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집고

"집주인이 바뀌었다고?" 전세금 홀라당…대책은 있으나 마나

뉴스 김리영 기자
입력 2023.02.23 12:08 수정 2023.02.23 14:55

[땅집고] 수도권 외곽지역의 한 빌라 전셋집에 거주하는 A씨는 최근 언론에서나 접하던 전세사기 피해 당사자가 됐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전세사기 피해 사실은 집주인과 전화 통화를 시도하다가 우연히 알게 됐다고 했다. A씨가 전입한 후 몇 개월 뒤 A씨도 모르게 집주인이 바뀌어 있고, 빌라는 경매에 넘어간 채 예전 집주인과 연락이 끊긴 것. 기존 집주인과 거래할 때는 등기부등본이 깨끗해 아무런 걱정이 없었다. 하지만 바뀐 집주인의 자금 문제로 집이 경매에 넘어갔고, 최근 집값이 꺾이면서 빌라 매매가격은 A씨가 계약할 당시 전세금 수준으로 떨어진 상태다. A씨는 전세금반환보증에도 가입하지 않아 보증금을 떼일 처지다. 거주기간 동안 집주인이 바뀌었는데도, 법적으로 통보받을 장치가 없어 이 지경이 됐다는 사실에 억장이 무너졌다.

[땅집고]서울 강서구의 한 오피스텔 외벽에 전세 현수막이 걸려 있다. (사진에 나온 오피스텔은 기사 내용과 무관하다.) /연합뉴스


정부가 지난 2일 대대적인 전세사기 대책을 발표했지만, 여전히 집주인에게 전세금을 돌려받지 못하는 세입자 피해 사례가 증가하는 추세다. 반드시 사기꾼이 아니더라도, 속칭 갭 투자(전세를 낀 매매) 또는 보증금을 다른 용도로 사용한 집주인은 급전을 마련하지 못해 전세금을 돌려주지 못하는 상황도 발생하고 있다. 정부의 전세사기 대책은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엔 여전히 헛점이 많다는 평가다.

■부랴부랴 도입한 ‘안심전세 앱’, 시세 부정확하다?

22일 부동산 중개업체 집토스에 따르면 최근 임대인으로부터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해 임차권등기를 신청하는 세입자가 급증하고 있다. 지난해 12월부터 올해 1월까지 집합건물 임차권등기 신청은 4441건으로 전년 1263건보다 3.5배 늘었다. 임차권등기는 임대차 계약이 끄끝났는데 임대인으로부터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한 세입자가 이사를 가더라도 대항력을 유지, 경매 낙찰시 다른 채권자에 우선해 전세금을 돌려받을 수 있는 권한이다. 임대차등기 신청 건수는 보증금 미반환 사례가 얼마나 많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지표이기도 하다.

[땅집고] 전국 집합건물 임차권설정등기 신청 건수. /집토스


지역별로 서울에서는 강서구가 1145건으로 가장 많았고, 경기도 부천시 831건, 인천 서구 766건, 미추홀구 762건, 서울 구로구가 731건으로 뒤를 이었다. 강서구와 부천시에서는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기준 2년 전 집합건물 전세계약(5861건)의 약 11%인 639건이 임차권등기 신청으로 이어질 정도로 보증금 미반환 사례가 빈번했다.

전세사기 예방을 위해 지난 2일 정부가 관련 대책을 발표했지만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정부는 전세 사기 예방과 정확한 빌라 시세 정보 제공을 위해 ‘안심전세 앱’을 출시했다. 하지만 시세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거나, 시중에 나온 매물 시세의 70% 정도만 반영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안심전세 앱에서 최대 3억5300만원으로 조회된 A 빌라 매물의 실거래가는 3억4400만원으로 시세보다 높게 나타났고, 4억3100만원이던 매물도 시세보다 1000만원 더 가격이 비쌌다.

안심전세 앱의 핵심 기능인 악성 임대인 정보 공개도 도입 시기가 늦어지고 있다. 악성 임대인 명단 공개의 법적 근거를 담은 주택도시기금법 개정안은 지난 14일 국회 법안심사소위원회를 통과했지만, 본회의 통과까지는 시간이 더 걸릴 전망이다. 개정안에 따르면 신상 공개 대상이 되는 악성 임대인은 ▲총 2억원 이상의 임차보증금을 변제하지 않아 주택도시보증공사(HUG)가 대신 내어줬고 ▲이에 따른 구상채무 발생일로부터 3년 이내에 2건 이상의 임차보증금 반환 채무를 이행하지 않은 사람이다. 공개하는 정보는 임대인의 이름, 나이, 주소, 임차보증금반환채무 및 구상채무에 관한 사항이다.

국토부는 법안 시행 시기를 오는 7월쯤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 시기에 맞춰 안심전세 앱 시세 정보와 성능을 업그레이드한 2.0 버전을 출시한다는 계획이다.

[땅집고]인천 미추홀구 전세사기피해 대책위원회 회원들이 지나 3월20일 오후 인천지방법원 앞에서 가해자 일당에 대한 엄벌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연합뉴스


그렇지만 개정 법을 시행해도 임대인 사망이나 세입자 몰래 집주인이 바뀌어 발생하는 전세사고 등은 해결할 길이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근 빌라왕 사태를 비롯해 전세사기를 당한 임차인 대다수는 집주인이 임차기간 중 바뀌어 피해를 당했다. 세입자가 전세계약 전 등기부등본을 확인해도, 이사 후 집주인이 자기도 모르게 바뀌면 사기 피해자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전세 사라지고 월세는 폭등…“전세제도 손봐야”

수도권 아파트 매매가격과 전세금이 동반 하락하면서 집주인이 의도치 않게 전세금을 반환할 수 없는 상황에 봉착하는 점도 큰 문제다. HUG는 집주인 대신 전세보증금을 세입자에게 대신 갚아준 전세반환보증 사고 액수가 올 1월에만 1700억원에 달하고, 연내 대위변제액이 2조원까지 치솟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2021년 1월부터 올해 1월까지 2년간 서울의 아파트 매매가격은 -2.07%, 같은 기간 전세금은 -8.65% 하락했다. 2021년 한 해동안 서울 아파트 매매가격이 8.03%, 전세금이 6.49% 상승한 것과 비교하면 전세금의 경우 지난 1~2년새 폭등과 급락이 거듭된 셈이다. 전세사고 위험에 세입자들이 전세를 기피하면서 전셋집이 사라지는 반면, 월세 가격은 2년새 30% 가량 상승해 서민 주거 불안이 심화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최원철 한양대 부동산융합대학원 특임교수는 “전세는 한국에만 있는 독특한 제도로 그동안 서민 주거 안정 측면에서 장점도 있지만 집값이 급변하면서 부작용이 더 부각되고 있다”며 “부작용이 지나치게 크다면 규제를 통한 존폐 여부도 고민해야 하는 시점”이라고 했다. /김리영 땅집고 기자 rykimhp206@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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