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집고] “경찰서마다 뒤편에 반원으로 생긴 건물이 붙어있던데, 여긴 대체 무슨 공간일까요?”
서울 마포구 아현동 일대에 1990년 2월 준공한 마포경찰서 건물. 네모반듯한 직사각형 경찰서 뒷편으로 둥그렇게 생긴 건물이 마치 부속품처럼 붙어 있어 눈에 띈다. 서초구 서초3동에 있는 서초경찰서에도 비슷한 건물이 보인다. 네모난 본관 서쪽 수풀이 우거져있는 방면으로 부채꼴 형태 건물이 따로 들어서있다.
땅집고 취재 결과 경찰서마다 붙어 있는 반원형 건물은 체포·구속된 피의자 혹은 경범죄자 등을 수감하는 ‘유치장’인 것으로 확인됐다. 그런데 유치장을 일반 사무실처럼 직사각형이 아닌, 부채꼴 모양으로 지어둔 이유가 대체 뭘까.
이런 건물 형태를 ‘판옵티콘’(Panopticon)이라고 한다. ‘모두’를 뜻하는 ‘pan’과 ‘본다’는 의미의 ‘opticon’ 두 단어를 합성한 말이다. 판옵티콘은 1791년 영국의 법학자 제레미 벤담이 죄수들을 효과적으로 감시하기 위해 제안한 원형 감옥이다. 감시 권력을 건축학적 모형으로 형상화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원형 감옥 구조를 보면 원형공간 중앙에 높은 감시탑을 세우고, 이 감시탑 바깥 원 둘레를 따라 죄수들을 가둔다. 여기서 빼놓을 수 없는게 조명이다. 중앙 감시탑은 어두워야 하고, 죄수들의 방은 밝은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 이렇게 하면 죄수들은 감시자의 시선이 어디를 보고 있는지 파악할 수 없어, 심리적으로 자신들이 늘 감시당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이 때문에 과거 국민권익위원회는 판옵티콘 형태인 유치장의 구조가 수감자들의 권익을 침해할 수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2012년 9월 조사 기준으로 112개 유치장이 부채꼴 설계로 지어져 맞은편 수감자들이 마주보는 구조인데, 방만 다를 뿐 남녀 수감자들이 뒤섞여 있다보니 각종 문제가 발생했던 것이다. 예를 들어 생리적 현상을 해결하지 못한 수감자들이 고통을 호소하거나, 남성 수감자가 여성에게 성희롱이나 협박을 가한 경우도 접수되기도 했다.
최근 건축하는 경찰서 건물에는 유치장을 판옵티콘 형태가 아닌 일반적인 직사각형으로 짓고 있다. 경찰청이 2007년 ‘유치장 설계표준규칙’을 개정해 유치장을 부채꼴 대신 일자형으로 배치하도록 하면서다. 다만 마포경찰서나 서초경찰서 등 오래된 경찰서 건물에만 부채꼴 형태로 된 유치장이 남아 있을 뿐이다.
일부 경찰서에서는 과거 역사의 산물인 판옵티콘 유치장 활용 방안을 모색 중이다. 일례로 1985년 지어진 대구중부경찰서는 유치장을 ‘경찰역사체험관’으로 개조해 시민들에게 개방했다. 현재 이곳은 대구중부경찰서 신축 공사로 운영이 중단된 상태다.
과거 서울 강동경찰서 자리에 2017년 준공한 강동구청 제2청사 1층에도 판옵티콘 유치장의 흔적이 있다. 강동구청이 독특한 공간 형태를 살려 이 곳에 카페를 차렸는데, 중증 장애인의 자립 기반 마련과 사회 참여 증진을 위해 설립한 카페 브랜드인 ‘아이 갓 에브리씽’(I got everything)이 운영 중이다.
강동구청 장애인복지과 관계자는 “제2청사를 리모델링할 당시 유치장 구조를 살리면서 공간을 활용하는 방안에 대해 많은 회의를 거쳤다”라며 “현재 카페는 구청 직원 뿐 아니라 구청을 방문하는 민원인들도 많이 이용하고 있다”고 했다.
/이지은 땅집고 기자 leejin0506@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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