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익대 건축과를 졸업한 뒤 일본의 설계사무사에서 경력을 쌓은 남택 건축사가 ‘우동, 건축, 그리고 일본’(기파랑)을 펴냈다. 옆나라 일본의 건축에서 배워야 할 지점들을 돌아본다.
[땅집고 북스-일본, 건축, 그리고 우동] ①한국에서 노출 콘크리트 건물을 ‘싸고 좋게’ 지을 수 없는 이유
일본의 고도 성장기를 이끌던 건축가들은 일반인들이 아니라 이른바 일본의 귀족 출신들이었다. ‘이소자키 아라타’, ‘마키’, ‘구로가와 기쇼’ 등 거장들은 귀족 신분인 자신들의 배경을 바탕으로 천재성을 마음껏 펼치고, 그에 걸맞은 존경을 받아왔다.
버블이 극에 달했을 때 일본의 건축계는 건축물의 마감 면에서 돈을 아끼지 않고 할 수 있는 것을 다 했다. ‘마키’가 디자인한 알루미늄 프레임은 일반 건축가들은 써 볼 수도 없는 고가였고, 제네콘(5대 종합 건설사)들은 그런 디자인을 부추겨 고가의 건축물을 지었고, 그 과정에서 창출되는 수익에 탄성을 질러댔다.
그런데 어느날, 언론이 한 남자를 주목했다. 고졸 권투 선수 출신의 건축가 ‘안도 다다오’. 건축 수업이라곤 받지도 않았고, 러시아 횡단 건축여행이 수행의 전부인 것처럼 보이는, 천민의 외모를 가진 헝그리 맨이었다.
돈을 쏟아붓는 건축가들 틈에서, 안도는 외부 마감에 드는 비용을 아낄 수 있어 경제적인 ‘노출 콘크리트’ 공법을 주력으로 했다. 내부 단열이 필요 없는 오사카 등 지역에선 콘크리트 노출 면을 내부까지 과감히 끌어들여 인테리어 마감조차 생략했다. 심지어 화장실 내부에 타일을 없애기도 했다. 디테일이 필요한 창호 등 개구부나 마감이 달라지는 부분에는 몰딩 등 부자재를 쓰지 않아도 되는 디자인을 적용했다. 그럼에도 안도의 노출 콘크리트 건축은 미니멀하고 소박하지만, 작품성 측면에서 절대 뒤떨어지지 않았다.
노출 콘크리트와 관련한 일화가 떠오른다. 한 건축주가 나를 찾아와 대전시 유성구의 모텔 건축 작업을 맡긴 적이 있다. 작은 부지에 뻔한 모텔 설계였는데, 입면이 매우 촌스러웠다. 그 자리에서 입면을 노출 콘크리트로 바꾸고, 바깥 쪽에서는 창문도 출입구도 보이지 않도록 설계를 변경했다.
문제는 어떻게 공사하느냐였다. 이 정도 노출 콘크리트 작업은 대전시 소재 업체는 못하고, 서울 업체는 단가가 너무 높아 답이 없었다. 일본에선 예산을 아끼기 위해 노출 콘크리트를 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선 마감도 붙이지 않는 노출 콘크리트 건물이 더 비싸다. 업체마다 ‘노출 콘크리트는 마감이 까다롭다’, ‘형틀로 쓰는 합판이 비싼데, 이 합판은 재활용이 안 돼 돈이 많이 든다’, ‘마감이 잘 안나오면 고치는 값도 받아야 한다’는 등 갖가지 이유를 대며 돈을 2~3배나 더 받는다. 그러고도 작업이 제대로 안되는 경우가 부지기수인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노출 콘크리트로 작업하니 그 값을 더 쳐달라는 우리나라 업체들의 주장은 말이 안되는 것이다. 원래 모든 콘크리트 공사에서 형틀을 떼어낼 때 깨끗하게 잘 나오게 하기 위해 박리제를 바른다. 이때 박리제는 제대로 된, 지정된 것을 사용해야 한다. 이는 우리나라 표준 시방서(건설 공사를 시행하는 일반적인 기준을 기록한 서류)에도 명시해 놓은 것으로, 그대로만 하면 가욋 돈이 들어갈 이유가 없다.
결국 건축주에게 ‘내가 도와줄 테니 직접 건물을 싸게 지어보자’고 권했다. 일본에서 현장 감리 때 경험한 것만으로도 노출 콘크리트 작업에는 자신이 있었다. 베테랑인 형틀 목공수에게 인건비를 120% 지급하고, 필요한 자재를 대 주는 대신 시키는대로 해달라는 약속을 받고 구조공사 계약을 맺었다.
인부에게 요구한 건 간단했다. ▲콘크리트 강도는240 이상을 쓸 것 ▲부속은 허락받은 것만 쓰고, 형틀은 도면대로 나눌 것 ▲박리제는 정품을 쓸 것 ▲형틀에 쓰는 합판은 닦아서 쓸 것 등이다. 이는 어느 콘크리트 공사에서나 해야 하는, 원래 당연히 해야 하는 원칙이다. 그 결과 양질의 노출 콘크리트 건물이 우리나라에서 가장 싸게 지어졌다. 건축주는 준공된 모텔을 잘 운영해 투자금을 회수했고, 그 자금을 가지고 25층 규모 오피스텔을 성공적으로 분양해 그 이후로도 수천억대 분양 사업을 차례로 진행할 수 있었다.
일본에서 안도와 같은 건축물이 나오는 것은 건축가의 천재성에도 기인하지만, 약속을 지키고 맡겨진 소임을 다하는 성실한 사회가 경제적인 건축과 작품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도록 기능한 덕분이다. ‘싸게, 좋게!’를 원한다면 사회 체질부터 바뀌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글=남택 건축사, 편집=이지은 땅집고 기자 leejin0506@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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