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집고

"제2의 롯폰기힐스 만들겠다" 땅 사모으던 롯데의 배신

뉴스 이지은 기자
입력 2023.02.09 07:39

[땅집고] 롯데가 '인천판 롯본기힐스'를 조성하기로 했던 옛 인천 구월농산물시장 부지에 아파트와 오피스텔을 짓는 계획을 세운 것으로 확인됐다. /조선DB


[땅집고] 최근 롯데가 인천 남동구 구월동 옛 농산물도매시장 부지에 ‘제 2의 롯폰기힐스’같은 초대형 쇼핑문화복합시설을 조성하겠다는 계획을 철회하고 아파트와 오피스텔을 짓기로 해 지역사회로부터 뭇매를 맞고 있다. 10년 전 인천시로부터 이 땅을 넘겨받으면서 대대적인 개발을 약속하는 내용으로 투자 약정까지 맺었는데, 지역 사회와의 약속을 저버린 채 잇속 챙기기로 비춰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롯데 관계자는 “당시 롯폰기힐스를 개발 예시로 들었을 뿐, 해당 부지를 주상복합으로 개발하는 전체적인 계획은 바뀌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롯데의 이 같은 행태가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는 지적이 나온다. 이미 여러 지방자치단체가 롯데에 당해, 오죽하면 전국 곳곳에서 ‘부동산 개발과 관련해 롯데는 믿을 만한 기업이 못 된다’는 비난이 터져나오고 있다. 수법도 대동소이하다. 먼저 지자체에 지역 랜드마크를 지어주겠다고 제안해 땅을 넘겨받거나 개발권을 따낸 후, 개발사업을 착수도 않은 채 수 년간 시간을 끌다가 결국 분양수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 오피스텔·아파트 등 주거상품을 짓는 것으로 결말이 난다.

■롯데, ‘롯폰기힐스’ 계획 없던 일로…아파트·오피스텔 2300가구 짓는다

[땅집고] 롯데가 옛 인천 구월농산물시장 부지에 조성하겠다고 밝혔던 '인천판 롯본기힐스' 조감도. /인천시


롯데쇼핑은 2014년 인천시 소유의 남동구 구월동 소재 구월농산물도매시장 부지 5만8663㎡와 건물 4만4101㎡를 총 3060억원에 인수했다. 감정가보다 단 4억원 비싼 금액이라, 당시 롯데가 알짜 부지를 싸게 손에 넣었다는 말이 나왔다. 부지를 넘겨받은 롯데쇼핑은 롯데건설과 함께 이 곳에 2조원을 투자해서 신개념 스트리트 몰인 ‘인천판 롯폰기힐스’를 짓겠다는 투자 약정을 인천시와 체결했다. 롯폰기힐스는 일본 도쿄의 낙후한 도심을 재개발해 조성한 초고층 복합시설로, 전세계인이 즐겨 찾는 관광 명소로 꼽힌다.

하지만 롯데의 인천판 롯폰기힐스 계획은 무산된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달 31일 인천시가 발표한 교통영향평가심의 결과에 따르면, 롯데가 해당 부지에 공동주택과 오피스텔 등 2300가구를 짓기 위한 사전 단계로 수립해 제출했던 교통 대책이 수정의결됐다. 앞으로 롯데가 교통 대책을 수정해 제출하면, 아파트와 오피스텔을 지을 수 있는 길이 열린 셈이다.

이에 대해 롯데 측은 부지를 손에 넣었던 10년 전에 비해 개발 계획이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고 반박한다. 당시에도 구월농산물도매시장 부지에는 주상복합을, 맞붙은 인천터미널 부지에는 판매시설을 지을 계획이었다는 것. 롯데백화점 관계자는 “당시 비슷한 형태로 개발된 곳을 국내에서 찾기 어려워, 롯폰기힐스라는 하나의 사례를 들었던 것 뿐”이라며 “전체적으로 보면 주거와 상업이 복합된 형태의 개발이 맞다”고 설명했다.

인천시 남동구 공동주택과 관계자는 “구월농산물도매시장 부지 소유권이 롯데에 있기 때문에, 건축법 등에 저촉되지 않는 이상 이 땅을 어떻게 개발할지는 초기 청사진과는 별개로 롯데에 달렸다”며 “현재 롯데 측이 제출한 건축계획안에 대한 심의가 진행 중이다. 아직 심의가 끝나지 않았기 때문에 아파트·오피스텔이 도합 몇 가구나 될 지는 미정”이라고 했다.

