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집고] 정부가 1·3 부동산 대책을 통해 분양가 상한제 적용 주택의 실거주 의무를 폐지하기로 했지만, 발표 두 달이 넘도록 이 조치의 시행여부가 불투명한 사항이다. 실거주 의무 폐지는 주택법을 개정해야 하는 사안인데, 국회에서 논의 자체가 이뤄지지 않아 현재로선 적용 시기를 가늠할 수조차 없다. 정부의 대책만 믿고 청약에 나선 수요자들은 자금 마련을 비롯해 차선책을 찾아야 하는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
업계에선 다수당이 야당인 상황에서 정부가 지키지도 못할 약속을 남발해 주택 시장 혼란을 가중시켰다는 지적이 잇따른다. 실거주 의무 폐지 방안과 다주택자에 대한 세제 개선, 재건축 초과이익 환수제 폐지 등 국회 동의를 얻어야 하는 규제 개선 사항 모두 추진이 지지부진하기 때문이다.
■ 실거주 의무 폐지 법안, 국회서 논의조차 안 해
지금까지 수도권 분양가 상한제 적용 주택을 분양받은 수분양자들은 2~ 5년까지 실거주를 해야만 했다. 지난 정부가 청약시장을 과열시키는 투자 수요를 막고 실거주 수요자를 우선 고려하기 위해 2021년 2월 도입한 규제다. 입주 시기가 다가온 재정비 아파트 경우 조합원 물량만 전월세를 놓을 수 있고, 청약에서 공급된 물량은 수분양자가 입주 즉시 거주해야 했다. 기존에 살던 집도 처분하거나 전세를 놔야 해 입주 아파트 거래가 경색되기도 했다.
하지만 지난해부터 부동산 경기 침체로 주택 시장이 얼어붙자 정부는 올해 1·3 부동산 대책을 통해 실거주 의무를 폐지하기로 결정했다. 실거주 의무가 폐지되면 전월세를 끼고 사는 갭투자가 가능해진다. 당연히 청약시장에 활기가 돌면서 미분양도 방지할 수 있다. 입주 아파트에서 전월세 물량이 대거 풀리면서 임대 주택이 한 번에 저렴하게 공급되는 효과도 있다.
문제는 실거주 의무 폐지는 주택법을 개정해야 하는 사안인데, 국회에서 논의 자체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국회 다수석을 차지한 더불어민주당은 실거주의무 폐지 개정안과 관련해 명확한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다만 민주당 내 실거주의무 폐지에 대한 반대 의견이 있어서라기 보다는 아직 당론이 모아지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당 관계자는 “아직까지 당 차원의 입장이 결정된 것이 없기 때문에 조만간 당내 회의를 거칠 예정이며, 이를 토대로 다음주쯤 국토교통위원회 회의에서 실거주 의무 폐지와 관련한 사항을 논의할 계획”이라며 “의원들 개개인의 의견이 모아지지 않은 상태여서 주택법 개정안에 대한 찬반 여부, 시행 가능성 등을 현재 상황에서 관측하기 어렵다”고 했다.
법 개정이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면서 시장의 혼란은 커질 수밖에 없다. 당장 정부 발표를 믿고 청약에 나섰다가 당첨된 사람들의 경우 법이 통과되지 않으면 현재 기준대로 입주 즉시 들어가 살아야한다. 더구나 정부는 청약시장을 되살리기 위해 전매제한 기간을 축소하고 무순위 청약 요건에 다주택자와 타지역 거주자 제한을 폐지했다. 이들 조치는 법 개정없이 시행령 개정만으로 시행이 가능하다.
이 같은 규제 완화 발표 덕택에 둔촌주공 재건축인 올림픽파크 포레온을 비롯한 최근의 분양 단지들이 청약에서 완판 행진을 이어갈 수 있었다. 하지만 법 개정이 늦어지면 이미 청약을 받은 당첨자들의 고민은 커진다. 모처럼 온기가 돌던 청약시장이 급격히 냉각될 수 있다. 업계 관계자는 “둔촌주공, 장위4구역 등은 규제지역 완화 전에 분양했을 땐 계약률이 저조했다가 1·3대책 이후 무순위 청약에서 규제완화 기조에 힘입어 아파트가 다 완판됐는데, 규제가 완전히 안풀리면 당첨자들 사이에선 혼란이 가중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실거주의무 폐지는 정부가 이달 중 시행할 예정인 전매제한 기간 축소와도 상충되는 문제도 있다. 전매제한 기간은 당첨자 발표 이후부터 적용되는데, 올림픽파크 포레온의 경우 전매제한이 8년에서 1년으로 축소된다. 다시 말해 올림픽파크 포레온을 당첨 이후 1년 후부터 팔 수 있지만, 실거주의무가 폐지되지 않으면 전매제한 완화책이 유명무실해진다.
■ 발표만 해놓고 흐지부지…내년 총선 때까지 기다려야 하나
정부가 법 개정을 통해 규제를 완화하겠다고 발표해놓고 아직까지 시행되지 않은 법안은 실거주 의무 폐지 이외에도 많다. 재건축 초과이익환수제 개편안도 국회에서 논의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고, 다주택자 세제 개편안은 야당 반대에 부딪혀 의견을 좁히지 못하고 있다. 다수당이 야당인 상황에서, 국회 통과를 못하면 흐지부지되는 식의 규제 완화 방식이 적절했는가 하는 비판도 나온다.
두성규 목민경제정책연구소 대표는 “여소야대 상황에서 민생과 직결된 규제 개혁 사안을 정부가 무리하게 추진한 측면이 있고, 야당도 다른 이슈에 가려 부동산 정책에 대한 명확한 입장을 정하지 못하는 것은 문제”라며 “총선이 가까워와야 국회에서도 본격적인 논의가 진행될 것으로 보이는데, 그 때까지는 수요자들이 주택 구매 결정을 연기하거나 혼란을 겪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했다. /김리영 땅집고 기자 rykimhp206@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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