 오랜 일상이 됐다.
백씨가 설계도 한 장 없이 쌓기 시작해 올해로 20년째인 매미성은 벽 높이 12m, 둘레 150m 규모를 자랑한다. 바닷가 지형을 따라 쌓다보니 성벽이 구불구불 자연스러우면서도 멋스러운 분위기를 낸다. 백씨의 목적대로 성은 견고함도 갖췄다. 지난해 8월 슈퍼 태풍인 힌남노가 들이닥쳤을 때도 매미성은 전혀 피해를 입지 않았다.
최근에는 매미성이 부가가치까지 창출하고 있다. 이 성이 스페인 유명 건축가 가우디가 바로셀로나에 지은 ‘구엘 공원’과 닮았다는 입소문이 퍼지면서 매미성을 방문하기 위해 거제시를 찾는 관광객이 늘고 있는 것. 노인들만 살고 있던 마을에 자녀들이 귀향해 관광 수요를 겨냥한 카페 등이 줄줄이 생겨나면서 작은 골목 상권까지 형성됐다.
하지만 정작 백씨가 매미성으로 벌어들이는 돈은 한 푼도 없다. 매미성 입장료가 무료인데다, 아직 백씨가 인근 골목에서 운영하는 카페나 식당도 없어서다. 백씨는 “입장료는 받고 싶지 않다. 뭔가 삭막하지 않나”라며 “둘째 아들과 상의해서 작은 카페를 여는 정도로 생각 중이다. 직장에 다닐 때는 수입이 있어서 괜찮았지만, 은퇴하고 나니 예전처럼 매미성을 짓기에는 어려움이 있어 수입을 얻으면서도, 동네 사람들과 상생하면서 매미성을 유지할 방법을 생각하고 있다”라는 입장을 밝혔다.
일각에선 백씨의 매미성이 공유수면을 침범해 건축법을 위반했다는 지적이 나오지만, 거제시는 행정제재에 나설 의향이 없어 보인다. 오히려 거제시는 관광객 편의를 위해 14억원을 들여 매미성 인근에 주차장 95면을 신설하고, 이 일대 도로를 개량해주는 공사를 진행했다. 거제시는 기존 주차장 뒷편에 추가로 30면 정도를 더 확보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지은 땅집고 기자 leejin0506@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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