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집고] 재계 순위 19위(2022년 기준)의 부영그룹은 공격적인 투자로 널리 알려져 있다. 특히 돈이 될 만한 땅이라면 싹쓸이 하듯 매입한 뒤 아파트나 오피스텔을 지어 수익을 내는 데에는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다.
부작용도 적지 않다. 땅을 확보하고도 사업진행이 장기간 지연되면서 금싸라기 땅들이 지역 흉물로 방치되고 있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부영 손에만 들어가면 폐허가 될 때까지 땅을 망가뜨린다”는 말이 나돌 정도다.
서울로만 한정해 현재 부영이 소유한 알짜 땅은 모두 5곳, 수도권까지 포함하면 6곳에 달한다. 용산구 한남동 한남근린공원 부지와 용산동 아세아아파트 부지, 성동구 서울숲 부지, 중구 소공동 한국은행 본관 인근 부지, 금천구 옛 대한전선공장 부지 등이다. 수도권에서는 인천 송도에 테마파크 부지를 가지고 있다.
■호텔ㆍ테마파크 짓겠다며 사들인 노른자위 땅 10년째 방치
주택 사업이 주력인 부영은 호텔을 짓겠다며 2009년 성수동 서울숲 부지, 2012년 중구 소공동 부지를 잇달아 사들였다. 이중근 부영 회장이 주택에서 사업을 다각화해 호텔·레저 사업을 하겠다고 밝히면서다. 그로부터 15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지만, 서울 호텔 부지는 구체적인 사업안도 마련되지 않은 채 빈 땅으로 놀고 있다.
성수동 호텔 부지는 성수동 1가 685-701번지 일대로, 서울숲 뒤편에 있다. 사업지 면적은 약 1만9002㎡다. 부영은 최고 높이 199m에 49층 규모로 아파트(340가구)ㆍ 관광숙박시설(1087호실)을 만들겠다고 계획했다. 사업 걸림돌이었던 부지 바로 앞 한강 주차장 땅 매각 계획을 서울시가 철회했지만 호텔 건립 사업은 여전히 진행되지 않고 있다.
소공동 호텔 부지는 부영이 27층짜리 비즈니스 호텔을 짓겠다는 목표로 사들였다. 옛 삼환기업 부지였던 소공동 112-9번지 일대는 남측에 한국은행이, 북서쪽 길 건너에 웨스틴조선호텔이 있는 사대문 내 알짜배기 땅이다. 업계에서는 서울숲 부지보다도 호텔 입지로서 가치가 더 높다고 본다.
이 사업은 부지와 맞닿아 있는 근현대 건축물들 원형 보존 문제로 지연돼 왔다. 문화재청은 건축물 원형 유지를 원하고, 부영은 건물 외벽만 남기겠다고 주장하면서다. 국민권익위원회 산하 중앙행정심판위원회가 2021년9월 부영의 손을 들어주면서 사업은 정상화 수순으로 돌아섰지만, 사업은 속도를 못 내고 있다. 약 1년반이 지난 현재, 부영은 호텔 사업 계획을 검토 중인 상태라고만 입장을 밝혔다.
사업 다각화 일환으로 부영이 테마파크를 만들기 위해 매입한 옛 송도 대우자동차 판매부지도 사업 진척이 없는 상태다. 부영은 2015년 동춘동 테마파크 부지와 인근 도시개발사업 부지 등 104만㎡를 매입했었다.
부영은 사업지 터에서 나온 멸종위기 2급 야생동물 맹꽁이 서식지 때문에 사업이 늦어지고 있다는 입장이다. 올 상반기 중 맹꽁이 서식지 이전을 신청하는 등 이 문제부터 해결하겠다고 부영 측은 설명했다. 그러나 지역 사회에서는 맹꽁이 서식지 발견 이전부터 부영은 8년째 인천시에 사업계획을 제대로 내지 않는 등 의지를 보이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용산 황금입지 아파트 사업도 감감무소식…“개발 의지 있나” 의구심도
2014년 대단지 아파트를 짓겠다며 사들인 용산구 한남동 고급주택가 부지와 용산동 아세아아파트 부지도 9년째 허허벌판인 채로 남아있다.
아세아아파트는 청약 대기자들의 관심이 뜨거운 황금입지 대단지 아파트다. 부영은 2014년 대지면적 4만6524㎡(1만4073평) 규모인 이 부지를 국방부로부터 매입했다. 3개동, 지하 3층~지상 최대 32층 규모의 공동주택 969가구와 부대복리시설을 지을 계획이었다. 당초 계획대로라면 2021년 6월 착공해 2024년 6월 준공해야 했다. 현실은 아직 첫 삽조차 뜨지 못하고 있다.
부영에 따르면 미국 대사관이 아파트 계단실 설계변경을 요구하고, 토지ㆍ건물 전 소유자ㆍ임차인들이 부지를 무단 점유하면서 착공이 지연되고 있다. 부영 측은 “사유지 관련 소송이 진행 중이어서 착공이나 분양 시기는 불확실하다”고 말했다.
2014년 1200억원에 사들인 한남동 고급주택가 인근 한남근린공원 부지(2만8197㎡)는 서울시와 소송전이 한창이라 공터 상태로 남아 있다. 서울시는 토지 보상비로 원가 3배 이상을 주고서라도 공원을 만들겠다며 땅을 탐내고 있고, 부영은 황금 입지에 ‘나인원 한남’에 버금가는 고급 주택을 짓겠다는 입장이다.
부영이 서울 금천구에 가지고 있는 대형종합병원 부지도 수년째 방치되고 있다. 부영은 2012년 대한전선으로부터 2만4720㎡ 규모인 이 부지를 1250억원에 매입했다. 지하 5층~지상 18층, 연면적 17만7286㎡에 810병상을 목표로 했다. 작년 4월 기공식을 열었으나, 11개월이 지난 지금도 공사는 진행되고 있지 않다. 부영 측은 아직도 토양오염 정화업체를 선정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일각에서는 부영이 개발 의지가 있는지 모르겠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알짜 부지를 사들여 개발하는 시늉만 한 뒤 사실 수년 동안 묵혀 ‘땅 장사’를 하려는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입지가 좋아 개발하지 않아도 엄청난 시세 차익을 벌어들일 수 있고 개발할 경우엔 땅값이 더 오르기 때문에 부영은 어떻게 해도 이득을 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 건설업계 관계자는 “부영은 서울과 수도권마다 좋은 입지에 1만㎡ 이상 대규모 부지를 가진 땅 부자”라면서 “부영 입장에서는 손해볼 것이 없지만, 국가적으로는 좋은 입지의 땅을 빈 땅으로 둬야 하다 보니 손해가 막심하다”고 말했다. /박기람 땅집고 기자 pkram@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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