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집고]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말은 로마의 번영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관용어다. 고대 로마는 뛰어난 건축 기술로 시민들에게 물을 공급할 수로를 만들었고, 도시 지하에 하수로까지 정비했다. 2000년 전 로마인들이 사용하던 공중목욕탕 역시 이들의 건축술이 잘 드러나는 시설이다.
이 외에도 로마에서는 오늘날 아파트를 짓듯, 건물을 위로 증축하는 기법도 발달해있었다. 기원전 고대 로마 제국의 임대 주택 ‘인슐라’(Insula)는 최고 10층이 넘는 건물도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나무와 진흙 벽돌로 지어졌던 인슐라는 인류 최초의 임대주택으로 기록돼 있다. 2000년도 더 전에 아파트 형태의 건축물이 이미 존재했던 것이다.
인슐라 등장 배경은 인구 증가와 관련이 깊다. 고대 문헌에 따르면 로마는 포에니 전쟁(BC 264년~146년) 이후 급격히 인구가 증가했고, 주택 수요도 덩달아 상승했다. 왕국에 이를 정도로 넓은 영토를 가진 로마 제국이었지만, 일부지역에서는 주택난이 심각했고, 결국 집합주거지 형태의 주택이 등장했다.
로마는 전쟁 이후 지중해 일대 패권까지 장악하면서 국제 도시로 성장했는데, 새로운 영토에 로마의 색을 입히는 과정에서 대대적인 공사가 진행됐다. 일자리를 쫓아 온 노동자 증가는 ‘인류 최초의 아파트’ 등장이라는 결과로 이어졌다.
또한 신전을 중요시하고, 신분 계급이 확실한 로마 사회의 특성상 일반 시민들이 거주할 주택 용지가 한정된 점도 인슐라 등장 배경 중 하나다.
인슐라는 4~5층 고층 주택 형태로 지어졌으며, 집주인에게 세를 내고 거주하는 곳이었다. 1~2층에는 상점이 있고, 3층 이상에는 주택이 있어 7~8가구가 한 집에 사는 형태였던 것으로 전해진다. 오늘날 흔히 볼 수 있는 상가주택의 모습인 셈이다. 이따금 세를 더 받기 위해 7~8층까지 규모를 늘리는 경우도 있었으나, 안전성이 취약했다.
대부분 펜트하우스에 최상층이 거주하는 것과 달리 달리 인슐라 꼭대기층에는 하층민 계층이 살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로마 시대에는 화재가 빈번했는데, 고층일수록 대피가 어렵기 때문이다.
로마 대화재 이후 로마는 건축, 도시계획 관련 규정을 다듬으면서 인슐라 관련 원칙도 정립했다. ▲인슐라 상하수도 시설 설치 의무 ▲인슐라 간 이격거리10피트(3m) 이상 ▲인슐라 가구별 발코니 설치 등이 그것이다. 이는 당시 네로 황제가 추진한 것으로, 화재 같은 긴급 상황에 재빨리 대처하기 위한 도시계획안 중 일부였다.
아쉽게도 인슐라는 로마가 쇠퇴하면서 함께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됐다. 이후 이러한 공동주택은 2000년 가까운 시간이 지나고, 19세기 산업혁명에 이르러서야 다시 등장한다. 로마가 그랬듯 도시로 일자리를 찾아온 노동자들이 늘면서 주택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본격적으로 아파트가 등장했고, 그 역사는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김서경 땅집고 기자 westseoul@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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