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집고] 7일 정부가 1기 신도시를 겨냥한 구체적인 정비 방안이 담긴 ‘노후 신도시 특별법’을 발표하면서 수도권 재건축 시장이 술렁이고 있다. 정부는 법안에 1기 신도시 재건축 사업의 큰 복병인 용적률과 안전진단 규제를 파격적으로 완화하는 내용을 담았다. 지은 지 30년이 넘어 노후화가 진행 중이지만, 현행 제도만으로는 사실상 재건축 추진이 불가능했던 1기 신도시 100만 노후 아파트가 본격적으로 사업을 추진할 동력을 얻었다는 평가다.
1기 신도시 주민들은 일단 환영하면서도, 넘어야할 산이 많다는 반응을 보였다. 가장 큰산은 국회 통과다. 1기 신도시 주민들이 원하는 방식의 정비사업안이 나오더라도 다수 야당이 반대하면 시행이 어렵다. 법안 통과에 핵심 키를 쥔 야당 입장에서는 1기 신도시뿐만 아닌, 수도권 노후 아파트 밀집 지역과의 형평성도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특정 지역에 특혜가 많은 법안을 그대로 통과시키기 어려울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특히 재건축 초과이익 대한 환수 방식을 둘러싸고 국회에서 한차례 더 논의를 거치게 될 가능성이 높다. 주민간 갈등의 불씨를 키울 단지별 정비 순서, 이주 대책 등도 보다 세밀한 논의가 필요하단 이야기가 나온다.
■ 1기 신도시 재건축 걸림돌 ‘용적률·안전진단’ 파격적 완화
이번 특별법의 가장 큰 인센티브는 ‘종 (種) 상향을 통한 용적률 완화’와 ‘안전진단 완화’로 요약할 수 있다. 1기 신도시는 단지들의 기존 용적률이 평균 169~226%로 높아 애당초 사업성을 확보하기 어려운 지역으로 꼽혔다. 또 지난 1월 정부가 완화한 안전진단 기준을 시행했음에도, 1기신도시 아파트는 안전진단 통과가 어려운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는 특례지역은 2종 일반주거지역을 3종 일반주거지역이나 준주거지역 수준으로 종상향하고 역세권 등 일부 지역은 고밀개발이 가능하게 했다. 3종일반주거지역이 되면 최대 300%, 상업지역은 500%까지 용적률이 완화한다. 안전진단 기준도 올해 1월 시행한 완화한 기준보다 더 완화한 기준을 만들어 적용하기로 했다. 공공성이 확보되는 대규모 기반시설 조성에 기여하면 안전진단을 아예 면제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1기 신도시 재건축 추진 단지들의 사업성이 크게 변화할 전망이다. 분당 신도시 서현동 시범단지(삼성·한신, 우성, 한양, 현대)와 일산 백송마을 5단지 등 시범단지들이 대표적이다.
분당 서현동 시범단지의 경우 4개 아파트(총 7769가구)가 통합 재건축을 추진 중이다. 하지만 현행 법대로는 사업성이 제로에 가까웠다. 아파트 별로 용적률이 191~201%로 이미 높은데다, 24~49㎡ 소형 주택이 많아 조합원 간 주택형 배분이 쉽지 않고 추가 분담금도 많아질 수밖에 없을 것으로 예측됐다. 시범한양의 경우 가장 작은 28㎡가 360가구, 35㎡ 414가구로 전체(2419가구)의 30%를 차지한다.
특별법이 시행되면 분당 시범단지는 용적률을 최대 500%까지 높일 수 있게 된다. 이종석 분당 시범단지 재건축 예비추진위 대표는 “역세권 주변에 1인가구, 청년·고령층 수요에 맞춰 소형 주택형 위주로 고밀 개발하고 남은 단지들은 320%~350% 정도 용적률을 적용해 쾌적하게 지을 것”이라고 했다.
일산 시범단지인 백송마을 5단지도 특별법에 따라 사업 속도를 높일 수 있게 됐다. 이 단지는 용적률 등에서 사업성은 확보했지만, 안전진단 통과가 걸림돌이었다. 백송마을 5단지는 1992년 8월 입주해 15층, 12개 동에 786가구로 구성돼 있다. 현행 법상 종상향을 통해 기존 164%에서 280% 용적률을 적용받아 1500가구를 짓겠다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5단지 예비 추진위는 지난해 10월 안전진단 기준이 완화하기 직전 예비안전진단을 신청했다가 한 차례 탈락했고, 자체 시뮬레이션 결과 올해 1월5일부터 시행된 완화한 안전진단 기준에 맞춰도 구조안전 기준에서 점수가 다소 모자랄 것으로 예측했다. 백송마을 5단지 주민은 “특별법으로 안전진단 걸림돌이 사라져 향후 5년 안에 정비사업을 마무리 지을 수 있을 것”이라며 기대감을 보였다.
■ “인센티브 많아 형평성 시비 나올 것”…국회 통과 진통 예상
하지만 업계에선 이번 특별법에 특혜 요소가 많은만큼, 국회 통과까지 적잖은 진통이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정부는 지역간 특혜 논란을 고려해 1기 신도시뿐만 ‘조성 20년 이상된 100만㎡ 이상 택지지구’를 특별법 적용 대상에 포함했다. 하지만 타 지역은 1기 신도시만큼 혜택을 가져가기 어려울 전망이다. 목동 아파트 단지 등은 이미 기존 지구단위계획에 따른 재건축을 추진하고 있어 특별법을 적용해 처음부터 단계를 다시 밟으면 오히려 사업 추진 속도가 늦어질 수 있다.
특별법에 따르면 1기 신도시는 용적률 완화에 따른 기부채납을 할 때 공공임대주택 외에도 공공분양 주택, 기반시설, 생활 SOC, 기여금 등을 선택할 수 있게 했다. 주로 임대주택이 대부분인 기존 정비사업 기여 방식과 큰 차이를 보인다.
형평성을 고려해 특례지역에 초과이익 환수를 더 강하게 적용하면, 1기 신도시 주민들이 다시 반발할 가능성도 있다. 주민들 사이에선 이미 이중규제 소지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진재근 백송마을 5단지 예비추진위원회 대표는 “용적률 완화에 따른 기부채납 방식을 다양화한 것은 좋지만, 초과이익 환수제가 그대로 적용되기 때문에 이중규제로 다가온다”며 “재초환에 대한 기준을 더 명확하게 세워야 한다”고 했다.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랩장은 “특별정비구역은 각종 특례가 집중돼 초과이익 환수의 적정 수준에 대한 논쟁도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며 “지역 내 인구 40~50만명을 수용하는 대규모 주거지여서 단지별 정비사업 개발 순서에 따른 불만이나 이주로 인한 임대차 시장 불안 문제 해결 등이 더 논의되어야 할 것”이라고 했다. /김리영 땅집고 기자 rykimhp206@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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