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집고] 올해 부동산 거래가 역대급으로 얼어붙고 집값이 크게 떨어지고 있는 가운데 서울 등 수도권 일부 지역에서 아파트 공시가격이 시세보다 높아지는 역전 현상이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공시가격은 세금 부과 기준이 되는 가격으로 매년 1월1일 기준으로 발표한다.
정부는 올 들어 집값이 크게 떨어지자 내년도 공시가격 현실화율을 올해 수준으로 동결한다는 계획이다. 현행 현실화율 계획은 공동주택 기준으로 2020년 평균 69.0%, 2021년 70.2%, 2022년 71.5%, 2023년 72.7%다. 현실화율을 동결하면 내년 보유세(재산세와 종합부동산세) 부담은 다소 줄어들 전망이다.
하지만 집값이 계속 급락하면 공시가격의 시세 역전현상은 내년에도 이어질 공산이 크다. 이미 공시가격이 시세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불만이 커진 가운데 올 하반기 집값이 급락한 단지 위주로 조세 저항이 벌어질 가능성도 제기된다.
■집값 급락으로 공시가격 더 높아져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에 따르면 서울 송파구 잠실동 잠실엘스 84㎡(이하 전용면적)는 지난달 초 19억5000만원에 거래됐다. 이 아파트 올해 공시가격은 18억원대에서 최고 19억8500만원에 책정됐는데 최고 공시가보다 3500만원 낮은 금액에 팔린 것이다. 인근 아파트도 마찬가지다. 잠실동 ‘레이크팰리스’ 84㎡는 지난달 말 17억9500만원에 거래됐는데 이는 공시가격 18억2600만원보다 낮다.
잠실 뿐만이 아니다. 강동구 신축 단지 시세도 공시가격과 비슷한 수준까지 떨어졌다. 고덕동 ‘고덕 그라시움’ 동일 주택형은 지난달 중순에 실거래가가 11억8500만원까지 하락해 올해 공시가격 11억5000만원에 근접했다. 상일동 ‘고덕아르테온’ 84㎡도 지난달 13억2500만원에 팔려 올해 공시가격인 12억9100만원과 비슷해졌다.
인천·경기 수원 등 수도권에서는 공시가격 역전 현상이 더 흔하다. 인천 연수구 송도동 ‘더샵센트럴시티’ 59㎡는 최근 5억500만원에 거래됐는데 공시가격 5억2400만원과 비슷한 수준이다. ‘e편한세상 송도’ 70㎡도 5억1000만원에 거래됐는데, 공시가격 5억1200만원과 불과 200만원 차이밖에 나지 않는다. 수원시 영통구 ‘힐스테이트 영통’ 62㎡도 지난달 4억5700만원에 팔렸는데 공시가격(최고 5억2800만원) 아래로 하락했다.
작년 말과 현재 시세 차이를 감안한 보유세를 비교해 보면 얼마나 차이날까. 땅집고가 아티웰스가 개발한 셀리몬 세금계산기로 분석한 결과, 지난해 23억원대까지 거래됐던 잠실 엘스는 올해 공시가격이 19억8500만원으로 책정돼 재산세 478만원, 종합부동산세 323만원으로 총 801만원을 내야 한다.
반면 현재 잠실 엘스 84㎡ 시세와 비슷한 18억2000만~18억5000만원대를 유지하고 있는 잠실 우성아파트 80㎡는 올해 재산세 296만원, 종합부동산세 70만7000원으로 총 보유세가 367만원이다. 잠실 엘스와 우성아파트는 현재 시세는 엇비슷한데 12월 납부해야 하는 보유세는 약 400만원 차이나는 셈이다.
■ 내년에도 공시가격 역전 가능성 높아
지난 4일 한국조세재정연구원은 부동산 공시가격 현실화 계획 관련 공청회에서 기존 현실화 계획을 1년 유예할 것을 정부에 제안했다. 최근 거래 급감으로 시세가 불명확하고 내년도 시장이 불확실한 상황에서 국민 조세부담 수준을 고려한 현실화 계획을 확정하기 어렵단 판단에서다. 국토부도 이 제안을 받아들일 가능성이 높아 내년도 공시가격은 현실화율이 올해 수준(공동주택 평균 71.5%)으로 동결된 상태에서 집값 변동에 따라 공시가격이 산정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현실화율을 동결하더라도 공시가격의 시세 역전 현상은 지속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조세연 역시 최종 의견으로 채택하지는 않았지만, 현실화율 목표치 90%를 80%로 낮춰야 한다는 의견도 내놓았다. 송경호 조세재정연구원 부연구위원은 “2021∼2022년 가격 급등·급락기 분석 결과 공시가격 현실화율을 90%로 유지했을 때 공시가가 실거래가를 초과할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조하림 세희세무회계 세무사는 “주택 가격이 하락하는 시기에는 현실화율을 계속 올리는 것이 재산권을 침해하는 측면이 있다”며 “주택 가격이 내년에도 올해처럼 낮아진다면 시세를 역전하는 현상이 계속될 것”이라고 했다. 그는 또 “종합부동산세는 12월에 납부하는데, 과세 기준일은 6월1일이고 세금을 매기는 기준이 되는 공시가격은 연초에 발표하기 때문에 시차가 1년 가량 발생한다, 차라리 납부 시기를 12월이 아닌 7~8월쯤으로 앞당기는 것도 불필요한 조세 저항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이라고 했다. /김리영 땅집고 기자 rykimhp206@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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