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집고

현관문에 섬뜩한 글씨가 죽죽…"너무 무서워 여기 못 살겠어요"

뉴스 이지은 기자
입력 2022.08.21 10:52

[땅집고]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에 있는 LH 매입임대주택 건물 중 한 가구 현관문이 섬뜩한 빨간 글씨로 뒤덮혀있는 모습. /온라인 커뮤니티


[땅집고] “원래 LH매입임대주택이 다 이렇게 이상한가요? 이번에 처음 알아본건데, 너무 무서워서 건물을 후다닥 나왔습니다.”

최근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올해 첫 매입임대주택 입주자 모집 공고를 냈다. 이달 9~10일 1순위 청약을 받았는데, 모집 공고에 난 매입임대주택 중 서울 서대문구·은평구·도봉구·성북구 입지 주택이 포함돼 있어 수도권 예비청약자들의 관심이 쏠렸다. 매입임대주택이란 국가나 지자체, 공기업인 LH 등이 기존 다세대·다가구주택을 매입한 뒤, 주변 시세의 30% 수준 임대료로 임대하는 형태의 주택을 말한다.

[땅집고]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구화빌라' 는 LH 매입임대주택 건물로 임대료가 시세 대비 저렴하게 책정됐다. /네이버 거리뷰


A씨는 LH매입임대주택 모집공고를 본 사람 중 한명이다. 그는 청약 가능한 주택 목록을 확인하던 중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에 있는 ‘구화빌라’가 눈에 띄어 현장을 직접 다녀오기로 했다. 지하철 2호선 신촌역까지 버스로 10분 정도 걸려 입지가 괜찮은 편이고, 인근에 연세대가 있어 젊은층 주거 비율이 높은 점도 마음에 들었다. 전용 36㎡ 주택 임대료가 보증금 430만원에 월세 19만원 정도로 저렴한 편이었다.

기대감을 안고 ‘구화빌라’ 건물을 방문한 A씨는 소스라치게 놀라고 말았다. 각 층을 둘러보던 중, 1층 101호와 103호 두 집의 현관문이 온통 알 수 없는 빨간색 글씨로 뒤덮혀 있는 것을 목격한 것이다. 도저히 정상적인 사람이 한 짓이라고 보기 어려운, 소름끼치는 장면이었다.

[땅집고]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에 있는 LH 매입임대주택 '구화빌라' 101호와 103호 현관문이 조현병 환자가 슨 것으로 추정되는 빨간 글씨로 가득 차있다. /온라인 커뮤니티


깜짝 놀란 A씨는 온라인 부동산 커뮤니티에 ‘구화빌라’ 방문 후기를 남기며 “집은 진짜 괜찮은데 건물 치안이 걱정된다. 원래 LH매입임대주택이 다 이렇게 이상하냐”며 “너무 무섭다. 이렇게 저렴한데도 아무 문제가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내가 너무 순진한 것 같다. 잠만 자기에도 불안할 것 같아, 돈을 더 모아서 안심되는 집을 찾으려고 한다’는 글을 올렸다.

A씨가 올린 사진을 접한 누리꾼들도 “공포 영화에 나오는 집보다 더 심하다”, “세상에 너무 소름끼친다. 나같으면 무조건 피할 것 같다”, “절대 안들어간다. 공짜로 살라고 해도 안 산다”는 등의 댓글을 남겼다.

[땅집현행 공공주택특별법상 LH가 조현병 등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를 강제 퇴거시킬 수는 없다. /온라인 커뮤니티


LH 가 공급한 임대주택에서 조현병, 알코올 중독, 가정폭력 등 문제를 겪고 있는 소수 입주자 때문에 나머지 주민들이 생활 불편을 겪거나, A씨처럼 입주 자체를 포기하는 일이 적지 않다. 특히 정신 질환을 앓는 입주자가 이웃인 경우 자칫하면 생명을 위협받는 일까지 벌어질 수 있어 주민들의 불안감이 크다.

이 때문에 “LH가 이웃에게 위협이 되는 입주자들을 퇴거시켜야 하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LH도 난감하다는 입장이다. 입주민들의 마음은 이해하지만, 현행 공공주택특별법이 정하고 있는 계약 해지 사유가 아니라면 임대주택에 정당하게 청약 당첨돼 입주한 사람을 내쫓을 수 없기 때문이다. 현행법상 ▲주택을 고의로 파손한 경우 ▲주택 임대료를 3개월 이상 연체한 경우 ▲주택을 제 3자에게 불법으로 전대한 경우 등에 대해서만 LH가 강제 퇴거 조치를 취하거나 재계약 해지를 통보할 수 있다.

다만 문제의 입주민 때문에 피해를 입은 경우라면 LH가 다른 집으로 이사할 수 있도록 지원해준다. 피해자가 LH에 구체적인 피해 사례를 입증하면, 피해자에게 같은 단지에서 동·호수를 변경하거나, 해당 지역 내 다른 임대주택으로 이사할 기회를 주는 것이다.

[땅집고] 조현병 환자가 거주하는 LH매입임대주택은 절대 가지 말라고 만류하는 네티즌들. /온라인 커뮤니티


하지만 입주자들은 임대주택에서 이웃 상태가 생존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만큼, LH가 사후 처리보다는 사전 예방에 더 신경써야 한다는 지적을 내놓고 있다. 실제로 지난 2019년 경남 진주시의 한 임대 아파트에서 조현병 환자인 40대 남성이 자신의 집에 불을 지른 뒤, 화재를 피해 대피하는 이웃 주민들에게 흉기를 휘둘러 5명이 숨지는 사고가 발생하기도 했다.

이에 안전을 걱정하는 임대주택 입주자들 사이에선 현행 공공주택특별법 개정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사람 다 죽고나서 집 바꿔주는 것이 무슨 소용이냐”, “이웃과 함께 더불어 살 수 없다고 판단된다면 입주 자격을 제한해야하는 것 아니냐”는 등의 반응이 쏟아지는 분위기다. /이지은 땅집고 기자 leejin0506@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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