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집고] 강원도 레고랜드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 채무불이행 사태로 불거진 자금시장 경색을 우려해 정부가 ‘50조원+알파’ 규모 자금을 풀겠다는 대책을 내놓았지만 시장 반응은 냉랭하다.
24일부터 시행한 이번 대책 골자는 시공사 보증 프로젝트파이낸싱(PF)과 관련한 ABCP 등 회사채와 CP 매입을 재개하고, 자금 확보에 어려움을 겪는 증권사에 대한 자금 공급도 확대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건설업계에서는 급한 불을 끄기 어렵다는 반응이 많다. 회사채의 경우 주택도시보증공사(HUG) 보증을 받는 대형 건설사에게는 어느 정도 효과가 있겠지만 부동산 PF 대출 중단으로 중소·중견 업체가 겪는 어려움을 해소하기엔 역부족이라는 것이다. 업계에선 급속도로 얼어붙은 부동산 경기 연착륙을 유도할 해법이 뒤따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중소 업체엔 효과 미미…미분양 대책·규제 완화 필요”
정부가 지원하는 유동성 공급 프로그램 규모는 50조원 이상이다. 채권시장안정펀드 20조원, 회사채·CP 매입 프로그램 16조원, 유동성 부족 증권사 지원 3조원, HUG·주택금융공사 사업자 보증지원 10조원 등이다.
하지만 건설업계는 이번 대책으로 PF 대출 중단 위기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는 어렵다고 본다. 자금 지원과 함께 규제 완화책이 뒤따라야 한다고 주장한다.
통상 중소·중견업체의 경우 증권사나 보험사 등 제2금융권이 자금 조달의 키를 쥐고 있다. 제 2금융권은 사업 인허가 이전에 실행돼 ‘본PF’를 통해 상환하는 이른바 ‘브릿지론’ 취급 비중이 큰데 최근 레고랜드 사태와 함께 금리 인상, 원자재 가격 상승, 분양 시장 냉각 등 악재가 동시에 겹쳐 사실상 신규 대출을 중단한 상태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시공능력순위 100위 이내 시공사가 선정된 프로젝트만 사업이 겨우 진행되고 있다”며 “그나마 본PF로 전환할 때는 당초 약정 금리보다 2배 이상 높은 연 10% 이상을 요구하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했다.
또 다른 건설업계 관계자는 “주택금융공사 등이 자금 지원에 나서면 일부 효과가 있겠지만 애초에 중소·중견사와 민간 시행사는 채권 매입 혜택을 받기 어려운 환경”이라며 “증권사 역시 정부 자금지원과는 별개로 시장이 불투명한 상황에서 대출 심사를 깐깐하게 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정상적으로 사업 추진이 가능한 사업장도 대출을 받기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지난달 중소·중견 건설사 모임인 대한주택건설협회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임대 사업용 주택에 미분양주택 우선 활용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 추가 완화 ▲환매 조건부 미분양주택 매입 ▲준공 후 미분양 주택에 대한 매매사업자 대출 허용 ▲미분양 주택 건설·운영자금 지원 등을 국토교통부에 제안했다. 주택건설협회 관계자는 “현실적으로 금융지원이 어렵다면 기존에 공사가 이뤄지고 있는 사업장이 더 부실화하지 않도록 부동산 규제 완화가 필요하다”고 했다.
■“급한 불 껐다지만…건전한 사업장 살려야”
전문가들은 이번 정부 대책이 시장 불확실성을 일부 해소하고, 건설업 위기가 커지지 않도록 하는데 효과가 있을 것으로 본다. 다만 부실 건설업체까지 혈세를 투입해 살리는 방식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또 지난 5년간 부동산 시장이 호황일 때 도입한 과도한 규제를 완화해 얼어붙은 거래를 활성화하는 게 시급하다고 했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시행 사업 자체가 수익성이 높은만큼 위험도도 높기 때문에 경기 불황 국면에서 무리한 투자에 나선 업체가 자금 융통에 어려움을 겪는 현상은 자연스러운 것”이라며 “기존 부동산PF와 관련해 어느 정도 해결책이 나온 것으로 보이며, 정부가 급한 불을 껐다고 판단한다”고 했다.
서진형 공정주택포럼 공동대표(경인여대 MD상품기획비즈니스학과 교수)는 “부동산 경기 전망이 나아지면 PF시장 역시 회복된다. 거래를 얼어붙게 하는 조세 제도 등은 손볼 필요가 있다”며 “다만 미분양 물량에 정부가 개입해 자칫 세금으로 해결한다는 인상을 심어줘선 안 되며 건설사가 경기 흐름을 잘 예측해 리스크 관리를 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고 했다.
김정주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과거 부동산 호황기에 도입된 보유세와 양도소득세 규제가 현재는 시장 거래를 얼어붙게 하고 가격을 급락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어 규제를 완화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그는 또 “사업장별로 처한 상황이 다르고 어느 정도 위험이 있는지 명확한 판단이 어려운 상황에선, 정상적으로 사업 추진이 가능한 사업장이라도 증권사가 대출해주기 어려울 수 있다”며 “금융사들이 부실 사업장과 건전 사업장을 구분할 수 있도록 정부가 명확한 가이드라인과 신용 보강 등을 제공하는 방안이 필요해 보인다”고 했다. /김리영 땅집고 기자 rykimhp206@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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