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집고

'줍줍' 노린 묻지마 청약에 골머리…건설사들 '제도개선' 하소연

뉴스 이지은 기자
입력 2022.08.31 06:00

[땅집고] 경기 의정부시 '의정부역 월드메르디앙 스마트시티' 아파트가 무순위 청약 입주자모집공고분에 '묻지마 청약'을 자제해달라는 내용의 문구를 빨간 글씨로 적어뒀다. /청약홈


[땅집고] “제발 부탁드립니다, ‘묻지마 청약’ 자제해 주세요!”

경기 화성시 봉담읍에 지하 2층~지상 23층, 8개동 600가구 규모로 짓는 ‘봉담 파라곤’은 지난 5월 첫 분양 당시 계약자를 찾지 못해 이달 29일 네 번째 무순위 청약을 진행했다. 한국부동산원 청약홈 홈페이지에 이 아파트 무순위 청약 일정이 등록됐는데, 단지명 바로 뒤에 ‘청약 전 반드시 대표전화 문의하세요’라는 문구가 보인다. 입주자모집공고문 첫 장에도 빨간 글씨로 ‘계약 의사가 없는 고객 및 미자격자 청약 자제’라는 경고문이 적혀 있다.

올해 들어 무순위 청약을 6차례 받은 경기 의정부시 의정부동 ‘의정부역 월드메르디앙 스마트시티’도 마찬가지다. “청약을 그냥 넣는 분들이 많습니다. 제발 부탁드립니다, 반드시 대표번호로 청약요건 확인 후 청약진행 바랍니다”라며 이 단지 청약 자격 요건을 빨간 글씨로 적시했다.

최근 1순위 청약에서 미달을 겪거나 계약자를 찾지 못해 무순위 청약을 진행하는 아파트마다 하나같이 ‘묻지마 청약’을 자제하는 문구를 내걸고 있는 점이 눈에 띈다. 올해 들어 금리 인상과 집값 꼭지론 확산으로 새아파트 청약 열기가 확 식으면서 미분양이 속출하고 있는 가운데, 건설사들이 미분양 물량을 해소하기 위해 무순위 청약을 받을 때마다 자격 요건에 미달하거나 계약 의사가 없는 당첨자들 때문에 애를 먹고 있는 것.

한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요즘 제대로 알아보지 않고 무순위 청약 접수했다가 덜컥 당첨된 후 취소 통보하는 수요자들 때문에 정말 고역이 따로 없다”며 “청약홈에서 무순위 청약 등록에 드는 비용은 한 회당 100만~200만원 정도로 적은 편이지만, 청약 한 회차당 3주 정도 되는 분양기간 동안 드는 돈이 어마어마하다. 모델하우스 운영비를 비롯해 분양 상담사 등 인건비 등까지 합하면 수천만원이 날아간다. 돈과 시간을 들여 무순위 청약을 진행하는데 ‘묻지마 청약’ 때문에 정작 미분양 소진은 안되니 건설사 입장에선 억울할 따름”이라고 호소했다.

■무순위 청약 계약률 10~20% 불과…건설사 “묻지마 청약에 시간·비용 낭비” 하소연

[땅집고] 올해 들어 주택 가격이 조정기에 들어간 데다가 금리까지 인상하자 새아파트 청약 열기가 급격히 식었다. /조선DB


지난해까지만 해도 활황세던 청약시장이 올해 들어 급격하게 얼어붙었다. 지난 4년여 동안 이어진 집값 상승기에는 분양가상한제를 적용받아 시세 대비 분양가가 비교적 저렴한 새아파트 청약에 당첨되면 무조건 수억원 차익을 얻을 수 있다는 인식이 강했다. 하지만 올 들어 부동산 시장 침체와 금리 인상, 집값 고점 인식이 확산되면서 조정장세로 돌아서자 수요자들이 청약으로 내 집 마련하는 데 부담을 느끼기 시작했다.

이에 올해 청약 경쟁률이 지난해 대비 반토막나고, 청약 불패로 여겨지던 서울 및 수도권 핵심 지역에서도 미분양을 겪는 단지들이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부동산 R114에 따르면 올해(1~8월) 전국 아파트 평균 청약 경쟁률은 10.41대 1로, 지난해 19.79대 1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절반 수준에 그친다. 지역별로 보면 서울이 지난해 164.13대 1에서 올해 29.84대 1로 뚝 떨어졌다. 같은 기간 경기권은 28.65대 1에서 8.58대 1로 경쟁률이 줄었다.

땅집고가 청약홈 자료를 집계한 결과 올해 서울에서 무순위 청약을 받은 아파트 단지는 총 12곳이다. 이 중 7곳이 무순위 청약을 2번 이상 진행했다. 그런데 직전 청약에서 높은 경쟁률을 기록했는데도 정작 계약자를 찾지 못해 한 달에 한 번 꼴로 다시 청약을 받는 단지가 적지 않다. 대표적인 곳이 관악구 신림동에 분양한 ‘신림스카이’ 아파트다. 지난 3월 진행한 무순위 청약에서 최고 경쟁률 114.5대 1(전용 56㎡)을 기록했는데, 무순위 청약 당첨자 중 계약하겠다는 사람이 없어 이달 일곱 번째 무순위 청약 공고를 냈다.

