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집고] 권리관계가 깨끗한 등기부등본을 믿고 집을 거래했는데, 뒤늦게 해당 주택에 대한 경매 통지서를 받고 쫓겨날 위기에 처했다면 어떤 기분일까. 모 방송매체의 예능 프로그램에 나올 법한 이야기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
2017년 7월 장 모씨는 아내와 함께 신한은행에서 1억3000만원의 주택담보대출을 받아 서울 강서구 화곡동의 빌라를 매입했다. 그런데 2020년 3월 장씨는 법원에서 해당 주택이 경매 절차를 밟게 됐다는 내용의 소장을 받게 됐다. 장씨는 이미 자신이 받은 주택담보대출 상환을 마친 상태였고 집을 계약하기 전 등기부등본상 별다른 문제가 없어서 의아해했다.
알고보니 이전 집주인인 김모씨가 2017년 4월 해당 빌라를 담보로 신한은행에서 1억4280만원의 대출을 받았다. 하지만 김씨는 이를 상환하지 않은 채 대출을 갚았다는 내용으로 은행인감과 서류를 위조해 등기소에 제출하면서 등기부등본상 근저당이 말소된 것처럼 기록됐다. 등기부등본상에는 담보가 해제된 상태지만 법원 소장에 따르면 장씨는 사실상 대출 상환이 되지 않은 선순위 근저당이 설정된 집을 매입한 셈이다.
이에 따라 장씨 부부는 현재 살고 있는 빌라의 소유권을 잃고 돈도 받지 못할 위기에 처했다. 신한은행이 김씨에게 빌려준 돈 1억 4280만원을 받기 위해 현재 장씨가 살고 있는 집을 경매에 부친다면 최근 경매 낙찰가율이 감정평가액의 70%인 것을 감안할 때 이 주택은 약 1억1200만원 정도에 낙찰될 가능성이 높다.
이 경우 장씨가 우선적으로 배당금(채권자들이 순위에 따라 받아가는 낙찰자가 낸 매각대금)을 받아갈 권리가 없다. 은행이 장씨보다 선순위 채권자이기 때문이다. 즉 이전 집주인인 김씨가 돈을 빌린 은행의 근저당권 설정일(2017년 4월)이 장씨 부부가 매매계약을 한 소유권 이전 등기 설정일(2017년 7월)보다 빨라 배당금은 은행이 먼저 가져가게 된다.
해당 사건이 알려지자 한국의 등기소, 등기부등본의 신뢰가 훼손된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법원이 등기부등본의 공신력을 인정하지 않는다. 공신력이 인정되지 않으면 등기부를 믿고 거래한 사람은 보호받을 수 없다. 임상영 법무법인테오 변호사는 “법적으로 등기부의 공신력이 인정된다는 의미는, 등기부가 실제 사실과 다르더라도 부동산을 산 사람이 이를 모른 상태에서 거래했다면 당사자를 보호하기 위해 유효한 등기처럼 간주해준다는 의미”라며 “등기를 믿고 거래했다가 뒤늦게 나타난 권리자 때문에 피해를 볼 수 있다”고 했다.
집값에 해당하는 금액도 돌려받기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이전 집주인 김씨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지만 김씨는 사문서 위조로 징역 1년을 선고받고 형을 산 뒤에 지금은 연락이 두절된 상황이다. 게다가 대출금도 갚지 못한 것으로 미루어보아 추징할 수 있는 재산이 없을 가능성이 높다.
해당 주택에 대출을 이중으로 실행한 해당 은행에도 비판의 화살이 쏠리고 있다. 온라인 커뮤니티 이용자 A씨는 “애당초 신한은행에서 확인을 하지 않고 대출을 해주는 바람에 벌어진 일이기 때문에 은행의 책임을 간과할 수 없다”며 “은행이 피해자에게 변제를 한 뒤 구상권을 청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신한은행 관계자는 “내부 중복 대출을 여과할 수 있는 시스템이 갖춰지지 않아 발생한 실수”라며 “해당 사건이 벌어진 이후 중복 대출을 감지하는 시스템을 마련했다”고 했다. /전현희 땅집고 기자 imhee@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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