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집고

상술이 빚은 끔찍한 '가로수 독살사건'…지금 그 자리엔

뉴스 이지은 기자
입력 2023.02.04 10:38

[땅집고] 서울 서대문구 북가좌동 '스타벅스 북가좌드라이브스루' 건물 앞 가로수가 고사해 하얗게 말라 있다.(2021년 여름 당시 모습) /온라인 커뮤니티


[땅집고] “헐, 스타벅스 살리려고 죄 없는 나무를 농약으로 독살하다니…정말 너무하네요ㅠㅠ”

최근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가로수 독살사건’이라는 제목이 붙은 글이 화제다. 건물 관리인이 새로 입점하는 유명 카페를 더 잘 보이게 하려는 목적으로, 매장 앞에 있던 가로수에 제초제를 들이부어 말려 죽였던 과거 사건이 다시금 회자되고 있는 것이다.

2021년 여름 서울 서대문구 북가좌동에 문을 연 카페 매장. 지상 2층 건물로 드라이브 스루로 운영하는데, 유동인구와 차량 통행량이 많은 북가좌오거리 대로변 입지라 이 매장을 찾는 고객들이 적지 않다. 매장이 들어서기 전, 이 건물 앞에는 키가 큰 플라타너스(양버즘나무) 가로수 5그루가 심어져있었다. 이에 건물 관리인 A씨가 건물 진입로를 확보하기 위해 2021년 6월 말 서대문구청의 허가를 받아 가로수 중 2그루를 잘라냈다.

[땅집고] 서대문구청 의뢰로 경찰이 가로수 고사 원인을 수사한 결과, 누군가 가로수 밑동에 구멍을 뚫고 제초제를 주입한 것으로 나타났다. /온라인 커뮤니티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남은 나무 3그루가 고사하는 일이 벌어졌다. 당시 여름이라 대로변 가로수들이 초록빛 잎사귀로 풍성했던 반면, 유독 카페 앞 나무 3그루만 잎이 갈색으로 마르면서 뚝뚝 떨어지기 시작한 것. 이를 이상하게 여긴 서대문구청은 ‘가로수를 훼손한 것을 본 목격자를 찾습니다’라는 현수막을 내걸고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경찰 수사 결과, 건물 관리인 A씨가 가로수 밑동에 구멍을 뚫고 ‘근사미’라는 제초제를 대량으로 주입한 것으로 드러났다. 나무에선 안전기준치의 700배가 넘는 고농도 농약이 검출됐다. 당시 A씨는 구청에 자수서를 제출했으며, 가로수 값으로 780만원을 변상했다. 현행법상 가로수를 독살하면 ‘도시숲 등의 조성 및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이 내려진다. 이에 경찰은 해당 법 위반과 형법상 재물손괴죄를 들어 2021년 9월 A씨를 검찰에 송치했다.

하지만 검찰은 지난해 1월 A씨에게 증거불충분으로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나무가 고사하긴 했지만 그 원인이 A씨가 나무줄기에 직접 제초제를 주입했기 때문인지, 바로 옆 가로수에 뿌렸던 제초제를 뿌리로 흡수해서인지 정확히 알 수 없다는 것. 당시 검찰은 “하수관이나 토양 등을 통해 앞서 뿌린 제초제가 흘러갔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며 “형사소송법상 단정하기 어려우면 기소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검찰의 무혐의 처분으로 사건 자체는 종결됐지만, 서대문구 푸른도시과 측은 A씨가 아니더라도 누군가 나무에 제초제를 주입한 사실은 확실하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당시 농약 성분 등을 검토하는 나무병원에 조직검사를 의뢰한 결과, 고사한 나무에서 검출된 제초제가 뿌리로 자연 흡수해서 나오는 수치보다 매우 높았다는 것. 이 검사 결과와 A씨의 자수서를 제출했으나 범행 장면을 담은 CCTV는 확보하지 못해 증거불충분 판결이 난 것으로 보인다.

[땅집고] 서대문구청이 고사한 나무를 추모하는 팻말을 걸어두고, 환경운동가들도 나무에 근조 리본을 달아 줬다. /온라인 커뮤니티


서대문구청은 고사한 나무를 대로변에 그대로 남겨두고 ‘이 나무는 누군가의 고독성 농약 살포로 말라죽은 양버즘나무입니다. 안타까운 사실을 기억하고 사회적 교훈으로 남기기 위해 그대로 남겨두었습니다’란 문구가 적힌 팻말을 걸어뒀다. 서울환경연합은 현장을 찾아 고사한 가로수 한 그루에 검은 리본을 묶고 추모하기도 했다. 최진우 서울환경연합 생태도시전문위원은 “가로수의 이로움을 생각하지 않고, 이기적인 탐욕을 위해 나무의 생명을 학살한 악질적인 사건”이라고 비판했다.

하지만 나무가 부패해 쓰러질 위험에 처하자, 서대문구청은 결국 고사한 나무와 주변 흙을 모두 제거하고 새 가로수를 심기로 결정했다. 지난해 3월 새로 심은 나무 3그루 모두 앞서 고사한 나무와 마찬가지로 플라타너스다. 양천구가 예비용 가로수로 길러지던 30~40년 된 나무들을 제공했다고 알려졌다.

서대문구 푸른도시과 관계자는 “30년 동안 서울 각 구청에서 녹지 관련 업무를 해왔지만, 이런 일은 처음이었다”고 회상했다. 통상 가로수를 제거한다고 해도 톱으로 잘라내는 데만 그치는데, 나무에 직접 제초제까지 주입하는 가혹 행위는 전혀 없었다고 했다. 그는 “사건은 무혐의로 종결처리 됐긴 하지만, 최근 ‘반려식물’이라는 말이 생길 정도로 식물에 대한 애정이 높아진 분위기라 충격을 받은 시민들도 많았다”며 “앞으로도 구내 가로수를 잘 관리하려고 애를 쓴다”고 전했다.

최근 ‘가로수 독살사건’ 전말을 접한 네티즌들은 “멀쩡한 나무를 독살하다니 진짜 천벌 받겠다”, “나무들이 너무 불쌍하다. 나무를 죽이고 먹는 커피 맛이 좋으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등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이지은 땅집고 기자 leejin0506@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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