[땅집고] 올해 서울에서 무순위청약을 2회 이상 진행한 아파트 단지 목록. /이지은 기자


주택 건설업계 관계자들은 ‘묻지마 청약’ 때문에 이 같은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청약 통장이 필요한 일반 청약과는 달리, 무순위 청약은 청약 통장 없이도 접수할 수 있다. 거주지와 무주택자 등 요건만 맞으면 돼 비교적 청약 문턱이 낮은 편이다. 심지어 청약 요건을 갖추지 않아 분양 계약 자체가 불가능한데도 무작정 청약 신청하는 수요자들도 적지 않다.

‘일단 넣고 보자’는 식의 묻지마 청약자들로 인해, 무순위 청약 한 회당 계약률이 10~20%에 그쳐 건설사들이 미분양 물량을 해소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이다. 부적격자가 당첨되거나 당첨자가 계약 취소를 통보하는 경우, 혹은 당첨자가 분양대금을 마련하지 못한 경우 건설사가 또 다시 무순위 청약 공고를 내고 당첨자를 선발해야 한다. 건설사 입장에선 시간과 비용을 모두 낭비하는 꼴이라 여간 골치가 아닌 셈이다.

[땅집고] 서울 강북구 미아동 '한화 포레나 미아' 무순위청약 입주자모집공고문에 빨간 글씨로 '미자격자 및 계약의사 없는 고객 청약 자제'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청약홈


이에 무순위 청약을 진행 중인 단지들마다 입주자모집공고문에 묻지마 청약을 자제해달라고 요구하는 내용을 경고문 수준으로 적어두고 있다. 서울 강북구의 대표적인 미분양 단지로 꼽히는 ‘칸타빌 수유 팰리스’는 지난 6월 진행한 세 번째 무순위 청약에서부터 “최근 묻지마 청약으로 실수요자들의 당첨 기회가 상실돼 선의의 피해가 발생되고 있다. 자격요건을 갖추지 못한 경우 청약신청을 자제해달라”고 공지했다.

올해 4월 한화건설이 처음으로 분양한 ‘한화 포레나 미아’ 공고문에도 눈에 띄는 붉은 글씨로 “미자격자 및 계약의사 없는 고객 청약 자제”라며 ▲분양가 10억원 초과, 중도금 대출 불가능 가능성 있음 ▲10년 재당첨 제한 ▲서울시 거주자만 가능 ▲무주택자만 가능 등 청약 자견 요건을 상세히 기재해뒀다. 이 밖에 경기 화성시 ‘봉담 파라곤’, 인천시 연수구 ‘송도 럭스 오션 SK뷰’, 부산 사하구 ‘사하 삼정그린코아 더시티’ 등 전국 곳곳 미분양 단지마다 비슷한 문구가 내걸린 상태다.

■‘청약홈 시스템 강화, 건설사 임의 처분’ 등 제도 개선 목소리 ↑

[땅집고] 업계에선 건설사가 무순위청약으로 처분하지 못한 미분양 물량을 자체 매각할 수 있는 등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조선DB


부동산 전문가들은 무순위 청약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조언을 내놓고 있다. 현재 청약홈 홈페이지를 통해 무순위 청약을 받고 있는데, 현재 청약자가 자격 요건에 미달하더라도 별도의 제재 장치가 전혀 없기 때문에 관련 시스템을 갖추는 것이 효율적일 것이란 설명이다.

건설사에게 미분양 물량을 임의로 처분할 수 있는 권리를 주는 것도 하나의 방법으로 꼽힌다. 과거에는 건설 사업자가 지정 계약 등을 통해 미분양 주택을 팔 수 있었다. 하지만 정부가 2019년부터 미분양이 20가구 이상인 단지에 대해서는 청약홈을 통한 무순위 청약을 의무화하는 바람에 건설사가 임의로 주택을 처분하기 어려워졌다. 최근 부동산 경기가 악화한 점을 감안하면 이 같은 규제를 어느 정도 풀어줘야 한다는 설명이다.

현재 서울에서 무순위 청약을 진행하고 있는 A건설사 관계자는 “묻지마 청약으로 인한 허수 때문에 건설사들은 수억원에 달하는 불필요한 비용을 낭비하고 있는데도 정부가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며 “미분양 물량에 대해 건설사가 지정 계약제를 진행할 수 있도록 해주거나, 현행 무주택자만 가능하도록 정한 무순위 청약을 1주택자나 다주택자도 신청할 수 있도록 요건을 완화해야 주택 수급이 제대로 이뤄질 수 있다”고 했다. /이지은 땅집고 기자 leejin0506@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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