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집고

"1기 신도시는 죽었다"…핵심 쏙 빠진 대책에 불만 고조

뉴스 이지은 기자
입력 2022.10.12 11:39

[땅집고] 1기 신도시 주민들이 지난 8일 서울 여의도에서 윤석열 정부에 재건축 사업과 관련한 공약을 이행해달라고 촉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1기 신도시 범 재건축 연합회


[땅집고] “현재 1기 신도시는 도시 기능의 호흡기를 서서히 떼어가고 있는 혼수상태로 가고 있습니다. 빨리 재건축 절차를 시작하지 않으면 앞으로 30년이 걸려도 재건축하지 못하고 도시 전체가 슬럼화될 겁니다. 그런데 국가는 차일피일 미루기만 하고 있으니…” (최우식 1기 신도시 범 재건축연합회장)

지난 8일 서울 여의도에 검은 상복 차림의 사람들이 모여 들었다. 수도권 1기 신도시인 분당·산본·일산·중동·평촌 5개 지역 주민들이었다.

1990년대 초반 입주해 올해로 30년이 넘었는데, 각종 규제 때문에 재건축을 못하고 낡아빠진 상태로 죽어가고 있다는 의미에서, 상복을 입은 채로 대형 근조 현수막을 내걸고 시위를 벌이는 것이라고 했다. 시위 참가자들은 윤석열 대통령이 대선 후보 당시 1기 신도시 재건축을 앞당겠다며 안전진단 면제 및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 완화 등을 공약으로 내세웠는데, 이 같은 공약이 지금까지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항의했다.

국토교통부가 11일 “1기 신도시 정비사업을 주민들이 체감할 수 있도록 속도감 있게 진행하겠다”며 “2024년까지 체계적인 신도시 정비방침을 담은 마스터플랜을 수립하고 선도지구도 지정할 것”이라고 추가 입장을 내놓았다. 하지만 이 같은 국토부 발표에도 1기 신도시 주민들을 다독이지는 못했다. 재건축 속도를 앞당길 수 있는 핵심 공약으로 안전진단 완화가 꼽히는데, 이에 대한 언급이 이번 발표에서도 쏙 빠져있어서다. 결국 윤석열 대통령 임기 안에 1기 신도시 재건축 사업이 착공도 못하는 것 아니냐는 비난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안전진단 완화해 재건축 앞당긴 다더니…공약(空約) 될까 우려

[땅집고] 윤석열 대통령이 대선 당시 내세웠던 재건축 사업 완화 관련 공약들. /이지은 기자


안전진단은 재건축 사업이 가능한지 여부를 가리는 핵심 단계다. 재건축 연한인 30년을 넘긴 아파트들이 안전진단을 통과해야만 정비구역으로 지정돼 재건축 사업에 본격 돌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문재인 정부 때 정밀안전진단 중 구조 안전성 기준이 20%에서 50%로 강화되면서 녹물이 나올 정도로 낡은 아파트들이 안전진단 문턱을 넘지 못해 줄줄이 재건축을 포기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윤석열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30년 이상 아파트의 정밀안전진단 면제 ▲안전진단 중 구조 안전성 평가비중 30%(기존 50%)로 완화 등을 공약했다. 이는 노후아파트가 밀집해 재건축 사업이 절실했던 1기 신도시와 서울 유권자의 표심에 상당한 영향력을 미쳤다는 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윤석열 정부가 출범한지 5개월여 지난 지금까지도 공약이행 조짐은 보이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지난달 29일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1기 신도시 정비 마스터플랜 수립 및 제도화 방안 연구용역’을 발주했다고 밝히면서 “임기 내 첫 삽은 뜰 수 없겠지만 연필은 들겠다는 의미”라고 발언해 1기 신도시 주민들의 분노를 샀다. 결국 국토부 장관 입으로 임기 내 공약 이행을 못하겠고 인정한 것 아니냐는 비난이 터져나왔다.

■대선 직전 집값 쑥쑥 올랐던 1기 신도시…지금은 실망매물 쌓이고 수억원씩 급락

재건축 기대감이 꺾이면서 최근 부동산 침체 분위기와 맞물려 1기 신도시 지역마다 ‘실망 매물’이 쌓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올해 상반기 대선 때까지만 해도 재정비 기대감에 거래가 늘고 호가도 뛰었는데, 최근에는 실망한 집주인들이 집을 매물로 내놓면서 최고가 대비 수억원씩 낮은 거래가 속출하고 있다는 것.

[땅집고] 윤석열 정부의 재건축 완화 관련 공약 불이행 이후 하락하고 있는 1기 신도시 아파트 단지들 집값. /이지은 기자


실제로 경기 성남시 분당구 서현동 ‘시범우성’ 전용 64㎡는 올해 4월 12억1500만원에서 8월 11억원으로 집값이 4개월만에 1억1500만원 떨어졌다. 인근 ‘시범단지삼성’ 59㎡는 올해 3월 13억4000만원에서 8월 10억7000만원으로 2억7000만원 급락했다. 고양시 일산에선 84㎡ 기준으로 일산동 ‘후곡마을9단지LG롯데’가 지난 4월 8억5000만원에서 7월 7억7000만원으로, 마두동 ‘강촌동아’가 지난 4월 7억9000만원에서 8월 7억원으로 실거래가가 각각 낮아졌다.

■‘안전진단 완화 없는 정부 대책’에 콧방귀…알맹이는 쏙 빠져

11일 원희룡 국토부 장관은 “올해 10월부터 2023년 1월까지 1기 신도시 모든 지자체가 정비기본계획 수립을 위한 용역을 발주하도록 할 것”이라며 “노후도와 정비 시급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서 우선적으로 정비사업을 추진하는 선도지구도 지정하겠다”고 했다. 2024년이면 마스터플랜 수립과 선도지구 지정을 완료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땅집고] 1기 신도시 주민들은 안전진단 완화 조치 없이는 재건축 사업 속도를 앞당길 수 없다고 보고 있다. /1기 신도시 범 재건축 연합회


하지만 이번 발표에서도 안전진단에 대한 얘기가 쏙 빠져 1기 신도시 주민들의 불만이 가라앉지 않고 있는 분위기다. 서울을 중심으로 안전진단에서 탈락해 재건축 첫 발 조차 못 떼고 있는 단지들이 수두룩한 점을 미루어볼 때, 안전진단을 완화하는 정책 없이는 정부가 아무리 마스터플랜을 세워봤자 사업 속도를 높이는 데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주장이 지배적이다.

땅집고 자문단은 “정부가 재건축 안전진단 완화 관련 공약을 이행할 조짐이 보이지 않고 있으니 지역 사회에서 반발이 클 수밖에 없다. 또 선도지구는 형평성 논란도 불거질 가능성도 있다”며 “상황이 장기화하면 1기 신도시 곳곳에서 재건축을 포기하고 리모델링으로 선회하는 단지가 나올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이지은 땅집고 기자 leejin0506@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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