■부산·송도·전주에서도 ‘롯데 불신’ 목소리 불거져

[땅집고] 롯데가 부산에 2025년까지 짓겠다고 한 부산롯데타워는 20년 넘게 착공하지 않고 있다. /롯데그룹


롯데가 지자체와의 약속한 개발계획을 철회하거나 시간 끌기 사례는 롯데그룹의 지역기반이라고 할 수 있는 부산에서도 있었다. 지난 2000년 롯데는 부산시로부터 옛 부산시청 터를 매입한 뒤, 롯데백화점과 함께 지상 428m에 최고 107층 규모 랜드마크인 ‘부산롯데타워’를 짓겠다고 제안하면서 건축허가를 받았다. 백화점은 2009년 개장해 영업 중이지만, 롯데타워는 지금까지도 감감무소식이다.

롯데가 20년 넘게 타워 건설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자, 결국 부산시가 칼을 빼들었다. 지난해 5월 부산시가 “롯데가 2009년부터 임시사용승인을 받아 백화점 영업 이익만 누리면서, 약속했던 롯데타워는 차일피일 미뤘다”며 백화점 영업 연장 승인을 불허한 것. 이에 롯데 측은 2025년 말 준공을 목표로 부산롯데타워 사업을 서둘러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올해 들어서도 타워는 착공조차 하지 않은 상태다.

[땅집고] 롯데는 인천 연수구 송도동에 대형 롯데몰을 짓는다고 홍보하며 '롯데몰송도캐슬파크' 오피스텔을 먼저 분양했는데, 아직까지도 롯데몰이 착공하지 않아 빈 땅으로 남아있는 상태다. /온라인 커뮤니티


인천 연수구 송도동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2011년 롯데자산개발이 인천경제자유역청으로부터 인천국립대 인근 부지 8만 4000㎡를 조성원가인 1450억원에 사들이면서 이 땅에 백화점·호텔·영화관·오피스·롯데마트 등을 망라한 ‘롯데타운’을 짓겠다고 발표했으나, 현재까지 수익이 확실한 ‘롯데몰송도캐슬파크’ 오피스텔 2040실을 분양한 게 전부다. 롯데몰 송도점은 2019년 건축허가를 받았지만 올해 들어서도 이렇다 할 사업 진척이 없다.

이에 분노한 ‘롯데몰송도캐슬파크’ 수분양자들은 “당시 롯데가 오피스텔 바로 옆에 대형 롯데몰을 지어준다고 홍보해 분양받았는데, 지금까지도 롯데몰이 지어지지 않고 있다”며 “이는 명백한 허위·과장 광고에 따른 사기분양”이라는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최근에는 전북 전주에서도 롯데에 대한 반발 여론이 포착됐다. 2018년 ㈜자광이 전주에서 노른자 땅으로 꼽히는 대한방직 공장부지를 1980억원에 매입하는 계약을 체결하면서 이 땅에 143층 높이 타워와 아파트 건설을 계획했는데, 해당 계약의 대출보증인이 롯데건설이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다. 지역 사회에서는 ‘롯데가 다른 지자체에서도 그랬듯이 전주에서도 타워는 건설하지 않고 아파트 등 주거상품만 분양해 수익을 챙길 것’이라는 불신이 강한 분위기다.

■지자체, 민간과 개발방향 두고 협상 능력 갖춰야

부동산 전문가들은 지역 핵심 부지 소유권을 차지하기 위해 공익적인 개발을 병행하겠다고 약속했던 민간기업들이 정작 땅을 넘겨받은 후 나몰라라 하는 관행에 분명 문제가 있다고 본다. 다만 기업 입장에선 수익성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땅을 개발하는 것이 당연하기 때문에, 개발 방향을 두고 지자체가 민간과 협상하는 능력을 갖춰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김진유 경기대 도시교통공학과 교수는 “지자체가 국공유지나 유휴부지를 민간에 넘길 때 도시계획적인 방법을 이용하면 지역에 도움이 되는 협상결과를 이끌어낼 수 있다”며 ”과거 서울시가 강남구 삼성동 한국전력 부지를 현대차그룹에 넘겼을 때, 지구단위계획상 용도변경 및 용도지역 상향해주는 조건으로 1조2000억원 공공기여금을 받았던 것이 좋은 예시”라고 했다. /이지은 땅집고 기자 leejin0506@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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