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집고

"계약금 9000만원 포기할게요"…'청약 대박' 도생 계약해지 러시

뉴스 박기람 기자
입력 2022.12.09 13:33

[땅집고] 작년 9억원에 분양해 청약 경쟁률이 100대1을 훌쩍 넘을 정도로 큰 인기를 끌었던 15평짜리 도시형생활주택 ‘신길AK푸르지오’의 수분양자들이 계약 해지 수순을 밟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면서 업계에 파장이 일고 있다.

7일 분양 업계에 따르면 시공사인 대우건설은 수분양자를 대상으로 지난 6일부터 계약해지 안내를 진행하고 있다. 최근 중도금 대출 일방 연기를 이유로 수분양자 70여 명이 계약 해지를 요구한 데에 따른 후속 조치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중도금 대출을 해주기로 했던 금융기관까지 발을 빼면서 사업에 먹구름이 끼고 있다. 업계에서는 앞으로 유사한 사례가 더 쏟아질 가능성이 높다며 우려하고 있다.

[땅집고]대우건설이 신길AK푸르지오 수분양자에게 보낸 문자메세지./온라인 커뮤니티


■경쟁률 129대 1 ‘신길 AK 푸르지오’ 수분양자, 계약해지 요구 잇따라

서울 영등포구 신길동 255-9번지 일원에 있는 신길 AK 푸르지오는 지하 5층~지상 24층, 5개 동, 오피스텔 96실과 도시형생활주택 286가구(공공임대주택 10가구 제외) 구성이다. 수익형 부동산만 있지만, 분양가는 매우 높았다. 도생은 방 한 칸과 거실로 구성된 전용 49㎡가 최고가 기준 8억 9970만원에 달했다. 3.3㎡당 6059만원 꼴이다. 오피스텔은 전용 78㎡가 최고가 기준 9억 8710만원에 공급돼 3.3㎡당 4176만원을 기록했다.

비싼 분양가에도 흥행은 초대박을 쳤다. 작년 11월 청약 당시 청약 신청자들이 몰리며 홈페이지가 마비될 정도로 경쟁은 치열했다. 도생 평균 청약 경쟁률은 44.64대 1이었으며 최고 청약 경쟁률은 전용 49㎡B2 주택형의 129대 1이었다. 오피스텔의 경우에는 평균 경쟁률이 1312대 1에 달했다.

도생에 이처럼 많은 인파가 몰린 건 드문 일이라 많은 관심을 받았다. 당시 전문가들은 부동산 불장기였던 작년에 가점이 낮은 20·30대들이 비교적 경쟁이 낮은 주거용 비아파트로 시선을 돌리면서 이 같은 현상이 벌어졌다고 분석했다.

[땅집고] 대우건설이 서울 영등포구 신길동에서 분양한 ‘신길 AK 푸르지오’ 투시도./대우건설


■4%대 중도금 대출 연기에 뿔난 수분양자들 “계약 해지해달라”

뜨거웠던 작년과 달리 올해 부동산 시장이 침체기로 들어서면서 분위기가 180도 바뀌었다. 신길 AK 푸르지오 상황은 더욱 심각했다. 지난달 수분양자 70여명이 대우건설과 시행사인 대한토지신탁에 “분양대금 감액과 중도금 지원 등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계약을 해지하겠다”고 통보하면서다.

이들이 문제 삼은 건 시행사의 일방적인 대출 연기다. 시행사인 대한토지신탁은 올 7월까지만 해도 금리 연 4.7%로 중도금 대출을 해준다고 했으나, 약속을 지키지 않고 10월 금리 6.987%로 대출을 받으라고 말을 바꿨다.

그렇다면 계약 해지는 가능할까. 계약금만 납부한 상태라면 민법 565조에 따라 계약 해지는 가능하다. 다만 계약금은 포기해야 한다. 분양가의 10%를 계약금으로 걸었다면, 이들은 9000만원이나 되는 돈을 포기하고라도 계약을 해지하겠다는 입장이다. 계약금을 포기하더라도 금리에 대한 부담이나 추가 집값 하락에 대한 공포가 더 크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땅집고] 이달 초 계약 취소를 요구했다가 거절당한 것에 격분한 수분양자 A씨가 의자를 집어던져 모델하우스에 전시 중이던 아파트 모형을 파손했다. 해당 아파트는 대구 수성구 만촌동 '만촌자이르네'다. /온라인 커뮤니티


■업계 “남의 일 같지 않아” 우려 확산

도생 전체 가구 중 25%에 달하는 수분양자들이 목소리를 내면서 사업은 위기를 맞았다. 이들이 대출을 거부하자 금융기관이 발을 빼버린 것. 금융기관인 신협은 지난달 30일부로 신길AK푸르지오에 대한 중도금 대출을 취소하기로 최종 통보했다. 시공사와 시행사는 어쩔 수 없이 조건이 좋은 금융권을 찾는 것을 최우선 목표로 하고 있다. 대우건설 관계자는 “아직 안내 초기 단계라 최종적으로 몇 명이 의사표시를 했는지는 모른다”며 “우선 중도금 대출을 알선할 금융권을 확보한 후 중도금 납부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남 일 같지 않다”는 반응이다. 경기침체로 집값이 반토막 나고 금리가 역대급으로 치솟으면서 계약 해지를 요구하는 사례는 빈번해 질 가능성이 높다. 특히 대규모 미분양 단지에서 속속 할인 분양을 시작하면서 기존 분양자들이 불만을 제기하는 사례가 더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업계는 이 같은 수분양자들의 반란(?)이 다른 사업지로도 확산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통상 중도금이 들어와야 시행사와 시공사도 자금에 여유가 생기면서 사업 추진이 원활해진다. 하지만 중도금 대출에 문제가 생기면 중소 건설사의 경우 자금압박을 받게 되고 결국 사업 자체가 위기에 처할 수 있다. /박기람 땅집고 기자 pkram@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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