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집고

"세상에 이런 차별이ㅠㅠ" 임대주택 가봤다가 분통

뉴스 이지은 기자
입력 2022.10.13 04:09


[땅집고] 서울시와 SH공사가 공급한 서울리츠 행복주택 '북한산두산위브' 임대동에 엘리베이터가 설치돼있지 않은 사실이 알려져 임대아파트 차별 논란이 일고 있다. 이 아파트 입주자들은 계단을 통해 이삿짐을 날라야 한다. 사진은 본문 내용과 관계 없음. /온라인 커뮤니티


[땅집고] “SH공사가 공급한 서울리츠 행복주택 아파트 3층 계약했는데, 임대동은 엘리베이터가 없어 계단이사 해야 한대요. 임대동 차별이야 익히 들어서 알았지만, 요즘 세상에 이런 일이 다 있네요. 너무 어이없고 황망합니다.”

서울주택도시공사(SH)가 지난달 16일 ‘2022년 1차 서울리츠 행복주택’에 대한 입주 당첨자 명단을 공개했다. 서울리츠 행복주택이란 서울시와 SH공사가 자본금을 출자해 부동산 투자 회사인 ‘리츠’(REITs)를 설립한 뒤 민간의 투자를 받아서 임대주택을 짓고 입주자를 모집하는 민관협력형 임대주택 사업이다. 임대료는 주변 시세의 60~80%이며, 청년·신혼부부·대학생·고령자 등 주거 취약계층에 공급한다.

A씨는 이번 서울리츠 행복주택 중 서대문구 홍은동 ‘북한산두산위브’ 3층 아파트에 당첨됐다. 전용 33㎡ 에 임대료는 보증금 1억2400만원에 월세 30만5000원 정도다. 2020년 입주한 신축 아파트라 기쁜 마음으로 계약을 체결하고 이사를 위해 주택 내부 치수를 재러 갔다가 황당한 사실을 접했다. 임대동인 203동이 최고 3층 높이인데, 단지 안에 엘리베이터가 설치돼 있지 않았던 것.

[땅집고] 서울 서대문구 홍은동 '북한산두산위브' 서울리츠 행복주택 3층에 당첨돼 집을 보러갔다가 엘리베이터가 없어 황당했다는 한 예비입주자의 글. /온라인 커뮤니티


엘리베이터 없이 이삿짐을 어떻게 옮겨야 할지 걱정됐던 A씨는 관리사무소에 문의했으나 “임대동은 엘리베이터가 없으니 계단 이사해야 한다. 신축이라 사다리차 이사는 불가능하다”는 식의 답변만 돌아왔다.

A씨는 “이사업체에서 다 도망갈 것 같은데 어쩌나. 임대동 차별을 익히 들어 알고 있긴 했지만, 정말 천박한 천민자본주의의 민낯을 제가 경험하고 있다”며 “행복주택 담당자와 통화했는데 임대동에 엘리베이터가 없는지조차 모르더라. 본인들은 이사 문제까지 체크하지는 않는다고 한다”고 호소했다.

‘북한산두산위브’ 관리사무소 측은 땅집고와의 통화에서 “203동은 불과 3층 높이로 가구수가 많지 않은 특수동인 데다가 평수도 넓지 않아, 그동안 엘리베이터 이사가 불가능한 데 대한 문제를 제기하는 입주자들이 없긴 했다”며 “지하주차장으로 진입한 뒤 비상 계단을 통해 203동으로 이삿짐을 나를 수 있게끔 동선이 연결돼 있다”고 설명했다.

[땅집고] 서울 서대문구 홍은동 '북한산두산위브' 중 서울시와 SH공사가 서울리츠 행복주택으로 공급한 203동에는 최고 3층 높이인데도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어있지 않다. /카카오맵 캡쳐


하지만 같은 아파트 단지인데도 임대동에만 엘리베이터가 설치돼있지 않다는 소식을 접한 네티즌들은 임대아파트 차별이 너무 심한 것 아니냐는 식의 불만이 터져나오고 있다. 댓글에선 “요즘 시대에 엘리베이터가 없는 아파트라니 어처구니가 없다”, “별 쓸데 없는 것으로 차별을 둔다. 추잡스럽다”는 등 날선 반응들이 대다수다.

