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집고] 서울 강남의 고가 아파트를 소유한 A씨는 세입자 B씨 때문에 잠 못 이루는 나날을 보내고 있다고 했다. B씨가 “전셋값을 내리지 않을 경우, 계약갱신청구권을 써서 더 싼 옆집으로 이사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기 때문이다.
A씨는 “세입자의 성화로 법 조항을 다시 보니 계약갱신청구권을 쓴 임차인은 통보만 하면 아무 때나 계약을 해지할 수 있고, 심지어 중도 해지 시 나오는 복비(중개수수료)도 집주인이 내라고 돼 있었다”며 “당장 수억을 마련해서 줘야 할 판인데, 대출도 안 나오고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고 호소했다.
세입자 보호 명목으로 만든 주택임대차보호법이 부동산 침체기로 돌입하자 집주인을 위협하는 ‘양날의 검’이 되고 있다. 최근 부동산 빙하기로 전셋값이 떨어지자 중도해지를 요구하거나, 중도해지를 빌미로 실리를 취하려는 임차인들이 생겨나면서다. 집주인들 사이에서는 2020년 개정한 임대차보호법을 두고 ‘상생 임대인을 압박하고 전월세 시장에 혼란을 가중하는 악법 중의 악법’이라며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임대차보호법 제6조 2항이 가장 큰 문제다. 묵시적 계약갱신청구권 사용에 따른 갱신은 언제든 계약을 해지할 수 있고 3개월이 지나면 효력이 발생한다. 갱신권을 사용해 2년 연장 계약을 했어도 세입자는 언제든지 중도 해지할 수 있고, 집주인에게 보증금을 받아 이사 갈 수 있다는 의미다. 심지어 이 경우 계약 중도 해지 시 발생하는 중개수수료도 임대인이 내야 한다.
업계에서는 “임대차보호법이 상대적 약자인 세입자를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졌지만, 임대인이 역차별을 받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며 “집 가진 사람이 죄인 취급을 받게 하는 이상한 법”이라고 비판한다. 강남의 한 공인중개사는 “최근 계약갱신청구권을 써서 갑질하는 세입자 때문에 멘붕이 온 집주인이 한둘이 아니다. 전셋값 폭등기에도 상한선 5%에 맞춰 계약해 준 상생 임대인들 입장에서는 뒤통수를 맞은 격”이라고 말했다.
갱신청구권을 사용해 이익을 챙기려는 세입자도 생겨나고 있다. 서울 강남구 대치동 H 아파트를 가진 집주인 C씨는 올해 4월 세입자 D씨와 계약갱신청구권을 통한 임대차계약을 맺었다. 그런데 D씨는 반년 만에 집을 나갈 테니 보증금을 돌려 달라며 C씨 앞으로 내용 증명을 보냈다. D씨는 내용 증명을 보내면서 “3개월 기한을 넘기면 매달 보증금에 대한 이자 6%를 청구하겠다”고 요구했다.
법조계에서도 현행 주택임대차보호법에 문제가 많다고 지적한다. 임차인의 악용 가능성이 높은 반면 임대인 권리는 누락돼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것. 법을 개정하기 전까지 계약서를 다시 쓰는 것만이 임대인 피해를 줄이는 방법이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엄정숙 법도종합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는 “최근 갱신청구권 관련 문의가 늘어나는 추세”라면서 “임차인이 임대차보호법을 악용할 경우 자기 권리를 남용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도 현행 법에서 임대인이 보호받을 수 있는 여지는 없다”고 말했다.
정상은 번영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는 “임차인 보호를 위한 법이라고 해도 임차인 마음대로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면 임대인 지위가 불안해지기 때문에 현실성이 떨어지는 법이라고 본다”며 “임대인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갱신청구를 적시하지 않고 계약서를 다시 작성하는 수밖에는 없다”고 말했다. /박기람 땅집고 기자 pkram@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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