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집고

[단독] 수상한 휴대전화 뒷번호…이번엔 '1050채 빌라왕' 잠적

뉴스 박기람 기자
입력 2023.01.13 16:40 수정 2023.01.13 17:29
/그래픽=조선DB


[땅집고] 수도권에서 전세사기 사건이 잇따르는 가운데 주택 1050여채를 보유한 또 다른 ‘빌라왕’ 김모씨가 경찰 수사를 피해 작년 10월 이후 잠적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김씨가 보유한 전세주택 만기가 돌아오는 올 1분기 이후 보증금을 떼이는 피해자가 속출할 것으로 우려된다.

13일 땅집고 취재를 종합하면 경찰이 쫓고 있는 빌라왕은 경기 시흥시에 사는 1972년생 김모씨로 알려졌다. 그는 2021년부터 서울 강서구 화곡동과 경기 부천시, 인천 계양구 등지에 속칭 ‘무자본 갭투자’ 수법으로 빌라와 오피스텔 등 주택 1050채를 매수했다.

‘무자본 갭투자’는 자기자본 한푼 없이 전세입자 보증금으로 신축 빌라 등을 매입하는 수법을 말한다. 전세 만기 때 새 세입자를 구하지 못하면 보증금을 돌려주지 못하고 결국 연쇄 부도 사태를 맞게 된다. 최근 1139채를 소유한 ‘빌라왕’ 김모씨, 또 다른 ‘빌라왕’ 정모씨와 송모씨 등이 모두 이 같은 수법으로 사기행각을 벌이다 덜미가 잡혔다.

[땅집고] 휴대전화 뒷번호가 2400번인 1972년생 빌라왕 김씨의 번호에 대해 세입자들이 남겨놓은 평가./후스넘버


경찰은 1972년생 김씨가 국내 최대 규모의 전세사기범 ‘빌라의 신’ 권모씨와도 연관이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권씨는 수도권에만 주택 3400여채를 보유하면서 전세입자에게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은 혐의로 지난해 구속됐다.

김씨와 권씨의 연관성을 의심하는 이유는 이들이 대포폰으로 쓴 휴대전화 뒷번호 때문이다. 권씨 일당은 모두 휴대전화 뒷번호를 2400으로 통일해 사용했는데, 김씨 역시 2021년 1~3월까지 010-XXXX-2400 번호로 세입자들과 연락을 주고 받으며 임대차 계약을 맺었다.

김씨와 임대차 계약을 맺은 A씨(30대, 인천 계양구)는 “010-XXXX-2400을 쓰는 집주인한테 전세사기를 당했는데, 이게 그 ‘빌라의 신’이라는 권씨와 같은 뒷번호였다는 걸 뒤늦게 알았다”며 “사기꾼 일당이 저희 집주인일 거라고는 생각 못했다”고 했다.

■전세만기 도래하는 3월 이후 피해자 속출할 듯

1972년생 김씨 소유 주택 대부분은 현재 경기 시흥세무서에 압류된 상태다. 국세인 종합부동산세를 미납했기 때문이다. 1139채를 소유한 ‘빌라왕’ 김씨가 다수의 주택을 세무서에 압류당했던 것과 비슷한 상황이다.

통상 국세청은 등기우편으로 세금 고지서를 발송하고 두 달 정도의 납부 기한을 준다. 독촉 기간 경과 후까지 납부가 안 되면 지방 세무서에서 압류조치 등 강제징수 절차에 들어간다. 김씨는 기하급수적인 금액의 종부세를 체납했을 가능성이 높다. 주택을 3채 이상 보유한 다주택자인 데다가 모든 주택의 공시지가가 94억원 이상일 경우, 최고 누진세율이 6%에 달하기 때문이다.

13일 기준으로 계약 만기가 도래해 전세보증금을 받지 못한 사람은 3~4명 정도에 불과하다. 그러나 본격적인 전세만기가 도래하는 3월 이후에는 피해 규모가 최소 40명가량으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A씨는 “신축ㆍ구축 빌라, 오피스텔에 전세로 들어간 2030세대가 세입자의 대부분”이라며 “지금은 피해자가 적지만, 지금부터가 시작이고 앞으로는 엄청나게 쏟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김씨로 인한 예상 피해자는 1000여명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사건은 아직 수면 위로 떠오르진 않은 상태다. 김씨가 주택을 집중 매입한 시기가 2021년 상반기쯤이고 대다수 주택의 전세계약 만기 시점이 아직 도래하지 않아 주택금융공사(HUG)의 보증금 미반환 사고 등 공식 통계로 집계되지 않는 탓이다.

피해자 중 HUG의 보증보험에 가입된 세입자는 구제받을 수가 있지만, 그렇지 않은 세입자는 절망적인 상태다. A씨는 “보증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세입자는 소송이나 경매에 미리 대비하기 위해 없는 돈을 털어서 변호사 수임하고 내용증명을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땅집고]작년 9월 처음 전세사기 관련 기사 나오고 경찰 수사가 진행되자 1972년생 빌라왕 김씨는 세입자들에게 무작위로 문제없다는 우편물을 보냈다./독자 제공


■작년 10월 이후 연락 두절…경찰, 추적 중

김씨는 지난해 3월 이후로는 뒷번호를 8020으로 바꾼 것으로 전해졌다. 권씨 일당과의 결별이나 거리두기일수도 있다고 세입자들은 해석하고 있다. 세입자들에 따르면 김씨는 권씨가 처음 구속되고 자신에게도 수사망이 좁혀오던 작년 9월 세입자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우편으로 안내문을 발송하기도 했다.

안내문에는 “어떤 악의적인 내용을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지금까지 임차인 보증금을 반환하지 못한 건은 1건도 없다”며 “일부 소규모의 법무법인 변호사들이 임대보증금 반환 불안감을 조성하며 수임료를 요구하는 걸로 안다. 여기에 현혹당해 피해 입지 않길 바란다”고 적혀 있다.

이어 김씨는 “만기 시 퇴실을 원하거나 연장을 원하시는 세입자는 문자로 주소와 성함, 계약서 사진을 보내달라”고 했다. 그러나 지난해 10월 이후 김씨의 행방은 묘연해졌다. 이에 한 세입자는 올 3월 만기를 앞두고 불안감에 중도 해지를 요청했으나, 김씨와는 연락이 닿지 않았다”고 했다. 현재 경기남부경찰청은 전세사기 혐의로 김씨를 쫓고 있다. /박기람 땅집고 기자 pkram@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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