SH공사와 서울시는 왜 엘리베이터 없는 임대아파트를 공급하게 된걸까. 서울시 주택정책실 관계자는 이에 대해 “사실 ‘북한산두산위브’ 같은 임대동은 매우 드문 사례라 우리도 놀랐다”라며 “다만 현행 공동주택 주택건설기준 등에 대한 규정에 따르면, 아파트 등 공동주택에선 6층 이상일 때 1대당 6인승 이상인 엘리베이터(승용승강기)를 설치하도록 되어 있기 때문에 ‘북한산두산위브’ 내 최고 3층 임대동에 엘리베이터가 없는 것은 법에 저촉되는 사안은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이어 그는 임대동이 일반아파트와 외따로인 구조에 대해서는 “2018년 9월까지는 도시 및 주거환경 정비법에 따라 재개발 사업장에서 조합원 물량 및 철거세입자 물량을 뺀 나머지 주택만을 서울시가 리츠로 매입할 수 있었다”라며 “재개발 조합 측에선 조합원 입장을 중심으로 단지 구성하다보니, 효율이 떨어지는 부지에 임대동을 몰아서 짓는 상황이 발생했던 것”이라고 했다.

SH공사 관계자 역시 “서울리츠 행복주택의 경우 구체적인 동 내부 공간이나 평면도가 재건축·재개발 조합원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설계된다. 법적으로 설계를 비롯한 건축 전반 과정에 대해 리츠를 운영하는 서울시나 행복주택 공급을 위탁받은 SH공사가 ‘임대주택을 이런 방식으로 지어달라’는 식으로 전혀 개입할 수가 없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땅집고] 서울 강남구 개포동 '디에이치아너힐즈. 총 23개동 중 임대주택이 들어간 2개동 외관만 검은색에 가까운 석재로 마감했다. /땅집고TV


같은 아파트 단지에서 임대동만 차별하는 사례는 이곳 뿐만이 아니다. 대표적인 곳이 서울 강남구 개포동 고가(高價) 아파트 중 하나로 꼽히는 ‘디에이치아너힐즈’. 총 23개동인데, 임대주택이 들어간 2개동 외관만 검은색에 가까운 석재로 마감했다. 흰색·연회색 등 밝은 색을 주로 쓴 일반분양 동과 확실하게 구분된다.

서울 마포구 서교동의 랜드마크 주상복합으로 꼽히는 ‘메세나폴리스’도 예외가 아니다. 최고 39층인데, 비상계단 10층에서 11층으로 올라가는 길이 막혀 있다. 임대주택이 있는 4~10층과 11층 이상 주택을 분리하기 위한 설계다. 아래층에서 화재가 발생하면 입주민이 비상계단을 통해 위층으로 대피할 수도 없는 구조다.

[땅집고] 서울 마포구 서교동 '메세나폴리스'. 임대주택이 있는 4~10층과 11층 이상 일반분양 주택의 비상계단을 분리해 서로 드나들 수 없도록 했다. /MBC 캡쳐


전문가들은 최근 민간아파트에 임대주택 공급을 의무화하는 경우가 대다수인 만큼 입주민 사이에 벌어질 수 있는 차별을 최대한 줄이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설계 측면에서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경기 평택시에 공급한 신혼희망타운 ‘평택고덕 LH 르 플로랑’이 좋은 사례로 꼽힌다. 총 891가구인데, 분양주택(596가구)과 임대주택(295가구)을 무작위로 배치해 이웃집 거주자가 집주인인지 세입자인지 알 수 없도록 했다.

서울시 주택정책실 관계자는 “2020년 9월부터는 도시 및 주거환경 정비법 개정으로 ‘소셜믹스’(분양주택과 임대주택을 혼합배치하는 형태)와 관련한 방침이 바뀌었기 때문에, 앞으로는 ‘북한산두산위브’처럼 일반동과 임대동이 극단적으로 구분되는 사례가 나오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이지은 땅집고 기자 leejin0506@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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