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집고

서울 '대박' 지방 '쪽박'…'1·3대책' 이후 양극화 더 심해졌다

뉴스 김서경 기자
입력 2023.03.10 13:40 수정 2023.03.11 06:39

[땅집고] 서울과 지방 분양 성적표가 극과 극으로 치닫고 있다. 부동산 시장 침체가 이어지는 가운데서도 서울은 분양 단지 마다 수많은 청약 대기자들이 몰리는 반면 지방은 대량 미달사태가 이어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청약 규제를 대폭 완화한 정부의 1·3대책이 ‘서울 쏠림 현상’으로 나타나고 있다고 지적한다. ‘수요와 공급 불균형’에서 원인을 찾기도 한다. 지난 수년간 지방의 주택 공급은 활발했던 반면 각종 규제가 집중된 서울은 분양이 끊기다시피 해 ‘공급 가뭄’이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땅집고] 최근 한 달간 분양 단지의 청약 경쟁률. /김서경 기자


■1·3대책 이후 서울 분양시장 쏠림현상…경기외곽·지방은 ‘썰렁’

최근 1순위 청약을 진행한 서울 영등포구 ‘영등포자이 디그니티’에는 1만9478명의 수요자들이 몰리며 198.8대 1의 평균경쟁률을 기록했다. 59㎡ A 생애최초 유형은 3가구 모집에 1776명이 지원해, 무려 592대 1의 경쟁률을 보였다.

단군 이래 최대 재건축 사업으로 불리는 서울 강동구 ‘올림픽파크 포레온’(둔촌주공)은 지난 8일 진행한 미계약분 899가구 무순위 청약에 4만1540개의 청약통장이 몰렸다.

‘영등포자이 디그니티’ 청약 흥행은 지하철 5호선 양평역에서 50m 거리에 불과한 ‘역세권’ 입지에다 주변 시세 대비 저렴한 분양가가 꼽힌다. 이 단지 전용 84㎡ 분양가는 11억원대인데, 2021년 입주한 '영등포중흥에스클래스(308가구)' 전용 84㎡가 지난해 3월 13억원에 거래됐다. 이 단지 현재 호가는 12억2000만원부터다.

올림픽파크 포레온의 경우는 무순위 청약 요건이 크게 완화된 1·3대책 효과 때문으로 풀이된다. 3월부터 미분양 물량에 대한 무순위 청약에 거주지역과 보유 주택 수 규제 완화가 적용되면서, 다주택자와 지방의 청약 대기자들이 대거 몰린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반면 서울 외곽과 지방 분양시장엔 대량 미달 사태가 속출하고 있다.

지난 2월 중흥토건이 경기 수원시 팔달구에 공급한 ‘수원성 중흥S-클래스’는 순위내 청약에서 516가구 중 158가구가 주인을 찾지 못했다.

인천 미추홀구 주안동 ‘더샵아르테’는 견본주택에 수많은 인파가 몰려 시장의 관심이 모아졌지만,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청약 참여율이 저조했다. 지난 2월 진행된 1순위 청약에서 687가구 모집에 265가구만 지원해 평균 경쟁률이 0.39대 1에 그쳤다.

영등포자이디그니티 1순위 청약과 같은 날인 지난 7일 본청약을 진행한 경북 경산시 ‘경산서희스타힐스’는 65가구 모집에 단 5명이 신청했다.

안양 ‘평촌센텀퍼스트’는 1150가구 모집에 350가구만 지원했다. ‘평택화양 힐스테이트’, ‘영종 오션파크 모아엘가 그랑데’도 수도권임에도 불구하고 지원자가 적었다.

■ 수도권은 ‘분양가’가 흥행 좌우…지방은 싸도 안 나간다

수도권 외곽의 미분양 사태는 높은 분양가가 주된 원인으로 꼽힌다. 그동안 서울에 집중된 규제로 이들 지역에서 누렸던 ‘풍선효과’가 사라진 점도 청약 참패 요인으로 지목된다. 수원성 중흥 S-클래스와 더샵아르테, 평촌센텀퍼스트가 대표적인 사례다.

지방도시는 주변 시세 대비 낮은 분양가에도 미분양이 발생하고 있다는 점에서 사태의 심각성을 더한다. 경북 경산시 ‘서희 스타힐스’ 전용 84㎡ 분양가는 4억7300만원으로, 같은 주택형을 5억원대에 먼저 분양한 ‘중산자이1단지’보다 저렴하지만 미달을 기록했다. 신혼부부 등을 대상으로 하는 특별공급에는 31가구 모집에 단 한 명의 지원자도 없었다.

이월무 미드미네트웍스 대표는 “규제완화 이후 수도권 청약 시장 매수심리가 되살아나면서 수도권뿐만 아닌 전국에서 여유자금을 보유한 청약 대기자들이 서울에 대거 몰리는 추세, 서울 또는 서울 접근성이 우수한 수도권 아파트의 경우 청약 경쟁률이 더 높아질 것으로 예상한다”며 “하지만 지난 2~3년간 부동산 호황기에 땅값을 비싸게 주고 개발한 지방 또는 수도권 외곽 사업지는 가격 경쟁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계속 침체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했다.

[땅집고] 전국 지자체별 미분양 현황. /김서경 기자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난 1월 전국 주택 미분양 물량은 7만5359가구로 집계됐다. 이는 지난 2012년 12월(7만5000가구) 이후 10년 1개월만에 최고 수준이다. 특히 수도권을 제외한 지방의 경우 미분양이 위험 한계선인 6만2000가구 웃돌았다. 전국에서 미분양 물량이 가장 많은 대구(1만3565가구)에선 지난달 신규 주택사업 승인을 전면 중단했다. 지방자치단체가 사업 승인을 중단하는 경우는 드물다.

전문가들은 서울과 지방 분양시장에서 나타나는 양극화 추세가 굳혀지지 않을까 우려한다. 지방의 미분양 주택을 줄이려면 새집 수요를 끌어올려야 하는데, 수요 늘리기가 쉽지 않다는 것. 지방 대부분 도시들이 인구 유출에 따른 지방 소멸에 직면해 있는 상황이다. 부동산 시장 경착륙을 막기 위해 규제를 대폭 푼 ‘1ㆍ3대책’이 지방 분양시장을 더 악화시키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제경 투미부동산컨설팅 대표는 “지방 미분양 주택 해결을 위해서는 해당 지역이 일자리와 인프라를 갖추고, 인구가 늘어야 한다”며 “최근 울산 현대차 공채 모집에 10만명이 몰리고, 잠잠하던 평택 집값이 삼성으로 들썩였듯, 특히 일자리가 먼저 확충돼야 한다”고 했다. 이어 “만약 지방 아파트 가격이 정체되고, 서울 아파트 가격만 오른다면 지방 주민도 서울에 있는 집을 매수할 것”이라며 “최근 전국 단위로 ‘줍줍’(무순위 청약) 시장이 열린 만큼, 서울 쏠림 현상은 당분간 심화할 수 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 김리영 기자 rykimhp206@chosun.com, 김서경 기자 westseoul@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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